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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헛된 희망보다 아픈 조언해야 정직한 변호”

[LA중앙일보] 발행 2020/03/31 미주판 6면 기사입력 2020/03/30 20:28

고수를 찾아서 <9> 김기준 형법변호사

김기준 변호사는 가족을 의무이고 책임이라고 했다. 얼마 전 아내 민 김 은행장의 60세 생일 기념으로 찍은 가족사진이다. 왼쪽부터 손자 올리버를 안은 아들 저스틴, 며느리 샤나, 김 변호사 부부, 둘째 손녀 티파니, 첫째 손녀 오드리, 막내 손녀 사브리나, 딸 넬리와 사위 제프리 조. [출처:김기준 변호사 페이스북]

김기준 변호사는 가족을 의무이고 책임이라고 했다. 얼마 전 아내 민 김 은행장의 60세 생일 기념으로 찍은 가족사진이다. 왼쪽부터 손자 올리버를 안은 아들 저스틴, 며느리 샤나, 김 변호사 부부, 둘째 손녀 티파니, 첫째 손녀 오드리, 막내 손녀 사브리나, 딸 넬리와 사위 제프리 조. [출처:김기준 변호사 페이스북]

통역·변호사로 법정서 37년
73년 중학교 때 이민온 1.5세
아버지 청소 밤일 도우며 공부

83년 법률사무장·통역사 시작
마흔살에 변호사 늦깎이 합격
15년전 송지현 사건으로 주목

아내 민 김 행장과 ‘46년 전우애’
아들 저스틴 김은 LA카운티 검사


2000년 5월30일자 본지에 86명의 새내기 한인 변호사 명단이 실렸다. 그해 2월 치러진 변호사시험 합격자들이다. 그중 ‘노스리지 거주 김기준’이라는 이름이 있다.

나이 마흔에 늦깎이 변호사가 된 그를 당시에 주목하는 이들은 많지 않았다. 20년이 지난 지금 김기준(60) 변호사는 LA한인사회에서 손꼽히는 형법 변호사다.

경력에 비해 빨리 인정받은 밑거름은 변호사가 되기 전 17년간 법정통역사로 근무한 내공 덕분이다. 통역사로, 변호사로 37년간 법정에서 활약한 한인은 그가 유일하다. 법조계 고수로 꼽은 이유다.

동갑내기 아내인 민 김 오픈뱅크 행장과 ‘결혼 경력’도 37년이다. 아내 역시 그와 걸어온 궤적이 닮았다. 텔러부터 시작해 한인 은행 최초로 여성 행장에 올랐다. 2시간여 인터뷰에서 김기준 변호사는 처음으로 본인의 세월을 변호했다.

#영어, 빌리 그레이엄

부친은 약사셨다. 2남1녀 중 장남인 그는 말 잘 듣고 귀여움받던 모범생이었다. ‘우리는 민족 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로 시작하는 국민교육 헌장을 그는 아직까지 외운다. 아버지가 미국행을 결심하실 때 즈음인 73년 5월 중학생이었던 그도 잊지못할 장면을 목격했다. 한국 교회 대부흥을 촉발시킨 빌리 그레이엄(2018년 작고) 목사의 여의도 대집회다. “김장환(85) 목사님이 통역을 맡으셨는데 감명을 받았다. 막연한 꿈을 꿨다. '와…나도 미국 가서 영어 유창하게 했으면 좋겠다’라고.”

73년 9월5일 그의 가족은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이민, 청소원의 아들

김포-하네다-하와이 공항을 거쳐 LA에 내렸다. 아버지는 3개월 전 미리 와 있었다. 미국에서 약사를 계속할 수 있을 거라는 꿈은 다섯 식구를 당장 먹여 살려야 하는 생계 앞에서 포기해야 했다. 아버지는 빌딩 청소를 했다. 그도 미국에 도착한 그 다음주부터 아버지를 따라 청소일을 했다. 한인타운 한복판 에퀴터블 빌딩이 일터였다. 밤 8시부터 자정 넘어까지 수십 개 사무실에서 재떨이를 갈고 책상을 닦고 쓰레기통을 비웠다. 어머니도 주급 75달러를 받고 생선공장으로 출근했다.

“그때 이민온 한인들은 다들 열심히 살았다. ‘남청여바’라는 말이 있다. 남편은 청소하고 아내는 바느질을 하는 부부가 허다했다. 어려운 삶을 불평하지 않았다.”

타운에 있는 베렌도중학교를 거쳐 페어팩스고교로 진학했다. 남가주한인총고교연합회장을 하면서 민병수 변호사를 만났다. 법조인 꿈의 씨앗을 심어준 멘토다. 클레어몬트칼리지를 심리학·행정학 복수전공으로 졸업하고 로스쿨을 준비하던 83년 결혼했다. 이민온 이듬해인 74년 헤브론교회에서 만난 ‘친구’ 민 김이 평생의 연인이 됐다.

“결혼으로는 37년 차지만 친구로 만난 지는 46년이다. 정말 아내와 전우애가 깊다. (웃음) 아내는 결혼 1년 전에 은행에 취직해 텔러로 근무했다. 큰 아들을 임신했고, 법대 가겠다고 공부만 계속할 수 없었다. 식구를 먹여 살려야 했다.”

#통역, 가장의 밥벌이

결혼한 그해 ‘머레이&머레이'라는 베벌리힐스의 법률사무실에 사무장(paralegal)으로 취직했다. 거의 동시에 법정 통역사일도 시작했다. 과속티켓 때문에 법원에 출두했다가 한인 1호 통역사인 박학도씨를 만났고, 이중언어를 하는 것만으로 돈을 벌 길을 찾았다. 오전엔 법원 통역사로, 오후엔 변호사 사무장으로 일했다. 밥벌이로 시작한 통역이지만 수입은 좋았다. 재판에서 현대, 기아, 아시아나, 대형은행 등 굵직한 기업들 통역을 거의 도맡다시피 했다. ‘여름휴가 때 가족과 배타고 바하마 갈 정도’로 풍족했다.

그러다 1994년 노스리지 지진이 그를 뒤흔들었다.

#변호, 17년 만에 이룬 꿈

지진으로 밸리의 집 절반이 무너졌다. 연방재해대책본부(FEMA)에서 받은 지원금으로 집을 고치고도 돈이 남았다. 어디에 쓸까 고민하던 차였다.

“어느 날 아이들이 ‘아빠 변호사 맞아?’하고 묻더라. 변호사 사무실에서 일할 뿐이지 변호사는 아니었으니 대답하기가 부끄러웠다. 더 늦으면 안되겠다 싶었다.”

서른 다섯에 공부를 다시 시작했다. 낮엔 일했고 밤엔 법대에서 수업을 받았다. 98년 졸업 후 2000년 변호사 시험에 합격했다. 나이 마흔이었다. “17년간 200건의 재판, 2000건의 증언청취(deposition)를 통역했다. 수많은 변호사들과 일하면서 배운게 있다. ‘What to do’가 아니라 ‘What not to do’였다. 변호사가 되면 저런 짓은 절대 하지 말자는 다짐이었다.”

#형법, 합리적 의심과 싸움

-법정에서 37년이다. 변호사는 뭘 해야 하나.

“보호자다. 개인의 권리가 침해받지 않도록 돕는 사람이다. 정직해야 한다. 진실을 왜곡시켜 승소한다면 유능한 변호사가 아니라 사기꾼이다.”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무죄로 풀려나게 하는 게 변호 아닌가.

“법정에서 무죄는 ‘Not Guilty’라고 한다. 죄가 없다는 뜻이 아니라 ‘유죄가 아니다’라는 뜻이다. 물론 정말 무고한 사람도 있긴 하지만 극히 일부다. 변호사가 하는 일은 검찰이 제기한 피고의 혐의에 과연 한치의 '합리적 의심(reasonable doubt)’이 없는지 묻고 또 묻는 역할이다.”

-의미 있었던 변호는.

“동부에 살다 LA에 온 70대 남성이 여자를 잘못 만났다. 저축한 연금 45만 달러를 가지고 왔는데 여성에게 속아 이런저런 이유로 돈을 뜯겼다. 나중에 속은 것을 알게 된 남성이 추궁하자 여성이 자기 혼자 화장실에서 벽에 머리를 박고 자해한 뒤 ‘폭행당했다’고 신고했다. 꼼짝없이 누명을 쓰게 된 상황에서 두 사람이 주고받은 카톡을 문장 하나하나 다 번역해 검찰과 수사관을 설득했고, 기각시켰다. 정황 자체는 큰 이슈가 아니었지만 기억나는 이유는 이 사건으로 ‘꽃뱀’이라는 우리말 뜻을 LA검찰과 수사관들이 처음 알게 됐기 때문이다.”

-통역이 어려운 우리말은.

“‘너 왜 반말해?’ 혹은 ‘아래 위도 모르고’ 같은 표현이다. 폭행의 원인이 되는 말들이다. 경찰에 동기를 설명해야 하는데 존댓말이 없는 영어로는 옮기기가 어렵다. 때린 쪽은 ‘10년도 더 어린놈이 이름 부르고 반말하는데 화가 안나요?’라고 씩씩거린다. 그런데 검찰이나 경찰들은 ‘이름을 부른다는 건 서로 친하다는 뜻 아니냐. 그게 왜 화가 나나?’고 이해를 못 한다.”

-벅찼던 재판 상대라면.

“지금은 은퇴한 하워드 건디 검사다. 15년 전 송지현 사건을 담당했다. 재판 준비에 치밀한 사람이다.”

‘송지현 사건’<본지 2005년 11월12일 A-1면>은 김 변호사가 맡은 첫 살인사건이다. 2005년 11월10일 애너하임의 아파트에서 송씨는 4살 연하 남편 김동욱(당시 24세)씨를 칼로 찔러 살해한 혐의로 체포됐다. 두 사람은 결혼 10개월 된 신혼이었고 같은 신학대에 다니는 유학생들이어서 한인사회가 주목했다. 체포된 송씨는 사고를 주장했다. 당시 경찰조사에서 “칼국수를 만들고 있었는데 남편이 뒤로 다가와 갑자기 나를 돌려서 껴안는 바람에 들고 있던 칼에 남편이 찔렸다”고 증언했다. ‘과실치사’라는 주장이나 검찰은 살인이라고 봤다. 두 혐의를 가르는 기준은 ‘의도’다. 살해 의도가 없었다는 송씨의 주장을 배심원단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사건 발생 2년 만인 2007년 8월 송씨는 2급 살인혐의로 ‘16년~종신형’ 중형을 선고받았다. 대중의 관심을 받은(high profile) 사건으로 김 변호사는 유명세를 얻었지만, 일부에서는 변호 전략이 미숙했다는 지적도 받았다.

-15년이 지났다. 지금이라면 다르게 접근했겠나.

“사건 정황은 아직도 미스터리다. 검찰과 양형협상을 통해 혐의를 낮출 수도 있었지만 의뢰인(송씨)이 끝까지 ‘사고’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변호사 입장에선 (살인이)아니라는 송씨 주장을 끝까지 밀고가야했다. 그러니 지금이라도 같은 전략을 택했을 거다. 사건 목격자가 없어 송씨의 증언 신빙성에 유무죄 여부가 달려있었는데, 배심원단은 송씨를 믿지 않았다. 송씨의 호소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 통역상 오류도 불이익이었다. 여러모로 난제였던 안타까운 사건이다. 송씨는 모범수로 복역해 가석방됐다.”

-나쁜 변호사는.

“법정에서 소리만 지르는 변호사들이 있다. 의뢰인까지도 무시하고 윽박지른다. 실력없음을 스스로 자인하는 변호사다. 개는 짖지만, 사자는 짖지 않는다.”

-37년간 법원 내 가장 큰 변화는.

“법조계는 상당히 보수적인 사회다. 크게 달라진 건 없다. 변화라면 한인 판사들이 꽤 늘었다. 내가 통역을 시작했을 때 한 명도 없었는데 지금은 LA카운티법원에 내가 아는 한인 판사만 8명이나 된다.”

-법정에 정의가 있나.

“거증책임(burden of proof)이라는 말이 있다. 상대의 잘못을 입증할 증거를 제출해야하는 부담을 말한다. 민사의 경우 원고의 거증책임은 51%다. 5:5 팽팽한 상황에서 1%만 더 상대 과실을 입증해도 재판에서 이긴다는 뜻이다. 그 1%가 정의의 무게다. 사람 속을 훤히 읽는 기계가 나오기 전까지는 100% 완벽한 정의가 있을 수 있겠나.”

-아들이 검사가 됐다.

“LA카운티 중범소송 전담 검사인 저스틴 김(36)이다. 법조인이 되라 한 적 없었고 순전히 아들의 선택이다. 시검찰 1년 거쳐서 2015년부터 LA카운티 검사로 일하고 있다. 한가지 말해두고 싶은 게 있다. 아들이 검사라서 변호사인 내가 재판에서 이득을 보겠지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다. 절대 그럴 수 없다. 이해상충일 뿐더러 자식 가는 길에 방해가 되길 원하는 부모가 어디 있나. 오히려 아들이 검사라 더 조심스럽다.”

-아내가 은행장이다. 비교당할 때가 있을 텐데.

“아내가 높은 자리에 있으니 자존심 상하지 않느냐고 묻는 이들이 있다. 그런데, 절대 없다. 우선 내 수입이 많았다.(웃음) 그리고 같은 직종에 근무한다면 또 모르지만 다른 분야에서 서로 최선을 다하고 있으니 감사하다.”

-은퇴 준비할 때 아닌가.

“아내가 ‘사지 멀쩡할 때까지 하라’고 했다.(웃음) 아직 일이 재미있다. 10년 정도는 더 하지 않을까 싶다. 손주들한테 용돈 잘 주는 멋진 할아버지 노릇도 하고 싶고.”

-변호의 고수는.

“의뢰인들에게 이 말을 자주 한다. 재판은 진실게임이 아니라 현실게임이라고. 피고가 처한 현실에 대해 헛된 희망이 아니라 아프더라도 정직하게 조언해야한다. 질게 뻔한 사건을 재판까지 끌고 가는 변호사는 수임료에 눈 먼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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