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별 뉴스를 확인하세요.

많이 본 뉴스

광고닫기

기사공유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
  • 공유

[수필] 로즈 퍼레이드

[중앙포토]

[중앙포토]

올해도 새해 첫날, 패서디나에서 로즈 퍼레이드가 열렸다. 올해로 131년째를 맞는 이 행사에 어떤 멋진 꽃차가 나왔을까 기대를 하면서 2시간 내내 TV를 보았다. 서너 개 채널에서 동시에 중계했는데 세계적으로 대략 6천만 명 정도가 시청을 한다.

화면에 구경하는 사람들이 빽빽이 보인다. 꽃차가 지나는 5.5 마일에 이르는 길 양편으로 수만 명이 서서 구경을 한다. 관람객들 중 많은 사람들이 하루 전날 일찍이 와서 의자에 앉거나 임시 텐트를 만들어 추운 밤을 지새우며 입석 자리를 확보했다고 한다. TV 기자가 인터뷰한 몇 가정의 얘기를 들어보니 해마다 온 가족이 전날부터 노숙하면서 새해 아침 로즈 퍼레이드를 보는 것이 가족의 전통이 되었다고 한다.

작년에 아내와 나는 로즈 퍼레이드를 끝낸 꽃차들을 한 곳에 모아 놓은 곳에 구경하러 갔었다. 행사를 마친 다음날 딱 하루만 전시하기에 수천 명이 몰렸다. 주차장과 전시장 사이에 셔틀 버스가 다니는데 기다리는 줄이 너무 길어 전시장에 도착하니 오후 3시나 되었다.

TV로 볼 때는 작아 보이던 꽃차가 가까이에서 보니 대형버스만큼 컸다. 늘어선 꽃차들은 야외 공원에 커다란 조각 예술품들이 늘어선 것 같았다, 모두들 사진을 찍느라 분주했다. 꽃차 한 대 한 대가 예술품이었다. 감탄사가 절로 났다. 장미뿐만 아니라 여러 종류의 꽃잎을 한 조각조각 떼어 붙여 물고기나 잠수함의 모습을 만들었다. 꽃잎이 마르기 전에 밤새워 일해 작업을 마친 수많은 사람들의 정성이 느껴지는 예술 작품이다.



그뿐만 아니다. 꽃차 위에 전시된 조형물 중에는 꽃으로 장식된 용머리가 움직이고 입에서 불도 뿜는다. 수백 송이의 탐스러운 빨간 장미와 노란 장미들로 뒤덮인 어느 꽃차의 옆모습은 혼자 보기가 아까울 정도였다.

은은한 장미꽃의 향기도 맡을 수 있었다. 시드는 것을 막으려 수백 송이의 장미꽃 줄기들이 각각의 물병들에 꽂혀있었다. 덮개로 가려 수많은 물병들이 안 보이게 했다. 꽃 한 송이마다 생명의 신선함을 오래 간직하려는 노력이 보였다.

나는 오래전에 이 행사에 대해 못마땅하게 생각했었다. 꽃차 한 대 꾸미는데 비용이 대략 수십 만 불이 든다고 한다. 집 한 채 값이다. 이 행사에 참여하는 꽃차들이 대략 50대나 된다. 그렇다면 이 행사로 꽃차 제작에 매년 수천 만 불의 돈을 쓴다. 하지만 전시할 수 있는 날이 고작 며칠이 못 된다. 아무리 아름다운 꽃차 행사라고 해도 며칠 만에 수천만 불을 쓰다니 너무 호화스럽고 사치스럽다고 생각했다. 낭비한다고 느꼈다. 진짜 생화 대신에 만든 꽃인 조화를 쓴다면 비용도 엄청 줄이고 행사 후 보관도 영구히 할 수 있다. 하지만 좀 더 생각해보니 내 생각이 짧은 것을 알게 되었다. 만약 생화가 아닌 조화로 만든 꽃차로 로즈 퍼레이드를 한다면 사람들이 이처럼 열광하겠는가 하는 점이다. 대부분 흥미를 안 느껴 대회가 존속하지 못했을 것이다.

역설적인 얘기로 들리겠지만 생화가 꽃을 오래 피우지 못하고 시들어 죽기 때문에 사람들은 열광을 한다. 꽃이 활짝 핀 그 짧은 순간의 화려함에 매력을 느끼고 감동을 받는다. 조화는 생화처럼 비슷하게 생겼어도 죽지 않는 무생명력이라 사람들은 권태감을 느끼고 매력을 못 느낀다. 그러고 보면 꽃차의 그 많은 비용이 공중으로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수많은 생화를 공급하는 농부의 중요한 수입원이 된다. 꽃차의 주제에 맞는 모형을 디자인하는 사람의 비용도 포함되므로 낭비라고 단정 지을 수 없다. 6천만 명이나 이 행사를 보고 즐긴다면 수천 만 불이 들어도 낭비는 아니다. 이런 생각을 하니 로즈 퍼레이드가 왜 이리 오랜 세월 동안 존속하는지도 알게 되었고 제작에 관여한 많은 사람들의 수고에 감사하게 되었다.

로즈 퍼레이드는 동부에서 오전 11시에 봐야하므로 행사가 아침 8시부터 시작한다. 새해 아침의 생동감처럼 꽃차가 나오면 그 뒤로 경쾌한 행진곡을 연주하는 브래스 밴드단이 나온다. 연주하는 음악에 따라 기수단원들이 깃발을 흔든다. 그 뒤로 말 탄 기마대가 따르고, 오래되고 유명했던 차량을 타고 지역 내 유명 인사들이 손을 흔들며 지나간다. 희망의 새해 첫 하루처럼 지루하지 않게 빨리 빨리 진행한다.

올해 꽃차 중에 내게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헌팅턴 라이브러리 꽃차였다. 꽃차 위에 중국식 정원으로 연못과 기와집 모양의 정자가 서 있다. 미술관을 상징하는 커다란 액자에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액자 속의 그림을 꽃잎을 붙여 수놓았다. 선인장으로 유명한 곳이어서 커다란 선인장 모형에 수많은 녹색 꽃잎을 붙이고 가시를 그럴듯하게 만들었다.

테네시에서 온 고등학교의 밴드단은 백여 명이 넘었다. 빨간 상의에 검은 하의를 입고 모자 앞에는 깃털을 수직으로 세웠다. 마치 런던 왕실의 수비대가 입는 의상을 닮았다. 그 뒤를 이어 많은 수의 기수단이 원색 깃발을 흔들며 지나갔다.

외국에서 참가한 꽃차도 여러 개 보인다. 일본 어느 지방 도시에서 참여한 꽃차는 일본식 정원모습과 작은 폭포를 보여줬다, 꽃차 뒤로 수백 명의 일본 고등학생들의 관악기 밴드단이 경쾌한 행진곡을 연주하면서 입장한다. 뒤이어 수십명의 기수단이 뒤따르면서 음악에 맞춰 허공을 가른다. 일본 유도의 모습을 담은 행진인지 걷다가 모두가 그 자리에서 한 바퀴 돌기도 하고 기합 소리도 냈다.

머리 한쪽에 커다란 꽃을 단 코스타리카 여성들이 전통의상을 입고 등장했다. 그 나라 음악에 맞춰 폭이 넓고 화려한 원색 치마를 이리저리 흔들어댄다. 치마 레이스에는 빨강, 하양, 파랑 등 원색의 굵은 선이 수놓아져있다. 남성들은 빨간 상의에 하얀색 바지를 입고 전통악기로 연주를 한다. 남미의 화려하고 특색 있는 의상과 음악에 매료된다.

올해는 작년과 달리 특별 순서가 있었다. 퍼레이드이므로 행렬이 계속 앞으로 움직여야하는데 디즈니랜드 순서에는 행렬을 잠시 멈추는 예외가 있었다. 본부석 앞에서 약 5분 정도의 시간에 즉석 축하 노래 공연을 했다. 디즈니랜드의 영화와 뮤지컬인 ‘프로즌2’에 나오는 주인공 여배우가 독창을 하고 조연으로 나온 10여명이 오페라처럼 열창을 한다. 노래 순서를 마치고는 디즈니랜드 꽃차에 모두 올라 노래를 부르며 유유히 떠나간다.

새해 들어 ‘코로나19’로 온 세상이 두려움과 걱정으로 힘들어 하고 있다. 하지만 과거 창궐했던 ‘사스’나 ‘메르스’가 사라진 것처럼 ‘코로나19’도 곧 사라질 것이다. 남가주에 있는 시티 오브 호프 병원 재단이 출품한 꽃차 앞에 표어가 붙어있다. ‘Hope keeps us going(희망이 우리를 전진하게 한다)’. 그렇다. 조만간 우리를 괴롭혔던 ‘코로나19’가 사라지는 희망을 갖자. 그리고 내년 로즈 퍼레이드를 또다시 희망을 갖고 기다려 보자.


윤덕환 / 수필가·문학세계 등단



Log in to Twitter or Facebook account to connect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help-image Social comment?
lock icon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