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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 그레이 칼럼] 꿈과 현실

[애틀랜타 중앙일보] 발행 2020/02/26  0면 기사입력 2020/02/25 13:28

요즈음 멋진 꿈을 꾸었다. 오래전에 세상을 떠난 외할머니가 나를 찾아온 며칠 후 다시 어머니의 방문을 받았다. 그분들과 생전에 나누었던 같은 대화를 나눈 후 잠을 깼다. 평소 뵙고 싶었던 할머니와 어머니를 봐서 행복했지만 어두운 집안에 오롯이 앉아서 곰곰 생각해봤다. 두 분과 반세기 훨씬 전에 나누었던 대화의 주제가 아직도 내 삶에 중요한 것이 놀라웠는데 그 평범함 속에 평안이 있었다.

할머니를 뵐 적마다 할머니가 “밥 먹었니?” 물으시면 난 항상 “아니요”라 답했다. 그리고 할머니가 차려주신 맛난 음식들을 맛있게 먹었다. 우습지만 성인이 될 적까지 난 할머니의 이름을 몰랐고 그리고 그 사실이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가족도표에도 할머니는 그저 외할머니로 적었다. 사실 할머니뿐만 아니라 친척 어른들은 모두 고모, 고모부, 큰아버지, 작은아버지, 큰삼촌, 작은삼촌, 이모 등 호칭으로 도표에 적었다. 그들의 이름은 몰랐어도 그들이 가족관계에서 어떻게 나와 연결되어 있음은 분명히 알았다.

내가 아주 어릴 적에 본 할머니의 생활은 이상했다. 집안의 제일 어른인 할머니가 본채와 떨어진 화장실 옆에 있는 냄새나는 골방에서 외면을 받고 당신의 옷도 직접 빨아 입으셨다. 말수가 적은 큰외삼촌은 집안에 불화를 피하느라 외숙모의 거친 언행을 묵인했다. 그것을 보다 못한 막내 이모가 할머니를 모시고 나가서 살았다. 할머니는 결혼도 마다하고 직장을 다니며 당신을 돌보는 막내딸이 안쓰럽고 짐이 되었다며 늘 미안해하셨다. 기독교를 전혀 모르시던 할머니의 마음가짐은 손주들에게 십계명처럼 분명한 옳고 그름에 대한 도덕적인 가르침을 줬다.

경북대학교의 사무직으로 근무하던 노처녀 이모는 멋진 여인이었다. 신식 가옥의 깨끗한 방을 구해서 아름답게 단장해서 할머니를 편히 모셨다. 그리고 퇴근하며 간식거리를 사와서 할머니에게 주셨다. 할머니는 조금 맛만 보시고 이모가 아무리 말려도 나머지는 손주들을 위해서 보관하셨다. 특히 초등학생이었던 나는 할머니의 단골손님이었다. 엄마의 심부름으로 할머니를 찾다가 나중에는 색다른 과자를 먹으려고 할머니를 찾아갔다. 특히 추운 날 따스한 아랫목에 몸을 녹이며 할머니가 주신 맛있는 군것질을 즐기는 행복은 어디에 견줄 수 없었다. 그때 집에 가져가서 형제들과 나눠 먹을 생각도 하지 못한 철부지였다.

노후에 아들들과 며느리들보다 더 든든한 딸의 돌봄을 받으시던 할머니는 낮에는 다른 노인들과 강둑에서 만나 서로 외로움을 달랬다. 노인정이 없던 시절이어서 노인들은 여기저기 빈터에 모였었다. 내가 서울서 고등학생이었던 어느 날, 90 가까운 나이의 할머니가 여느 날과 다름없이 횡단보도를 건너다 차에 치여 돌아가셨다. 한국 거리에 낯선 젊은 미군 병사의지프에 치여 세상을 떠나신 할머니의 장례식에는 부모만 참석했고 우리 형제들은 아무도 대구로 내려가지 않았다. 충격적인 그날부터 할머니는 내 가슴에 영원히 따스한 불꽃으로 계신다.

친할아버지나 할머니, 외할아버지는 모두 내가 태어나기 전에 돌아가셨고 유일하게 생존해 계시던 외할머니는 내 어린 시절에 중요한 분이셨다. 자식들이 줄줄이 태어나 정신없이 바쁜 어머니 대신에 내가 의존했던 분이셨다. 집안에 무슨 일이 일어났을 적마다 나는 할머니 집으로 뛰어가 할머니를 모셔왔다. 만사 의지하고 사랑했던 할머니 생전에 한 번도 “할머니 사랑해요”라 한 적이 없는 것이 죄송해서 가끔 하늘을 보고 “할머니 사랑해요!” 외친다.

나와 남편은 각자의 모국인 한국과 일본의 뒤엉킨 인연과 비슷하게 만사에 의견 차이로 티격태격하는 버릇이 있었다. 그러다가 2016년 대통령 선거 후부터는 민주당과 공화당이 일으키는 열풍에 휩쓸려 휘청거린다. 지난 3년 어지러운 사회와 뒤죽박죽인 정치풍토가 세상사에 관점이 다른 우리 부부를 완전히 분열시켰다. 이제는 식탁에 앉아 함께 밥을 먹지 못하는 상황으로 악화되어서 나의 일상이 많이 건조해졌고 남편도 같은 형편이다. 올 선거철을 어떻게 버티나 걱정하니 자연히 따스하게 보듬어주시던 할머니가 그립고 어머니가 그리웠다. 그러다가 꿈에서라도 두 분의 방문을 받고 무척 좋았다. 어쩌면 나 사는 모습이 딱해서 찾아오셔서 평안을 주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분들의 방문이 올해 일어날 많은 근사한 일들의 전조였음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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