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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전쟁중…거리두기 완화 두렵다”

고수를 찾아서 <14> 이동규 응급실 간호사
LAC+USC 응급센터 10년차
응급환자 연 15만명 전국 최다

코로나 치료실 하루 4시간 근무
7명씩 6개조…일부 의료진 탈진

이동규 간호사는 연간 15만명의 응급환자가 찾는 LAC+USC 병원 응급센터 근무 10년차 RN이다. 그는 코로나 응급병동 근무를 자원했다. 얼굴의 마스크 자국이 가시지 않는다.

이동규 간호사는 연간 15만명의 응급환자가 찾는 LAC+USC 병원 응급센터 근무 10년차 RN이다. 그는 코로나 응급병동 근무를 자원했다. 얼굴의 마스크 자국이 가시지 않는다.

LAC+USC 병원의 응급실 입구에 세워진 코로나 의심환자 등록실.

LAC+USC 병원의 응급실 입구에 세워진 코로나 의심환자 등록실.

대학때 배낭여행서 목표 눈떠
변호사 꿈접고 늦깎이 공부
서른 여덟에 면허…부부 간호사
최근 거리두기 완화로 환자늘어
N95 마스크 등 의료품 부족 여전


전염병의 무기는 인간이라는 보편적 취약성이다. 국가, 언어, 인종, 종교, 성별, 빈부는 방패가 될 수 없다. 감염 현장으로 달려가는 의료진에 보내는 박수는 모두가 약한 인간이라서다.

이동규(48) 간호사(RN)도 매일 그 전쟁터에서 내 안의 두려움과 싸우고 있다. 그는 LA카운티 USC 병원(이하 LAC+USC) 응급실 근무 10년차다. LAC+USC는 전국에서 환자가 가장 많은 병원중 하나다. 외래환자는 연간 100만명이 찾는다. 특히 중증외상치료센터 최고 시설 등급인 ‘레벨 1 트라우마센터’를 둔 응급실엔 매년 15만 명의 환자가 실려온다. 총상, 교통사고, 안전사고, 기저질환자 등 촌각을 다투는 환자가 하루 평균 410명, 시간당 17명에 달한다는 뜻이다.

그는 변호사의 꿈을 접고 ‘5년간 죽을 만큼 공부해’ 서른 여덟의 늦깎이 간호사가 됐다. 그를 14번째 고수로 택한 이유는 응급실이라는 특수한 근무환경과 시기의 상징성 때문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2020년을 세계 간호사와 조산사의 해로 지정했다. 특히 오늘(12일)은 세계 간호사의 날이다. 현대 간호학의 창시자인 플로렌스 나이팅게일의 생일을 기념한 날이다.



이동규 간호사가 찍은 LAC+USC 병원의 코로나 임시병동 텐트.

이동규 간호사가 찍은 LAC+USC 병원의 코로나 임시병동 텐트.

인터뷰에서 그는 코로나바이러스의 정확한 환자수나 자세한 대응상황은 공개할 수 없다고 했다. 병원의 내부 지침이다.

#빈맥. 배낭여행

평창에서 육남매중 막둥이로 태어나 자란 그는 스물넷이 되도록 강원도를 벗어나지 못했다. 초중고는 물론 대학도 춘천에 있는 한림대 법대에 입학했고 군대마저 홍천 육군 11사단에서 복무했다.

96년 제대 후 복학해 고시를 준비하다가 ‘지금 아니면 못 가볼 것 같아서’ 유럽 배낭여행을 계획했다. 강원도는 물론이고 나라 밖 첫 여행이었다. 경비는 막노동 아르바이트로 마련했다. 여름에 떠난 40일간의 긴 여정은 그에게 열병같았다.

“돈 없이 떠난 여행이라 항상 배고프고 피곤했지만 행복했다. 알프스 산맥의 고봉 융프라우에서 만난 하늘과 로마의 휴일에 나온 트레비 분수옆 이발소, 모로코 해변에서 한가롭게 수영하는 아버지와 아들…. 충격이었다. 아름답다는 건 이런거구나 매순간 깨닫느라 바빴다.”

심장박동이 뛰면서 ‘인생의 빈맥’이 찾아왔다. 고시는 더이상 목표가 아니었다.

#고열. 단기선교

싸돌아 다니기 시작했다. 중국, 동남아를 집 근처 나들이하듯 다녔다. 98년 생각지도 않은 기회를 만났다. 한국대학생선교회(CCC)의 단기선교프로그램(SMTC)을 통해 미국에 올 수 있게 됐다. 6개월에서 1년간 거주하면서 언어, 문화를 배우고 캠퍼스를 다니면서 선교한다.

미국은 또 다른 새로운 세상이었다. 방학마다 참가자들과 여행을 떠났다. 여름엔 멕시코에서 캐나다까지 서부를 종단하고, 겨울엔 LA에서 뉴욕, 몬트리올까지 대륙을 횡단했다.

“하버드, MIT 학생들을 만나 이야기하면서 또 한번 가치관이 바뀌었다. 내가 보기엔 천재들인데 정말 겸손하고 따뜻했다. 서울대학교에 가지못했다는 열등감에 빠져있던 내가 부끄러웠다. 학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떻게 살까가 중요했다.”

뭘해야 하나 고민을 열병처럼 앓았다.

#탈진. 5년의 공부

한국으로 돌아갔다가 다시 정식 유학비자를 얻어 왔다. 한국에서 간호사로 일하던 아내와 결혼한지 두달만인 2000년 7월3일이다.

먹고 살아야 했다. 아내가 미국 간호사 면허를 공부하는 동안 3년반 일을 가리지 않고 했다. 자바시장에서, 꽃가게에서 일했다. 가슴속 열병의 해결방법은 교회에서 열린 이민 세미나에서 찾았다. 자원봉사를 하던 중 이민변호사의 상담을 엿듣다가 ‘간호사가 최고’라는 말이 계속 귀에 들렸다. 막연하게 꿈만 꿨던 ‘의료선교의 꿈’이 그제야 퍼즐 맞추듯 끼워졌다.

먼저 간호사가 된 아내는 반대했다. “당신까지 이 고생을 하려 하느냐”고 했다. 부모도 '남자 간호사’가 되겠다는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2004년 엘카미노 칼리지에서 프리너싱 코스를 시작했다. “수업 첫날이 8월 한여름이었다. 강의실에 앉았는데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내 길을 이제야 찾았다는 기쁨에 가슴이 벅찼다.”

2년 과정을 끝내는데 5년이 걸렸다. 법학 전공인 그가 인정받을 수 있는 학점이 없어 영어(ESL)부터 다시 시작했다. 부족한 영어에 의학용어, 실습까지 익히느라 매일 탈진했다.

2009년 12월 졸업했다. 66명 동급생 중 26명만 학위를 얻었을 정도로 힘든 과정이었다. 간호사 면허시험은 산너머 산이었다. 2차례 낙방하고 세 번 만에 합격했다.

취업도 쉽지 않았다. 2008년 경제위기의 여파로 고용이 얼어붙었다. 캐서린 조 남가주간호협회 전회장이 도움을 줬다. LAC+USC 응급실에 딱 한자리가 났는데 지원해보라 알려줬다. 면접장에 가보니 지원서가 책처럼 쌓여있었다.

간호사 시험에 2차례 낙방한 것이 오히려 전화위복이 됐다. 시험을 준비하면서 현장 대처 사례를 집중 공략했었다. 면접 질문은 ‘79세 멕시코 남성이 국경에서 엉덩이뼈가 부러졌다. 에이즈바이러스가 있고 C형간염이 있다 어떻게 도울 건가’였다.

“다들 어떻게 치료하겠다고 답했는데 나만 ‘감염을 예방하기 위한 의료진의 안전 확보가 우선’이라고 말했다. 딱 하나 난 자리가 내 것이 됐다.”

‘코드 블루(Code Blue·환자 심폐정지로 소생술이 시급한 상황)’는 그의 운명이 됐다.

#생사. 응급실 현장

-최근 할리우드차병원 응급실 간호사가 코로나 감염으로 사망했다.(셀리아 마코스는 지난달 3일 마스크 하나만 쓰고 호흡정지로 실려온 코로나 환자를 간호하다 감염됐고 14일 후 사망했다. 마코스를 비롯해 현재까지 가주에서 36명의 의료진이 목숨을 잃었다)

“호흡곤란 환자를 상대할 때가 특히 감염되기 쉽다. 인공호흡기를 기도내 삽관할 때 환자 폐안의 바이러스가 뿜어져 나올 수 있다. 지금 응급실에 근무하는 의료진이라면 위험은 일상이다.”

-병원 상황이 어떤가.

“춘절(설날·1월25일) 지나고 첫 환자가 들어왔다. 그후 계속 증가하다가 3월 말 정점을 찍고 내려가나 싶었는데 최근 며칠 사이 또 늘고 있다. 이른 아침부터 환자들이 오는데 심각하다. 열만 있는데도 검사하는 환자마다 양성으로 나오고 있다.”

-다시 늘고 있는 이유는.

“날씨가 더워지면서 소셜디스턴싱(사회적 격리)이 느슨해진 것 같다. 경제재개 기대 심리도 한몫했다고 본다. 사회적 격리가 잘 지켜지면 집 밖 외출을 못하니 일반 응급환자는 감소한다. 그런데 요즘 총상, 차량사고 등 중증외상환자들이 예전처럼 실려오고 있다. 이틀 동안 전기톱에 팔이 절단된 환자만 3명이었다. 기존 코로나 환자에 외상환자까지 늘면 응급실로서는 재앙이 된다.”

-병원의 대응책은.

“트라우마센터(응급센터)내 ‘이스트 유닛’ 1개동을 음압실을 갖춘 ‘코비드 유닛(코로나 응급환자동)’으로 개조했다. 또 병동마다 이중문과 멸균 장치를 설치했다. 병원 앞마당에도 최악의 상황을 대비해 임시병상 텐트 5개동을 만들었다. 응급실 의료진도 조당 7명씩 하루 6개조가 4시간 교대하고 있다.”

-숨 쉴 틈도 없을 것 같다.

“비상이다. 특히 중환자실 간호사들은 매일 12시간씩 개인보호장구를 쓰고 환자를 돌보느라 탈진상태다. 트라우마센터에 근무하는 나도 코비드유닛 근무를 자원했다. 하루 12시간 근무중 4시간 동안 코로나 환자를 간호한다.”

-환자를 어떻게 구별하나.

“전염병 상황에 응급실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환자 분류(triage)다. 응급센터 입구 앞에서 체온 등 기본 검사시 기침만 해도 따로 분류한다. 다음 심장박동, 혈중산소포화도 등 활력 징후들을 본다. 이후 코로나 테스트를 한다. 한 달 전만 해도 검사 결과가 나오는 데 5일 걸렸다. 다행히 요즘은 40분 만에 확인할 수 있어 빠르게 대처할 수 있다.”

-감염 환자 치료는.

“혈액배양검사, 엑스레이, 심전도 등등을 교차 분석하면 병세 정도를 알 수 있다. 양성이라도 경증이면 퇴원시킨다. 소셜워커를 연결해 2주간 무료로 지낼 수 있는 자가격리 호텔을 연결해준다. 호흡 불편시 사용할 산소통과 필요한 약들도 격리 호텔로 보내준다. 중증환자의 경우 인공호흡기를 연결하고, 항생제 아지트로마이신과 로세핀을 투여한다. 치료제가 없으니 면역을 키울 수 있도록 조력하는 방법밖엔 없다.”

-감염 두려움도 클 텐데.

“이미 2차례 자가격리했다. 다행히 양성은 아니었지만 감옥처럼 갇혀 지냈다.”

-의료용품 공급 상황은.

“최악에서는 벗어났다. 확산 초기에는 N95 마스크가 부족해 살균제로 닦아서 재사용할 정도였다. 그러다가 살균제까지 바닥난 적도 있다. 환자는 넘쳐 들어오는데 보호장비가 부족해 대처하기 어려웠다. 그래도 우리 병원 트라우마센터는 전국 최고 수준이라 노하우가 있고 방역 프로토콜을 철저히 지켜 잘 견뎌냈다. 한 달 전부터 공급이 나아졌지만 여전히 넉넉하진 않다.”

-의료진의 한 사람으로 정부 대응을 평가한다면.

“트럼프 행정부는 실망스럽다. 결국 앤서니 파우치 소장(알레르기·전염병 연구소·NIAID)의 예측이 맞았다. (그는 지난 3월28일 미국내 사망자가 10만 명에 이를 수 있다고 경고했다. 11일 현재 사망자수는 8만1000명을 넘어섰다.) 이런 상황에 트럼프 대통령은 ‘살균제 주사(disinfectant injection)를 연구해보라 했다. 대통령이 그 정도로 무지한지 몰랐다. 그 발언 이후 의료진들 사이에서 농담이 생겼다. 열이나 코로나 의심증상이 생기면 동료 의료진에게 ’살균제 남는 거 있으면 주사 한대 놓아달라‘고 한다.”

-제재 완화 조치는 어떻게 생각하나.

“캘리포니아는 다행히 일찍 자택격리령을 내려 뉴욕과 같은 최악 상황에 대비할 시간을 벌었다. 그런데 요즘 해변 재개장과 영업 재개를 내걸고 시위하는 사람들이 있다. 의료진들은 걱정이 많다. 물론 지금 경제가 어렵고 힘들지만 앞으로 더 어려운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감염 사망자 대부분이 당뇨. 심장병, 폐렴, 신장 기능저하 등 면역성이 낮은 기저질환이 있다. 특히 암투병 환자들은 하루하루 살얼음판처럼 살고 있다. 만약 이런 병을 앓고 있는 가족이 있다면 빨리 열자고 시위하진 못할 거다. 코로나 사태 전 우리 병원 응급실에 하루 평균 500명이 들어왔다. 만약 격리조치가 완화되면 응급실이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두렵다.”

-LAC 응급실 근무 10년차다. 잊을 수 없는 환자가 있다면.

“너무 많아서…. 우린 매일 죽음을 목격한다. 심장마비, 총상, 사고사 등등. 그중에서도 어린 아이가 죽는 경우는 보기 힘들다. 수영장에 빠져 뇌사상태가 되거나 할머니가 후진하는 차에 깔려 숨지면 가족들은 자책감에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어렵다.”

-임종 환자를 놓기 어려울 때가 있을 텐데.

“사망자는 환자이기 앞서 누군가의 아버지이고, 어머니이고 아들이자 딸이다. 가족을 잃은 상실감은 면역이 되지 않는다.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내 이야기 아닌가. 사람이 죽을 때 가장 마지막에 사라지는 감각이 청력이라고 믿고 있다. 숨을 거둔 이의 귀에 대고 항상 마지막 기도를 함께한다.”

-위험했던 순간은.

“정신병동 응급실에서 근무할 때다. 난동을 부린 환자에게 수갑을 채웠다. 파견온 간호사가 그 수갑을 풀어줘서 아찔한 상황이 벌어졌다. 환자가 바늘을 삼키려 난동을 부렸고 말리려다가 환자와 나, 파견간호사 셋 다 그 바늘에 찔렸다. 그 와중에 환자가 때가 끼인 손톱으로 내 팔을 긁어 상처가 심했다. 환자에 주사한 바늘에 의료진이 찔리면 HIV(에이즈바이러스) 감염이 가장 큰 공포다. 다행히 음성으로 나왔지만 한 달간 약을 먹고 수시로 검사를 받아야 했다.”

-한인 환자들 안타까울 때는.

“정신병동에서 근무하면서 세상의 끝을 봤다. 한인 이민사회의 이면이 거기 있다. 한 명문대 재학생이 마약 과다복용으로 대낮에 옷벗고 차도 한가운데를 뛰어다니다 잡혀오기도 했다. 교회 장로인 아버지는 아들의 마음이 아픈 걸 전혀 몰랐다.”

-간호는 무엇인가.

“공감이다. 고통을 이해하지 못하면 고통을 덜어줄 수 없다. 애초에 의료진은 환자 때문에 존재하는데도 환자를 내 연봉으로만 보는 동료들이 종종 있다. 공감하려 노력할수록 더 자세히 관찰할 수 있고 미세한 징후도 알아차릴 수 있다. 같이 울고 듣고 안아야 더 잘 치료할 수 있다.”


정구현 기자 koohyun@koreadaily.com chung.koohyun@korea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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