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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봄비에 초록은 짙어가는데…

생전 듣지도 보지도 못한 괴물이 느닷없이 지구상에 나타났다. 약도 없고, 눈에 보이지도 않는 무서운 전염병이라고 한다. 특히 노인네들은 위험하니 외출을 하지 말라고 한다. 성당에도 못 나오게 하고, 크고 작은 모임들도 죄다 취소되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모임도 있어야하고, 부대낌도 있어야 살아가는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닌가? 더욱이 모임도 내가 가지 않은 것하고, 오지 말라는 것하고는 다르지 않은가.

좁은 노인아파트에서 뜻하지 않은 감금 생활을 하자니 갑갑하기 그지없다. 봄이 와서 온 세상이 초록색 생명력으로 싱그러운데 나가 볼 수도 없고, 문우들을 만나 즐거운 대화를 나눌 수도 없으니 영락없는 감옥살이다.그러던 차에, 올해 대학에 들어간 손주한테서 전화가 왔다.

“함므니. 내일 함므니하고 점심 먹을까?”

“오! 오 그러자….”



눈물이 날 지경으로 반갑기 그지없다. 보이지 않는 밧줄로 나를 꽁꽁 묶어놓았던 몸을 스르르 풀어주는 기분이었다. 손자의 착한 마음씀이 너무나 고마웠다. 들뜬 마음으로 오랜만에 거울 앞에 앉아서 얼굴에 찍어 바르면서 옛날 생각을 했다. 오래 전 남편의 장례식에 다녀와서 쓴 동시이다.

‘다섯 살 난 외손주

함므니

하부지 어디 갔어?

하늘나라 가셨단다.

근데 자동차는 두고

뭘 타고 갔지?

나는 남편이 두고 간

먼지 낀 자동차를 타고

훨훨 하늘을 난다./(동시 '하부지 어디갔어?')

이런 녀석이 언제 이렇게 커서 늠름한 청년이 되어 대학에 들어갔는지…. 그리고 외로운 할머니에게 밥을 사주겠다니….

흥분한 마음으로 외출복을 갈아입고, 액세서리를 챙기고 손주의 전화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디 가서 뭘 먹을까? 온갖 맛있는 음식들이 눈앞에 아른거린다. 음식보다도 마음껏 바깥 공기를 쐬고, 손자와 밖에서 식사를 한다는 사실이 즐겁고 반가웠다.

“띵 동.”

벨 소리가 난다. 반갑게 문을 열어보니. 손주 녀석이 활짝 웃으며 서 있다. 두 손에 봉투를 들고….

“함므니는 늘그니까 투고해 왔어… 코로나 아주 위험해!”

나는 다시 감금되었다.

그래도 손주 녀석의 할미 사랑에 행복하고 배가 불렀다.

창 밖에는 고마운 봄비가 내리고 있다. 봄비를 맞은 풀과 나무들이 한층 더 빛나는 초록색으로 아름다워지겠지….


정해정 /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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