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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론] 코로나19와 한·중 관계

나라가 이래도 되나. 우리 공동체가 고작 이 정도였는가. 최첨단 의료시스템과 초연결, 실시간 정보 공유라는 첨단 문명시대의 국민 생명과 안전 문제에 대해, 충분한 대처 시간이 있었음에도 이리 생명 민감성이 둔감하고 대처에 무능해도 되는 건가.

국민 안전이 존재 이유인 국가의 임무는 말할 필요도 없다. 중국과 종족이 같거나, 국경을 맞대고 있거나, 외교 및 경제 관계가 우리보다 더 밀접한 인근 나라들의 신속 단호한 대처와 현재의 질병 확산 정도, 대중(對中) 관계, 그리고 국제사회의 대우를 우리와 비교하면, 그간의 온건 대처가 경제 현실과 외교 관계 때문이라는 우리 정부의 논리는 근거가 없다는 점이 분명하다. 역사를 보면 정부의 논리는 외려 거꾸로다.

한국의 운동권 세력은 안보와 경제가 거의 전부 미국에 의존하고 있을 때조차, 현실 인정 대신 대미 종속을 타파하자며 반미운동을 지속했다. 반대로 지금 중국에 대한 대응은 ‘종속’ 인식은커녕 운명공동체라는 지평까지 나아갔다. 그러나 중국은, 한말 위안스카이, 2차대전 직후의 마오쩌둥, 오늘의 시진핑 체제에서 보듯 결정적 시기에 호혜적이기 보다는 고압적이었다.

국민 생명과 국가 주권을 보호할 때 비로소 경제 이익과 국가 품격도 높아진다. 혹여 대중 경제와 외교가 주요 결정 요인이라고 하더라도 금번 위기를 장기적으로는 생산과 무역의 과도한 중국 의존을 줄일 수 있는 국가전략 전환의 기회로 삼을 필요가 있다.



문명의 전환에는 항상 막대한 인간 희생이 들어간다. 중화체제에서 만국공법·제국주의 체제를 거쳐 근대 국제체제 및 자유세계 질서로 전환하는 동안 한국은 개항, 청일전쟁, 러일전쟁, 한일강제병합, 분단, 한국전쟁이라는 대고난을 치렀다.

그러니, 진영맹(陣營盲), 민족맹(民族盲), 이념맹(理念盲)은 공동체의 장기 토대를 해치는 카시우스의 칼이 될 수 있음을 명심하자. 시저를 죽였던 칼에 카시우스 자신이 죽었던 상황을 말한다. 카시우스의 칼은 자주 반복된다. 가치와 정의의 칼은 네 편 내 편과 진영을 가리지 않는다. 내가 자의로 나눈 선악과 진영을 넘어 존재하기 때문이다. 과거 적폐(악)를 향했던 정의의 칼이 오늘의 적폐(선)를 향하자, 대결은 내가 사용했던 그 정의의 칼과 나의 싸움으로 돌변하였다. 똑같은 칼을 이제는 불의의 칼이라고 공격한다. 이제 누가 악인가? 80년대식 진영맹 때문이다.

미국발 광우병과 일본의 수출 규제처럼 ‘잠재적 위험’에 대해 드러냈던 강렬한 반감에 비추어, 중국발 코로나19와 북핵 위기라는 ‘현재적 위험’에 대한 온건한 대처 사이에는 심각한 반대 편향이 존재한다. 국익과는 관계가 없는, 전체주의와 독재체제마저 간과한, 이념맹 때문이다.

우리의 끝없는 관계개선 시도, 지원 의사와 선의 표시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반대로 남북관계 단절은 물론 금강산 시설물 철거 주장, 개성 남북연락사무소 일방 철수 주장, 그리고 우리 지도자와 정부에 대한 굴욕적 비난과 조롱을 계속 퍼붓는다. 80년대식 민족맹이 놓친 현실 때문이다.

어떤 비판도 없이, 중국에 대한 호의와 선의, 나아가 운명공동체 인식에 대한 반복적 공감의 표시에도 불구하고 사드 배치, 북핵, 미세먼지, 코로나19에서 우리에 대한 그들의 배려, 미안함, 공감은 찾기 어렵다. 80년대식 이념맹이 보지 못한 냉혹한 국가 이익 때문이었다.

3대 맹을 넘어 국민 생명과 국가 주권이 세계에서 더욱 인정받고 존중받는 나라로 꽃피게 하자.


박명림 / 연세대교수·김대중도서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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