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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셔 플레이스] 프리웨이의 '사냥꾼'

박용필/객원 논설위원

대낮 경찰의 추격 장면은 뉴스채널 TV가 헬기까지 띄워가며 생중계를 하다시피 한다. 당국은 모방범죄를 부추긴다며 자제를 요청하지만 이에 귀를 기울일 TV가 아니다. 재탕 삼탕인 '소프 오페라' 연속극보단 스릴 넘치는 추격전이 시청자들의 눈길을 더 사로잡기 때문이다.

도망가는 차량이 프리웨이를 벗어나 로컬 길에 들어서면 중계 아나운서도 흥분되는지 때로는 저속어가 튀어나온다.

"이제부터 '사냥꾼과 사냥감'(the hunter and the hunted)의 게임이 시작되네요." 경찰은 사냥꾼 도망자는 먹잇감으로 빗댔으니 할리우드 스타일의 중계다. 그러고는 짐짓 '웁스'(oops)하며 손을 입에 갖다댄다. 공공방송에선 결코 쓰지 말아야 할 슬랭을 자신도 모르게 내뱉었다는 시늉이다.

세기의 추격은 15년 전 풋볼 스타 OJ 심슨이 연출해 냈다. 흰색 포드 브롱코를 타고 5번 프리웨이를 저속으로 운전하는 살인 용의자 심슨. 수십대의 차량을 동원해 그를 뒤쫓는 경찰 추격은 실시간으로 전국에 생중계돼 OJ하면 누구나 이 장면이 떠오르게 된다.



당시 어느 해설자가 '사냥꾼과 사냥감'이란 표현을 사용해 흑인사회로부터 거센 반발을 샀다. '흑인이 어디 경찰의 먹잇감이냐'며 인종모욕적인 언사에 강력히 항의한 것이다.

2시간여에 걸친 추격은 '해피 엔딩'으로 끝났다. 당국이 심슨을 LA의 자택까지 안전하게 에스코트한 다음 체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도주 차량이 시민의 안전에 위협이 된다면 경찰은 어떤 조치를 취할까. 이른바 '피트'(PIT) 기법을 사용한다. '추격개입테크닉'의 약자로 달아나는 차량의 뒷바퀴를 옆에서 들이박는 수법이다. 이런 경우 도주차는 콘트롤을 잃어 180도 회전하며 서게 된다.

동원되는 경찰 차량은 최소한 3대. 한대는 뒤에서 PIT를 하고 나머지는 앞을 가로 막는다. 꼼짝없이 포위된 용의자는 경찰의 명령에 따라 두손을 머리에 얹고 나올 수 밖에. 한마디로 차량 불능화 작전인 셈이다.

PIT는 자동차 경주대회에서 따온 아이디어. 여러 대의 차량이 '부딪히며 달리는' 카 레이스가 경찰의 매뉴얼로 자리잡은 것이다. LA를 비롯한 남가주에선 한해 200여 건의 경찰 PIT가 시행돼 흔히 '캘리포니아 스톱'이란 우스개로도 불린다.

그러나 고도의 위험을 수반하는 테크닉이어서 주로 용의자가 35마일 이내로 서행할 때만 사용된다. 프리웨이에선 좀처럼 쓰이지 않고 대체로 로컬 길 그것도 교통의 흐름과 보행자 유무를 따져 신중히 결정한다. 무고한 시민의 보호는 물론 용의자의 안전을 위해서다.

지난 10일 30대 한인여성이 경찰의 추격에 이은 총격으로 아깝게 숨졌다. 이 여성이 프리웨이에서 내려 로컬 길에 들어서자 경찰은 PIT를 실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새벽 1시쯤이어서 보행자도 거의 없었고 트래픽도 뜸해 PIT엔 안성맞춤의 시간대였던 것.

경찰이 매뉴얼대로 PIT를 했다면 이 여성은 순찰차에 둘러싸여 안전하게 걸어 나왔어야 했다. 더구나 뒷좌석에 아기 시트가 있다는 걸 발견하고선 레드 채널(긴급통보)로 이를 현장의 경찰에 알렸다고 하지 않았는가.

그런데도 총을 쐈으니 경찰의 대응은 지나친게 아니라 폭력수준이라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이다. 당시의 상황을 끝까지 파헤쳐 경찰의 진압이 과연 합법적이고 합리적이었나를 밝혀내야 한다. 만에 하나 경찰이 한인여성을 '사냥감'으로 생각했다면 우리 식대로 '버르장머리'를 단단히 고쳐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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