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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극으로 재탄생한 ‘국경의 밤’…뉴욕 사는 딸 소설가 김지원씨 ‘문학사상’에 발표

파인 김동환이 지은 한국 최초의 서사시

“아하, 무사히 건넜을까/ 이 한밤에 남편은/ 두만강을 탈없이 건넜을까?/ 저리 국경 강안(江岸)을 경비하는/ 외투 쓴 검은 순사가/ 왔다-갔다-/ 오르명내리명 분주히 하는데/ 발각도 안 되고 무사히 건넜을까?/ 소금실이 밀수출 마차를 띄워놓고/ 밤새가며 속태우는 젊은 아낙네/ 물레 젓는 손도 맥이 풀어져/ 파! 하고 붙는 어유(魚油) 등잔만 바라본다/ 북국의 겨울밤은 차차 깊어가는데.” -김동환 ‘국경의 밤’ 제 1장-

뉴욕에 사는 소설가 김지원(65·사진)씨가 부친 김동환(1901∼?)의 서사시 ‘국경의 밤’을 각색한 시극(詩劇)을 월간 ‘문학사상’ 3월호에 발표해 문단의 주목을 끌고 있다.

한국 최초의 서사시 ‘국경의 밤’은 파인(巴人) 김동환이 1925년 출간한 동명 시집에 수록된 작품. 3부 72장 893행으로 구성된 원작시는 두만강을 건너간 소금 밀수꾼 남편과 남편이 떠난 사이 돌아온 옛 애인 사이에서 갈등하는 ‘순이’가 여주인공이다.

이를 통해 애정의 삼각관계, 지방 소외계층의 애환, 그리고 일제강점기 어두운 조국의 현실을 노래한 작품이다.



김지원씨는 친구인 소설가 서영은(63)씨에게 32년 전 “국경의 밤을 연극화하고 싶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김씨는 한국전쟁 중 납북된 후 행방불명된 부친에 대한 간절한 그리움으로 각색에 몰두했다.

총 4막으로 구성된 시극 ‘국경의 밤’은 두만강변 국경마을의 눈보라 치는 밤을 배경으로 시작된다. 회오리 소리가 날카로운 가운데 눈보라 치는 듯한 조명으로 가득한 극장.

아이를 업고 다듬이질하는 여러 여인들이 무대 위에서 “아하, 무사히 건넜을까!”를 외친다. 무대 한 구석으로 조명이 옮겨가면 등잔불 앞에 앉은 순이가 나지막이 읊조린다. “아하 무사히 건넜을까!”

이 시극은 순이가 청년을 거부하고 남편은 주검으로 돌아오는 등 원작의 하이라이트에 해당하는 3부는 3막과 4막으로 나눠 장면 연출과 이야기 전환이 쉽도록 했다.

원작시의 서사적 구성을 그대로 따르면서 지문을 통해 시각적 효과를 높이고, 원작의 시적 진술을 등장인물의 대화로 바꾸는 등 극적인 긴장감을 살렸다.

김씨는 총소리, 바람소리 등 음향 효과를 사용해 극의 암울한 분위기도 연극적으로 각색했다. 또한 ‘봄이 오면’과 ‘산 너머 남촌에는’ 등 부친의 서정시도 발췌 사용했다.

권영민 서울대 교수는 “원작의 수사적 기교와 리듬 의식 등이 시극에서 어떻게 재편되면서 극적 상황에 기여하고 있는지를 짚어보는 것도 이 작품을 새롭게 음미하는 방법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김동환과 김지원

시인 김동환은 함북 경성에서 태어나 일본 도요대학에 유학했다. 1925년 ‘금성’지에 추천을 받고 데뷔해 이듬해 시집 ‘국경의 밤’을 출간했다.

1929년 ‘삼천리’, 38년 ‘삼천리문학’을 창간해 한국 문학 발전에 기여했으나 친일평론을 발표했다. 해방 후 반민특위에 체포되어 공민권을 정지당했으며 한국전쟁 중 납북된 것으로 알려졌다.

부인 소설가 최정희(1906∼90)는 숙명여고 졸업 후 삼천리의 기자로 일하며 김동환과 사랑을 키웠다. 이후 조선일보와 주부생활지에서 일하다 ‘지맥’‘인맥’‘장미의 집’‘인간사’ 등 소설을 발표했다.

1943년 서울에서 태어난 김지원씨는 이화여대 영문과 졸업 후 75년 현대문학에 ‘사랑의 기쁨’과 ‘어떤 시작’으로 데뷔했다. 1997년 ‘사랑의 예감’으로 이상문학상을 수상했다.

내부의식과 분위기 묘사에 뛰어난 작가로 대표작으로 ‘알마덴’‘먼 집 먼 바다’‘모래시계’‘물빛 목소리’ 등이 있다. 김씨는 30여년 전 미국으로 이주해 맨해튼에 살고 있다.

동생 김채원(62)씨는 이화여대 회화과 졸업 후 1975년 현대문학에 ‘밤 인사’로 등단했으며, 1989년 ‘겨울의 환’으로 이상문학상을 수상했다. 언니와 함께 자매 소설집 ‘먼 집, 먼 바다’‘집, 그 여자는 거기에 없다’ 등을 펴내기도 했다.

박숙희 기자 sukie@korea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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