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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트럭커의 사는 이야기

[시애틀 중앙일보] 기사입력 2020/02/23 11:27

여덟 번째 이야기 - 일하고 임금 못 받고

미국 이민이 결정된 후 한국에 모든 것을 놓아야 하는 상황에서 이민 사이트를 매일 검색하고 정보를 수집할 때 이민생활이 오랜된 선배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 있었다. 미국 오면 한국 사람 조심해라. 그리고 절대 돈거래 하지 말아라.

전에도 말했지만 초기 이민을 오신 분들은 정부에서 미국으로 가지고 나가는 돈 제한을 많이 했고 또 나라 형편상 몇몇 사람을 제외하고는 가지고 나갈 돈도 없어 모두가 빈털터리로 오직 자신의 몸만 믿고 이민을 오신 분들이 많았다. 그러나 지금은 이민온다고 하면 몇십만불 몇백만불은 기본으로 지참을 하고 온다.

그래서인가 그런 사람들이 미국 와서 도움이 필요해 교회나 어느 커뮤니티에 어울리다 보면 유난히 친절을 베풀고 잘 해주던 사람들과 돈거래를 하다 보면 결과는 거의가 불행으로 끝난다고 한다. 난 한국 사람 조심하라고 하는 선배 이민자들에게 기댈 곳은 한국 사람밖에 없다. 우리가 이민생활에서 어려움을 당했을 때 도와줄 사람은 그래도 한국 사람이다. 미국 사람이라고 사기 안 치는 줄 아느냐.

우리가 언어가 안 돼 그들과 접촉이 적어서 그렇지 인간은 똑같다 하며 반박했는데 내가 이민 와 첫 한국 사람에게 당하는 케이스가 되었다. 나와 함께 운전을 했던 트럭 오너는 어디론가 숨어 나타나지도 않고 내가 TRIP을 떠나기 전 잠시 면담을 하면서 팀으로 일을 나가면 때론 서로 싸우고 중간에 비행기 타고 돌아오는 사람도 있다. 일하는 중간에 어려움이나 문제가 있으면 자기한테 연락하라며 온갖 친절을 다 베풀던 사장은 머리 올려주었더니 돈 달라고 한다고 황당한 궤변으로 나 몰라라 하고...

아~ 이래서 한국 사람 조심하라고 하는 말이구나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한 달 보름을 공짜로 일을 부려 먹었던 것이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그 회사가 나뿐만 아니라 늘 그래왔다고 한다. 아쉽고 영어 못하는 사람들 싼 임금으로 착취하고 그거라도 황송하다고 붙어있는 힘없는 사람들은 울며 겨자먹기로 일을 나서고... 계약서가 없어 노동부에 고발도 안 되고 분한 마음에 여러 아는 지인에게 물어보니 처음엔 다 그렇다고 한다. 어떻게 이런 일이 관례처럼 흘러왔는지 이해가 안 되었다. 모든 것이 철저하고 인권이 잘 보장되어 있다는 미국에서 일어난다고 상상도 못했다.

그때까지만해도 미국을 모르고 어떻게 대처할 줄 몰라 결국 돈을 못 받았지만 지금에야 https://www.uscis.gov / default/ files / Report_Labor_Abuses-Korean 이런 싸이트가 있어 고발하면 된다는 것을 알았다. 어쩔 수 없이 난 시애틀로 돌아오기 위하여 내 승용차 파킹해 놓은 곳으로 가는데 마침 그곳에서 나와 함께 운전했던 오너와 마주치게 되었다. 소리 지른들 뭐하랴. 줄 사람이 못주겠다 하는데... 미국은 그렇다고 주먹을 휘두르면 도리어 잡혀간다고 누군가 내게 말을 해 준다.

결국 사정사정해서 500달러 체크를 받고 난 쓸쓸히 시애틀로 향했다. 이젠 시애틀-LA를 승용차로 드나드는 것이 이웃집 드나드는 것 같다. 이민 와서 캐쉬로 7000달러를 주고 산 중고차는 먹고 살려고 발버둥치는 내가 안됐는지 고장도 없이 달리긴 잘도 달린다. 미국은 전세 개념이 없이 거의 월세 개념으로 매달 집 렌트비를 내야 하고 거기에 유틸리티비, 자동차 보험료, 생활비 등 고정으로 들어가야할 돈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LA 왕복 경비와 한 달 넘게 무임금노동을 했으니 한국서 겨우 몇 푼 가져온 돈 곶감 빼먹듯 빠져나간다. 일주일을 집에 있는데 도저히 더 있을 수가 없었다. 한국에 있을 때 트럭 정보를 주고 LA 내려가 처음 만났던 사람이 생각나 그에게 전화를 했다. 자초지종을 이야기하니 그도 당연한 듯 그런 일 LA에는 많다고 한다.

‘나성에 가면 편지를 쓰세요’ 노래가 있었던가. 모든 환상을 무너지게 한 곳이 내겐 LA였다. 세상이 어찌 나쁜 사람들만 존재하겠는가. 지인이 내 이야기를 듣고 자기 형이 트럭 일을 하다 지금은 디스패쳐(DISPATCHER)를 하기에 트럭이 서 있으니 그 차를 운전해 볼 마음이 없냐고 묻는다. 두말할 것 없이 나야 흔쾌히 승낙을 하고 다시 짐을 싼다. 또 다른 희망을 안고 다시 LA로 향했다. 예전에 할아버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다. 내가 살던 집이 불이 났다고 살면서 불을 멀리할 수 없고 내가 귀하게 여기는 사람이 물에 빠져 죽었다고 물을 멀리하고 살 수 없다.

인간에게는 필요 불가결한 일이 있다. 바로 LA가 지금 내겐 그런 존재인 것 같다. 정말 이젠 LA가 이웃집 같다. 벌써 5번째 왕복이다. 트럭은 Freightliner Class Truck이었다. 기어는 13단에 미국 트럭커들이 좋아하는 앞에 각이 크게 진 초보자가 운전하기엔 조금은 힘에 겨운 트럭이었다. 그러나 내가 지금 찬밥 더운밥 가리랴... 그런데 지인 분은 내게 팀 운전을 원했다. 그래서 나보다 나이 어린 또 다른 친구와 함께 우린 길을 떠났다. 그 친구는 이미 미국회사에서 일 년간 트럭을 몰다가 왔기에 트럭 법규나 규정에 대한 정석을 잘 알고 있어 그 친구와 함께했던 시간이 훗날 내가 오너로 일을 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그 친구는 세탁소를 하는 게 꿈이란다. 그래서 두어 달 여기서 일을 하다가 세탁소 가게가 나오면 트럭 일을 그만할 거라 말한다.

또다시 찾은 뉴욕의 겨울은 내게 엄청난 시련을 주었다. 지난 번 올 땐 늦여름이라 날씨가 좋았는데 이번에는 겨울이었다. 눈이 왜 그리도 많이 오는지 앞이 안 보이고 트럭이 이리 비틀 저리 비틀거렸다. 모든 트럭들이 일을 멈추는데 우린 왜 그리도 악착같이 그 눈길을 뚫고 달렸는지 모르겠다. 그 친구나 나나 바퀴가 구르면 돈이니 아마도 돈이 필요했던 것 같다. 그 친구는 닭공장을 통하여 미국에 왔다고 한다. 난 그런 말을 들을 때 그렇게까지 하면서 미국을 와야 했을까 의문이 든다. 이렇게 고생하는데 무엇때문에 여길 오려고 닭공장까지 거쳐서 올까. 내겐 의문이었다. 그러나 그들에겐 무언가 간절함이 있었으리라. 희망? 미래? 행복?

내가 경험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식들의 미래를 위하여 이민을 선택했다고 말들을 한다. 미국에 오니 우리 민족이 얼마나 대단한 민족인지 수학경시대회 나가면 상을 휩쓸고 학교에서도 공부를 제일 잘하는 학생 그룹에 속한다. 한국에서 몰랐던 잠재능력이 미국 오니 마구마구 솟아나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가 학교 다닐 때 부모 형제 이웃들은 물었다. 너 이 담에 커서 뭐가 될래? 대답은 마치 답안지가 있는 듯 대장, 대통령, 검사, 판사, 만약에 나 농사 지을래, 회사원 할래 하면 모두가 넌 꿈도 없냐, 꿈을 크게 가져라 하며 핀잔을 주었다. 경쟁! 경쟁! 하나뿐인 대통령을 향하여 모두가 달려가고 몇 안 되는 판.검사를 위하여 인생을 모두 허비하는 남은 없고 오직 점수로 인생을 평가하는 사회에 살다보니 미국의 이런 평화로움이 얼마나 좋은가.

학교수업은 오전만, 오후엔 취미생활의 여유로움과 개성을 살리는 교육. 정말 부모들이 자식을 위하여 해줄 수 있는 최선의 길임은 분명하다. 그러기 위해 이민 1세대라 하는 부모들은 어떻게 사는가 뒤돌아볼 필요가 있다. 나도 세 자녀를 둔 부모로 가지고 온 돈은 한계가 있고 자식들은 학교를 다니니 매번 등록금과 용돈은 주어야 하고 그러자니 눈 오는 길에도 위험을 무릅쓰고 달리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정신없이 달리고 달려 한 달 조금 넘어 LA로 돌아왔다. 고생은 엄청한 것 같은데 손에 쥐어진 돈은 2000달러 조금 넘었다. 한 달 식비와 경비를 빼고 나면 집 렌트비 내는 것도 모자랐다. 그러니 집사람이 투잡을 뛰면서 부족한 돈을 메꿔 나갔다.

이런 현실을 알면 과연 이민 오려고 머리 터져라 덤벼들까? 하는 의문이 또 들었다. 한국에 못 살겠다 이것저것 안 좋네 해도 그런 사람 미국 데려와 밤새 청소시키고 이른 새벽 일 시키며 테리야끼에서 닭 튀기고 그로서리에서 캐쉬잡 일하며 한 달에 2,3천 달러 가져간다면 보이지 않는 차별 속에 반벙어리로 살아야 한다면 과연 몇이나 그런 불만을 토로할까 생각해본다. 한국 경제가 엉망이라고 아우성이고 못 살겠다 하지만 내가 한국 나가보면 식당이고 관광 명소고 발 딛을 틈이 없다. 난 평론가도 경제인도 아니지만 이민 초기 생각지도 않은 고생을 하다보니 모든 것이 배부른 소리로 들린다. 난 오늘도 트럭에서 기름값 아까워 추위에도 시동 한 번 제대로 못 켜 놓고 새우잠을 자는데... 누가 그렇게 살라 했느냐 반문한다면 할 말은 없다. 내가 선택한 길이니깐...

△필자 김종박 약력

중앙대 부속 중고 졸
육군 삼사관학교 18기
영주전문대 경찰행정 졸
동양대 사회복지과 졸
사회복지사
현) 코리아 시애틀 익스프레스 오너 및 오퍼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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