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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 칼럼] 한국야구를 보는 미국의 아이러니

1회 첫 타석이다. 그것도 초구였다. 이승엽의 배트가 번쩍했다. 타구는 까마득히 솟았다. 순식간에 담장 너머로 사라졌다. 투수는 어이없는 표정이다. 세계 최고였던 돈트렐 윌리스였다. 2006년 애너하임에서 열렸던 WBC 1회 대회 장면이다. 우승 후보 미국은 한국에 3-7로 완패했다. 메이저리그 올스타로 구성된 팀이었다. 양쪽의 연봉 차이가 20배도 넘었다. 미국 팬들은 충격에 빠졌다.

14년 뒤다. 다시 야구가 태평양을 건넜다. 이번은 좀 다른 방식이다. TV를 통해서다. ESPN이 (한국) KBO리그를 매일 틀기로 했다. 첫 게임이 어제(5일)였다. 개막전이 전파를 탄 시간, 뉴욕은 새벽 1시였다. 야구를 세계 최고의 리그로 성장시킨 곳이다. 뉴욕타임스가 스포츠 섹션 톱기사로 다뤘다. “삼성폰을 쓰고 계신 분은 아마 삼성 라이온즈를 응원하겠군요.”

얼마 전이다. 충격적인 뉴스가 전해졌다. 맨해튼의 한 요양원 소식이다. 700명 가량의 입소자 중 98명이 사망했다. AP에 따르면 46명은 코로나19 확진 환자였다. 나머지 52명도 그렇게 추정되는 노인들이다.

하지만 뉴욕시의 통계는 달랐다. 코로나19 관련 사망자는 13명뿐이다. 실제와 차이에 대해서 요양원 측은 “뉴욕의 다른 요양원처럼 우리도 초기에 입소자와 직원을 광범위하게 검사할 여건이 안 됐다”고 AP에 설명했다. 빌 더블라지오 뉴욕 시장은 “말할 수 없이 참담한 일”이라고 밝혔다.



뉴욕은 미국의 상징과도 같다. 세계의 모든 부(富)와 성공, 영광이 실현된 곳이다. 찬란한 고층 빌딩, 화려한 네온 사인, 멋진 패션 피플…. 그런 것들이 흘러넘친다. 철학자 김용옥은 이렇게 단정한다.

“생각해보세요. 미국? 그 거대한 땅덩어리가 대부분 인간의 발자취도 가지 않은 원시림 아니면 산맥, 사막, 대평원, 그리고 목가적인 소도시일 뿐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미국하면 그런 풍경을 떠올리지 않습니다. 세계 최첨단의 마천루로 가득찬 맨해튼의 스카이라인을 생각하죠. 다시 말해서 미국의 경쟁력은 뉴욕이라는 도시의 경쟁력입니다.”

뉴욕이 상징하는 미국은 절대적인 초강대국이다. 거의 한 세기 가까이 그렇게 군림했다. 그런데 지금은 전혀 다른 모습이다. 코로나19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다. 가장 큰 재앙을 맞은 곳이기도 하다. 확진자, 사망자 숫자가 무서울 정도로 치솟았다. 뉴욕타임스가 전하는 상황은 믿기 힘들 정도다. “뉴욕시에서만 2분에 한 명 꼴로 사망자가 나오고 있다. 도시 전체가 시신 과부하에 시달린다. 병원 영안실, 장례식장, 묘지, 화장터까지 곳곳이 마비 상태다.”

화물 트럭 짐칸에서 시신 가방 50개가 발견됐다. 군 병력이 동원돼 처리해도 끝이 없다. 영안실에는 더 이상 빈자리가 없다. 시신이 환자들 옆에 몇 시간씩 방치되기도 한다. 브롱크스 인근 무인도 하트섬에는 무연고 시신들이 집단 매장된다. 물론 뉴욕만의 일은 아니다. 미국 전체가 처한 상황을 단적으로 상징할 뿐이다.

의료 시스템의 붕괴, 사회 질서의 혼란, 시민의식의 실종, 부의 편중…. 그런 단면들이 낱낱이 드러났다. 오만하고 나태했던 거대한 시스템에 대한 경종이다.

메이저리그에는 몇 천만 달러짜리 고액 연봉자가 수두룩하다. 그들은 모두 뛸 곳을 잃었다. 집 뒤뜰에 간이 연습장을 차려놓고 혼자 땀흘리는 게 기껏이다. 야구는 미국이 가장 자부심을 갖는 스포츠다. 그런데 결국 이것마저도 엉뚱한(?) 한국 것을 즐겨야하는 상황이 됐다. ESPN의 어제 오프닝 멘트다. 슬픈 아이러니가 담겼다. “오늘 야구가 시작됩니다. 야구의 나라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백종인 /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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