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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 업] 디아스포라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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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중앙일보] 발행 2020/02/18 미주판 22면 기사입력 2020/02/17 10:47

의사가 된 지 1년 후 나는 도미했다. 47년 전 일이다. 당시 모교 졸업 반의 과반이 미국에 왔다. 남편의 의과대학도 마찬가지다. 나는 왜 모국을 떠났을까? 이유는 선명하지 않다.

내가 미국에 와서 수련의로 고생하고 있던 1976년에는 8만5000명의 외국 의대를 졸업한 수련의들이 있었다. 미국은 의사 부족으로 그들을 필요로 했다. 이민 또는 방문비자를 받는 과정이 쉬웠다. 한때, 수련의 30% 이상이 외국 의대 출신인 경우도 있었다.

미국의 의사 수입과 관련해서는 베트남 전쟁이 낳은 이민정책을 이해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의사들의 능동적 디아스포라는 베트남 전쟁과 연결돼 있다.

베트남 전쟁은 1955년 11월에 시작해서 1975년에 종료됐다. 전쟁이라기 보다는 내전이었다. 북 베트남에서 활약하던 베트콩은 1954년에 프랑스 정부를 내쫓고 숙원이었던 독립에 성공한다. 이들은 사회주의 공산체제를 따랐다. 민주주의 체제를 원하던 남 베트남과의 내전에 양쪽을 돕는 여러 나라가 개입했다. 존 F 케네디 대통령은 1961년 젊은이들을 징집하고 베트남에 참전시켰다. 약 5만8000명의 전사자를 냈다. 린든 존슨 대통령은 10년이 지난 1973년 미군을 철수시켰다. 1975년 베트남은 공산화됐다.

베트남 참전으로 많은 젊은 군의관들이 미국에 없었다. 국민들의 건강을 담당할 의사들이 필요했고, 인도, 한국, 필리핀, 타이완, 아일랜드에서 의사들을 구해와야 했다. 그러나 이미 전문의가 된 의사들이라 해도 미국 의료기준에 맞추기 위해 다시 수련과정을 거치고 여러 자격 시험을 치르도록 했다. 한국 출신 의사들은 언어장벽으로 더 힘든 수련기간을 거쳤다.

나는 한국이 그리웠다. 돈이 없어 퇴원이 안 되는 가난한 장기 입원환자를 원무과 직원 몰래 상사 레지던트들이 도망시키던 정 많은 고국이었다. 야밤에 당직 인턴들과 숙소에서 함께 끓여 먹던 라면 생각도 많이 났다.

어느새 은퇴 나이가 됐다. 소위 ‘꼰대’가 된 것이다. ‘꼰대’란 늙은이를 뜻하는 은어인데, 지금은 나이와 상관 없이 쉽게 남에게 충고를 하는 부류를 ‘꼰대’로 부른다고 한다.

고령화 되어가고 있는 미국은 의사 부족 사이클로 다시 진입하고 있지만 이민 문호를 열어 젊은 외국 의대 졸업생들을 수입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보조의사 제도, 임상간호사 제도를 강화해 의사들의 과중한 업무를 나누는 정책을 이미 시행하고 있다. 또 전자 임상기록 제도 등의 발전과 도입으로 편하고 합리적인 의료 행위를 할 수 있게 돕고 있다.

한인사회라는 특수한 환경에서 일 해온 기존 세대, 또 살기 힘들어 ‘꼰대’들은 물러가 달라는 차세대들에게 함께 힘내자고 응원한다. 주류사회로의 진입을 추천한다면 또 쓸데없는 꼰대짓 한다 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 길에는 ‘서프라이즈’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어쩌면, 그래서 나는 스스로 디아스포라의 길을 택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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