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별 뉴스를 확인하세요.

많이 본 뉴스

광고닫기

기사공유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
  • 공유

[열린 광장] 바이러스가 빼앗아 간 봄날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봄은 왔건만 봄 같지가 않다’는 중국 한시에서 나온 이 구절이 요즘처럼 딱 맞아 떨어지는 경우도 없을 듯하다. 작년 이 맘 때는 남가주에 수퍼블룸 현상으로 파피꽃을 비롯한 야생화가 장관을 이뤄 구경을 갔던 기억이 난다. 올해는 겨울 강수량도 모자라 제대로 된 꽃구경도 어려울 거라지만 세상사 돌아가는 형국을 보면 꽃나들이는 엄두도 못 낼 판이다.

코로나19라는 괴물이 블랙홀처럼 모든 것을 집어 삼키고 있다. 과대 포장된 소식에 가짜 뉴스까지 걷잡을 수 없이 나돌며 자영업자와 서민들의 생계마저 위협하고 있다. 사재기에 나선 사람들로 인해 마켓에는 물도 떨어지고 휴지까지 떨어지는 등 오랜 미국 생활에서도 겪어보지 못한 초유의 사태가 일상을 바꿔놓고 있다.

내가 태어나 자랐고 지금도 많은 가족, 친지들이 살고 있는 대구, 경북에서 일어난 집단 감염사태를 보는 심사는 착잡하기가 이를 데가 없다. 학창시절의 대부분을 보낸 곳이기에 많은 추억이 서려있는 대구, 경북이 어쩌다가 이런 지경이 됐는지 안타깝다. 곧 백세를 바라보는 부친이 입소해 있는 경북의 요양병원에서는 감염예방을 위해 모든 면회가 일체 금지돼 자식들조차 가 볼 수 없다는 소식을 들으니 기가 막힌다.

꽃피는 봄을 맞아 고국 방문을 계획하던 사람들이나 해외 출장, 여행 계획도 다 뒤틀어져 버렸다. 작년 말 자기네 보금자리인 일본으로 돌아가 살고 있는 손녀를 보러 가려던 우리 부부의 계획도 당분간 미뤄야 할 것 같다. 그때만 해도 이런 사태가 오리라고는 예상도 못했건만 하루 한번 시간을 맞춰 페이스톡을 하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래야 하나보다.



참 어렵고 힘든 혼돈의 시대다. 그런 와중에서도 고국에서 들려오는 훈훈한 뉴스가 눈길을 끈다. 대기업이나 연예인을 비롯해 많은 국민들이 코로나19 사태 극복을 위해 낸 성금이 수백억원에 이르고 있다는 소식이다.

다른 지역의 의사, 간호사들이 생업을 미루고 대구로 지원해서 달려가고 있는가 하면 전라도 진도 주민들이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대구 주민들에게 봄동 나물과 정성스럽게 만든 도시락 수백 개를 매일 대구로 보내고 있단다. 몇 년 전 세월호 참사 때 온정을 입었던 전라도민들의 답례라고 한다. 먼 이국땅에서 이런 소식을 접하니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감동을 받는다. 좁은 땅에서 위정자들이 자기들 필요에 의해서 조장하고 이용한 지역감정을 허무는 아름다운 소식들이다.

이제 바이러스의 발원지인 중국에서는 거의 소강상태로 들어간 듯하고 우리나라도 조금씩 진정의 기미가 보인다는 소식은 봄날 꽃소식보다 더 반갑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를 노래한 일제 강점기 저항시의 무대이기도 한 대구는 요원의 들풀처럼 타 올랐던 국채보상운동을 점화시킨 곳이다. 그 들판에 찬란한 봄이 왔듯이 우리 고국은 물론 전 세계에서 어서 빨리 이 사태가 종식되어 꽃피고 새 우는 봄다운 봄을 맞이할 수 있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송 훈 / 수필가



Log in to Twitter or Facebook account to connect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help-image Social comment?
lock icon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