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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 기고] 드라마 ‘체르노빌’과 코로나 바이러스

많은 사람과 매체들이 아직도 코로나19의 최초 발병원인에 관해 이야기한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큰 사태로 번진 원인은 자명하다. 바이러스 전파를 초동진압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중국정부가 사고를 통제하고 수습하지 못했기 때문에 아시아 전 국가가 인력과 비용을 투입해 통제하고 수습해야 하는 사태가 되고 만 것이다.

이런 모습을 보며 떠올린 것은 미국 드라마 ‘체르노빌’이었다. 드라마는 밤하늘로 솟구치는 기이한 빛기둥으로 시작한다. 멀리 검은 숲 너머, 원자력발전소 핵반응로에서 굉음과 함께 솟아오른 환하고 곧은 빛기둥. 주민들은 발전소에 화재가 났다는 것만 알뿐 그 화재가 어떤 화재인지 설명을 듣지도 대피 명령을 받지도 못한다. 사고를 일으킨 발전소의 최고책임자는 폭발이 벌어진 그 자리에서조차 폭발을 부정한다. 최초 보고를 받는 시장과 시 위원회도 마찬가지다. 간이방사능 측정기의 한계치를 실제 방사능 유출량으로 치부한 채 폭발사고를 축소하고 은폐하는데 합의한다. 그 때문에 주민들은 엄청난 폭발이 발생한지 36시간이 지나서야 대피 명령을 받고 도시를 떠나는 버스에 오르게 된다.

이후의 통제와 수습은 건건이 사람의 목숨을 대가로 요구한다. 하지만 그마저도 효율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역시 관료들 때문이다.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 반응로 주변의 파편을 다시 밀어넣는 작업에서다. 피해와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해 현장담당자들은 달탐사에 쓰는 로봇을 이용하자고 건의한다. 정부에서도 순순히 받아들인다. 하지만 서독에서 조달해 온 로봇은 현장에 투입하자 곧바로 고장나 멈춰버린다. 정부가 서독에 협조를 구할 당시 방사능 유출량을 축소해 말했기 때문이다. 결국 사병들이 허술한 방호복을 입은 채 그 작업을 하게 된다.

드라마는 시종일관 처참하고 참담하다. 권한과 책임이 있지만 오만과 무지로 무능력한 관료들은 헛발질만 한다. 반면 권한도 책임도 없지만 양심과 용기가 있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일을 한다. 그것이 업(業)이기 때문에, 그 업을 완수하지 않으면 더 많은 사람이 무고하게 휘말릴 것이기 때문에. 드라마의 가장 아름답고 숭고한 장면은 그렇게 만들어진다. 반응로의 추가폭발을 막기 위한 작업에 원전 근로자 세 명이 자원할 때, 사고와 관계도 없고 나중에 보상도 받지 못할 광부들이 오염의 확산을 막기 위해 반응로 밑에 들어가 알몸으로 터널을 뚫을 때, 핵물리학자가 자신의 장래와 자유를 포기하며 사태의 진실을 밝히고 목숨을 바쳐 그 진실을 기어이 전하고 말 때.



그 아름다움과 숭고함은 드라마의 것만이 아니다. 지금 우리가 병원과 우한 영사관에서, 교민들을 실어온 전세기와 아산·진천에서 목도하고 있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그 오만과 무지도 중국과 일본의 납득하기 어려운 대처들에서 우리가 두 눈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불과 2015년 메르스 사태 때 우리가 이곳에서 이미 겪었던 것이기도 하다. 우리 역시 실패를 경험했기 때문에 이제 그 실패의 의미는 명백해 보인다. 실패는 국가나 민족도 임명직과 선출직, 체제를 가리는 것도 아니다. 실패는 관료들이 오만하고 무지할 때 일어난다. 권력을 지키고 진영을 보전하는데 골몰하느라 관료들이 진실에서 눈을 돌릴 때, 자신들의 권력과 권한으로 그 오만과 무지를 감추려 거짓을 가리키고 있을 때.

다행히 지금 우리의 대처는 어느 정도 성공적으로 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더욱 실패의 가능성을 염두에 둬야 하지 않을까? ‘체르노빌’은 이런 대사로 끝맺는다.

“나는 한때 진실을 말하는 대가가 두려웠다. 하지만 지금은 이렇게 물을 뿐이다. 거짓의 대가는 무엇인가?”


이혁진 /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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