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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 칼럼] '샤일록 할배'의 경제론

[LA중앙일보] 발행 2020/03/20 미주판 18면 기사입력 2020/03/19 19:33

'베니스의 상인'은 16세기말 영국의 대문호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걸작이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유럽에서 가장 큰 혼란에 빠진 이탈리아 물의 도시가 배경이다. 특히 고리대금업 유대인(샤일록)이 부정적으로 묘사됐다. 희극으로 분류됐지만 목숨이 왔다갔다 하는 심각한 내용도 있다.

심장 1파운드 살을 가져가되 피를 흘려서는 안된다는 재판관의 판결은 말장난 같기도 하다. 판사로 변장한 여주인공 포셔는 샤일록에게 재산 몰수와 기독교 개종을 명령한다. 유대교인 입장에서는 정체성을 포기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미국서 보기 힘든 사재기(hoarding)까지 벌어진 상황서 문득 할아버지가 떠오른다. 삼촌 4명이 만장일치로 우스갯소리로 불렀던 그 분의 애칭이 샤일록이다. 상당히 엄격한 경제관념을 지닌 분으로 기억된다. 젊어서 고생을 많이 했다. 이북에서 면장 출신이란 이유 때문에 반동으로 낙인 찍혀 단신 월남했다. 가족은 나중에 가까스로 합류했다. 친척 하나 없는 남쪽에서 맨손으로 대가족을 챙겨야 했다.

책을 좋아하던 맏손주가 컴컴해진 방안에서 스위치를 올리면 "아직 밝은데 왜 불을 켜나"라고 책망(?)하곤 했다. 그에 대한 반발심 때문일까. 아버지가 된 지금 아이들이 있는 곳의 전등을 최대한 밝히고 있다. 무에서 유를 일군 당신의 기반은 몸하나였다. 108년 전 출생한 분이 6척(180cm)에 달했다. 아들·손주보다 컸다. 막노동으로 출발해 집안을 일으킨 뒤 65세에 별세했다.

영감님 지론은 간단하다. 가난에서 벗어나려면 쓰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각종 고지서는 꼭 마감일에 냈다. '좀 미리 내면 안됩니까. 항상 동분서주 할 필요가 있냐'는 말에 '이자 생각은 안 하냐'고 했다.

서울시 하수도 공사 해프닝도 있다. 서툰 불도저 운전사가 집 담벼락을 무너뜨렸다. 일단 고친 뒤 청구하자는 식구들 의견에 '행정소송 끝난 뒤'라고 한 뒤 승소했다. 근검절약 없이 그 많은 자식과 친척 모두를 챙길 순 없었을 것이다. 버는 사람 따로, 쓰는 사람 따로라는 말이 있지만 당신은 쓰는 재미를 느끼지 못했다.

개인적으로 그의 철학에 모두 찬성할 수 없지만 나름의 일리는 있었던 것 같다. 꾸준히 실천하기 쉽고, 위험하지 않고, 아끼는 습관과 더불어 쌓이는 보람이 바로 그것이다.

조부 스타일처럼 돈을 담아두기만 하면 경기 침체와 디플레를 유발한다. 돈을 마구 풀며 경제 활성화·인플레를 유도하는 트럼프와는 정반대다. 과연 나쁘기만 한 것일까. 옳고 그름을 떠나 구두쇠는 경제학적으로 본인 이익에 따라 처신하는 전형적 시장주의자(free marketeer)다.

그런 관점에서 바라보면 미국 같은 자본주의는 구두쇠도 자선사업가처럼 경제 활동을 벌이는 주체다. 다소 시니컬한 비교이긴 하지만.

반면 트럼프처럼 채무비율을 높이면 나랏빚이 커지고 재정 건전성이 훼손되며 차입금 이자 증가·신용등급 하락이 불가피하다. 위험한 돈 펌프질인 셈이다. 어떤 면에서는 자기 먹거리 스스로 해결하는 검소한 방식이 낫다고도 볼 수 있다. 자선가는 극소수 계층에 환영받는다. 반면 스크루지 타입은 다수에 욕 먹지만 보이지 않는 혜택을 골고루 전한다.

전기 스위치 조절을 마음대로 하게 된 상황에서 조부와의 기억을 되돌아본다. 축적은 고사하고 지천명에 미국땅에서 먹고 살기 빠듯한 입장이다. 결코 그분과의 인생 경쟁에서 우위를 점했다고 말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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