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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균 남기고 싶은 이야기] 92년 불사른 열정, 100세 기념작 꼭 남기고 싶다

[한국 중앙일보] 기사입력 2020/03/26 08:38

빨간 마후라, 후회 없이 살았다 - 제132화(7667)
<38> 에필로그, 연재를 마치며

‘기생충’이 입증한 한국영화 파워
충무로에 젊은이들 돌아왔으면…
어머니·아내가 나를 만든 주인공
“남은 것 베풀겠다” 약속 지킬 터



신영균씨는 1960~70년대 한국영화의 산증인이다. 모두 300여 편을 찍었다. 지난 13일 다시 카메라 앞에 섰다. 거울에 비친 수많은 분신이 그의 지난 시간을 보여주는 듯하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아흔둘 노배우의 비망록에 이제 마침표를 찍으려 한다. 지난 세월을 열심히 살아왔다고 자부하지만 독자들에게 공연히 객담만 늘어놓았는지 모르겠다. 미흡하고 부족한 게 있다면 모두 내 책임이다. 하지만 ‘빨간 마후라, 후회 없이 살았다’라는 타이틀만큼 “내가 받은 탤런트를 다 쏟아온 시간이었다”는 점은 분명하게 말할 수 있다.

연재를 시작한 지 벌써 5개월 가까이 흘렀다. 그간 지인들로부터 과분한 격려가 쏟아졌다. “큰 감동을 받았다” “올곧은 생활신조로 여러 사람의 귀감이 됐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행하셨다” “인생의 반만이라도 따라갔으면 한다” 등의 문자 메시지를 받을 때는 쑥스럽기 그지없었다. 나를 내세우거나 남의 말을 하는 걸 꺼리는 편이라 이 서툰 회고담이 거슬렸다면 넓은 아량으로 받아주셨으면 한다.

영화계 정사·야사 남기려고 노력해








그래도 용기를 냈다. 짧지 않은 내 인생을 멋있게 마무리 하고 싶어서다. 고난의 20세기를 살아온 많은 한국인의 얼굴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울시장·충북도지사 등을 지낸 이원종씨가 최근 전화를 걸어왔다. “선진국의 특징은 기록문화다. 영광과 치욕의 순간을 다 남겨야 한다. 영화예술계의 정사와 야사를 재밌게 읽었다”고 했다. ‘남기고 싶은 이야기’ 앞에 선 내 마음이 그랬다.

연재하는 동안 충무로에 큰 경사가 있었다. 지난해 한국영화 100주년을 기념했고, 지난달 초순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할리우드 정상에 섰다. 이런저런 100주년 행사에서 빠뜨리지 않은 말이 있다. “수많은 선배가 흘려온 땀이 오늘의 한국영화를 일으켰습니다. 충무로 선·후배의 유대가 더욱 돈독해졌으면 합니다.” 한국영화가 몰라보게 성장했지만 촬영 현장의 동료의식은 예전 같지 않다는 아쉬움에서였다. 예로 지난해 12월 ‘미워도 다시 한번’의 전계현씨 장례식장에서 젊은 영화인을 거의 볼 수 없어 안타깝기만 했다.

‘기생충’의 봉준호 감독에겐 “고맙다”는 말이 부족하다. 지난 60여 년 충무로와 동고동락하며 키워온 꿈 중의 하나가 한국영화의 세계화였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사태로 요즘 영화계 곳곳에서 비명이 들려오고 있지만 지금까지 쌓아온 저력이 있기에 이를 무난히 극복해갈 것으로 믿는다.




신영균씨의 손과 발을 찍은 동판 프린팅. 영화인 신영균의 또 다른 자화상이다. 김경희 기자





특히 이번 기회에 한국영화 본거지인 충무로를 되살렸으면 하는 바람이 크다. ‘오! 옛날이여’를 예찬하자는 게 아니다. 충무로라는 문화자본을 이어갔으면 하는 기대감이다. ‘기생충’의 한진원 작가가 오스카 각본상 트로피를 들고 “미국에 할리우드가 있다면 한국엔 충무로가 있다”고 하지 않았나.

다행히 봉준호 감독이 불을 댕긴 것 같다. 서울시에서 중구 초동 공영주차장 부지에 독립·예술영화 상영을 위한 시네마테크 공사를 시작했다. 한국영화의 메카 충무로에 젊은 영화인들의 활기가 넘쳤으면 한다. 2010년 500억원 상당의 명보극장을 기증한 것도 그런 마음에서였다. 영화산업의 중심이 대기업과 서울 강남으로 이동한 것을 잘 안다. 그런데 부모 없는 자식 있을까. 충무로는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유산이다. 우리 영화계를 이끌 인재들이 모여들어 제2, 제3의 봉준호가 탄생하기를 바란다.

복 받은 삶이었다. 치과의사·배우·국회의원·사업가 등 탄탄한 길을 걸어왔다. 실패를 거의 몰랐다. 훌륭한 연기자와 든든한 가장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부도 일궜다. 굳이 성공의 키워드를 꼽자면 신앙과 노력이다. 6·25 때 월남해 어린 자식들을 홀로 키운 어머니의 기도 덕분에 지금까지 버텨왔다. 연기에 집중하게 도와준 아내의 헌신도 절대적이었다. “촬영장에서 죽으면 영광이다”는 자신감도 두 여인의 희생과 사랑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변변찮은 회고 읽어준 분들께 감사

연재 첫 인터뷰에서 “남은 것 다 베풀고 가겠다. 내 관에 성경책만 넣어달라”고 말했다. 허언(虛言)이 아니다. 지금 당장 밝힐 순 없지만 다 계획이 있다. 모두 신앙과 영화와 관련된 일이다. 주변에서 “기부는 남모르게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묻곤 한다. 그 뜻을 잘 알고 있다. 성경 말씀도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다. 반면 “좋은 일도 널리 알려야, 그리고 아름답게 행해야 다른 많은 사람도 그 대열에 동참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배우로서 소망이 하나 남아 있다. 건강이 허락하는 만큼 노년의 정점을 찍을 작품을 하나 남겼으면 한다. 참고로 2012년 이순재·심양홍 등 서울대 연극부 동문회 후배들과 함께 무대에 선 연극 ‘하얀 중립국’이 현재 내 마지막 작품이다. 젊음의 열정을 되살려 깨알 같은 대사를 힘들여 외운 기억이 난다. 인생 100세 시대, 과욕처럼 들리겠지만 100세를 기념해 제주 앞바다에서 필생의 영화를 찍고 싶다. 나보다 두 살 어린 클린트 이스트우드도 영원한 현역으로 뛰고 있다. 혹시 알겠나, 칸영화제에서 공로상을 받을 수 있을지…. 아무래도 봉준호 후배에게 많은 자극을 받은 것 같다.

연극·영화계를 지원하기 위해 세운 신영균문화예술재단이 올해 10주년을 맞는다. 앞으로 재단사업을 더욱 충실히 펼쳐갈 작정이다. 재단 이사들이 결정할 문제지만 올해엔 치매 투병 중인 윤정희에게 공로상이 돌아갔으면 좋겠다. 지금까지 나와 함께한 감독·배우·스태프들, 그리고 변변찮은 회고록을 읽어준 독자들에게 머리 숙여 감사드린다. 코로나19로 모두 힘겨운 지금, 우리는 기필코 일어설 것으로 확신한다. 식민지·전쟁·분단·빈곤 등 온갖 시련을 뚫고 온 우리다. 사랑과 신뢰로 뭉치면 두려울 게 없다.

정리=박정호 논설위원, 김경희 기자 am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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