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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종욱 칼럼]사랑하는 손인식 목사님을 하늘나라로 보내드리며

동에서 부는 바람, 서에서 부는 바람

고 손인식 목사

고 손인식 목사

지난 달 28일 아침 손인식 목사님이 하늘나라로 가셨다는 소식을 전화로 접하고 나는 한참 동안 멍하게 앉아있었다.
왜냐하면 나는 손목사님이 소생하시어 목회은퇴 후 8년간 이어 온 북한선교사역을 계속하실 것을 확신하고 기도해왔기 때문이다. 작년 11월 4일 손목사님이 낙상으로 인한 뇌출혈수술을 받고 투병하고 계시는 동안 가끔 상태가 호전되고 있다는 소식을 들으면서 기도의 응답이라고 생각해 왔다.

그런데 나는 알 길이 없지만 하나님의 뜻은 다른데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손목사님은 72세를 일기로 이 지상에서의 삶을 마감하하시고 하늘나라로 가셨다.
손목사님는 1981년 12월18일 워싱턴 근교 케피탈신학교(Capital Seminary)를 갖 졸업하고 34세의 젊은 나이로 메릴랜드 벧엘교회 초대 동역목사(부목사)로 취임, 8년동안 시무하면서 1979년 12월에 취임한 초대 담임 김상복목사님과 함께 벧엘교회의 기초를 닦는데 큰 공헌을 했다.
손목사는 1985년 10월 벧엘교회를 떠나 디트로이트침례교회 담임목사로 2년간 시무 한 후, 김상복목사의 간청으로 다시 벧엘교회로 돌아와 1990년 11월까지 8년의 최장기간의 부목사로 시무하던 중 LA 베델교회로부터 청빙을 받고 이 교회의 3대 담임목사로 취임, 24년의 시무를 마치고 2013년 12월 목회사역을 마치고 은퇴했다.

손목사님이 벧엘교회에 남긴 많은 아름다운 추억들이 있다. 손목사님이 8년 동안 벧엘교회 시무하면서 남긴 목회에 대한 열정은 부르도자라는 별명으로 표현된다. 손목사는 긴급한 교인 심방이 있을 때 만사를 뒤로하고 시간과 때를 가리지 않고 부르도작식으로 달려가셨다.


손목사님은 자신이 담당한 선교 목회를 수행 할 때도 부르도자식은 함께했다. ‘더 늦기전에’ BTL(Before It is Too Late) 라는 선교 케치 플레이스를 내 걸고 세계선교센터를 설립, 계획 훈련 파송 등에 박차를 가하셨다. 교회 목회는 담임 목사 한분이 성공적으로 이끌 수 없다는 산 증거를 손목사님은 벧엘교회 부교역자로 사역하면서 교인들에게 보여주셨다.

손목사님은 담임목사의 손과 발이 되어 담임목사 목회의 철학 방향 실행 목표를 달성하는데 늘 보조를 맞추셨다. 손목사님은 42세의 젊은 나이로 LA베델교회 3대 담임목사로 취임하면서 여러 해 동안 교회가 안고 있는 숫한 어려움들을 하나님만 묵묵히 바라보며 ‘무릎과 인내’로 해결해나가는 목자의 모습을 보여주셨으며 100여 명의 교인들로 시작한 교회를 그의 목회 24년 동안 6000여 명의 대형교회로 성장시켜 남가주 한인교회가운데 초대형교회의 하나로 성장시키는데 큰 역활을 했으며 6천여명이 한지리에서 예배를 드릴 수 있는 대형 교회 건물을 완성하고 은퇴했다.

손 목사님은 자신의 인생을 전후반기 두 분기점으로 정하고 살아오셨다. 전반기는 교회 목회이고 후반기는 북한선교다. 그래서 손목사님은 자신이 목회 정년을 65세로 정하고 2013년 베델교회를 은퇴하시고, ‘그날까지 선교연합’(UTD-KCC)를 설립하고 본격적으로 북한동포를 위한 복음사역에 헌신해오셨다.
이를 위해 북한자유를 위한 북한 포럼과 통곡기도회, 탈북자 간증과 강제북송반대집회, 북한고아보호를 위한 집회를 이끌어 오셨다. 워싱턴-볼티모어지역에서도 벧엘교회와 가든교회(담임 한태일목사)를 비롯해서 여러 교회에서 여러번 ‘북한을 위한 통곡기도회와 탈북자 간증의 밤’을 가졌다.

나는 이지역에서 집회가 있을 때마다 거의 빠지지않고 참석했다. 지금도 손목사님의 북한백성을 위한 애절한 통곡기도 소리가 내 귀에서 맴돌고 있다.
우리 부부가 손목사님이 담임목사로 부임하신지 7년만에 LA베델교회에서 주일 예배를 드렸다. 예배 후 손목사님은 본당건축 계획안을 보여주셨다. 하나님께서 손목사님을 어떻게 이 교회를 통해 써 오셨는지를 말해주는 증거였다.

그리고 5년 후 본당건축은 시작되었다. 2017년 가을, 우리 부부는 LA베델교회에서 새벽예배를 드릴 기회가 있었다. 예배를 마치고 나오는 길에 한 성도를 만났다. 인사를 건네니 베델교회 집사라고 했다. 우리는 손인식 목사가 시무했던 메릴랜드 벧엘교회에서 왔다고 말하고, 손 목사가 언제 예배에 참석하느냐고 물었다.
이 집사의 대답은 이러했다. “저희 교회에서 은퇴하신 후 한 번도 본 교회를 방문하시지 않았습니다. 아마 후임 김한요목사에게 폐가 되지 않게 하시려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많은 교인들이 그리워하고 있습니다.”
구 본관 벽에는 손인식 목사와 김한요목사의 사진이 나란히 걸려 있었다. 이 장면은 많은 의미를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었다.




허종욱 / 버지니아워싱턴대 교수, 사회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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