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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수평의 6피트, 수직의 6피트

지금 우리는 가사 상태에 있다. 개개인이 서로 6피트의 거리 두기를 강요받고 있다. 6피트는 삶과 죽음을 가르는 거리다. 6피트는 시신을 매장하는 깊이다. 우리는 죽은 것일까. 우리는 지금 산채로 6피트의 거리를 지키고 있다. 우리는 지금 매일 조금씩 죽어가는 중이다.

수직의 6피트는 산 자와 죽은 자를 물리적으로 격해 놓았지만 거기엔 절대자의 개입이 있다. 인간의 힘만으론 어쩔 수 없는 안타까운 헤어짐이다. 상전이 벽해가 되어도 변하지 않을 사랑도 신의 섭리 앞에 무력했다. 지금 우리는 수직으로 6피트를 격리되지 않기 위해 사력을 다해 수평의 6피트 거리 두기를 지키고 있다.

수평의 6피트는 참으로 비정한 거리다. 봄꽃이 온 들판을 덮어도 이 계절이 지나기 전엔 그 꽃들을 볼 수 없다. 누구를 향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잘 벼린 날카로운 칼끝을 피해 꽃내음도 새도 찾지 않는 닫힌 방에 우리 스스로 갇혀 있다. 형량도 정해지지 않은 미결수인 채로.

어두움 속에서 두려움과 열망을 섞어 기다림을 짓는다. 창밖을 떠도는 흰 구름과 긴 밤의 안개를 섞어 인내를 비벼낸다. 우리가 슬퍼하며 빈집에 가두어버린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때 이른 조우를 조금이라도 유예하고 싶은 마음을 어찌할 수 없다. 하지만 지금 나를 빈집에 가둔, 실체 없는 이 질긴 상대와의 싸움을 포기하고 싶은 생각도 때론 고개를 든다.



6피트의 거리를 지키기 위해 아이들이 3배에 가까운 18피트 높이로 아침저녁 생필품과 음식을 올려보낸다. 가까이에 유칼립투스 나무들이 보이고 멀리 높고 낮은 산봉우리가 교차하는 전망에 반해 엘리베이터도 없는 3층에 겁도 없이 이사했다. 지금 그 일이 닫힌 벽 밖에다 음식을 두지 않고 6피트의 거리도 자연스럽게 지키는 핑계가 되었다.

하루 두 번 아들은 손자와 손녀를 데리고 와서 잠깐씩 얼굴을 보여 주고 내가 내려보낸 작은 바구니에 대구조림, 라비올리, 캘리포니아롤 등을 올려보낸다. 바구니엔 때로 손녀가 할머니를 위해 특별히 챙긴 보바 아이스크림 스틱도 있다.

비 오는 날은 아들은 비를 피해 운전석에 앉아 있고 발코니 쪽 차 문을 열고 손자가 나와 갖고 온 음식 그릇을 바구니에 놓는다. 빗살이 점점 굵어져 차 안으로 어서 들어가라고 바구니를 끌어 올리며 계속 손짓해도 손자는 3층 발코니에 바구니가 안착할 때까지 꼼짝 않고 지켜본다. 거센 빗줄기가 3층에 시선을 고정한 손자의 얼굴을 사정없이 내리친다. 안전하게 바구니가 발코니에 올려지는 것을 확인한 뒤에야 손자는 머리 위에 하트까지 그려 보이고 돌아선다. 신체발부는 '수지부모(身體髮膚受之父母)'라지만 노년에 건강을 보존하는 것은 '수지자녀(身體保存受之子女)'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닐 듯하다.

겸허히 창조주의 섭리를 헤아려 본다. 언제나 그랬듯이 이 일 또 한 지나갈 것이다. 이 암울한 대지 위에 봄의 왈츠가 경쾌하게 흐를 날을 꿈꾼다. 그날, 진주 이슬 신고 오시는 계절의 여왕 앞에 달려 나가 경배 드릴 것이다.


박유니스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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