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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마당] 그리운 친구

지상문 / 파코이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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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중앙일보] 발행 2020/05/26 미주판 16면 기사입력 2020/05/25 15:35

한인타운에 나들이를 가면 주차장에서 서성이며 두리번거리는 버릇이 10년도 넘어 반평생이다. 머리 허연 반대머리나 주춤거리며 걷는 노인의 얼굴에 옛날 멋없이 헤어진 친구의 얼굴을 붙여 보곤 한다. 그도 저만큼 늙었거니 어림짐작을 한다.

사변이 끝난 다음 쌀 한 톨 구하기 힘들 때 중3으로 그나 나나 무슨 야망을 품고 세상을 바라보기 어려운 시절이다. 그는 왕십리 기차역 철도 부지에 엮어진 판잣집 한 칸에서 다섯 식구가 비비며 살고 있는 이북 피란민이었다. 죽이 맞아 붙어 다닌다 해도 달랑 전차표 두 장의 썰렁한 두 주머니를 무엇으로 채웠나 기억이 없다. 모든 상황을 긍정적인 태도로 보는 그의 도량에 내가 반했던 것 같다.

우정보다 고상하고 품격 높은 것은 없다고 했다. 쾌락의 종류는 많으나 그 중에서 가장 품격 높은 쾌락은 우정이라 어느 현인이 말했다. 그 가난한 우정을 그리워하는 이민1세들의 미련함을 전쟁도 굶주림도 알지 못하는 젊은이들에게 어찌 보여줄 수가 있나, 쇠귀에 경 읽기지.

이남 사람들이 이북으로 피란하는 반대의 역사를 가정해 본다면 평양의 대동강변에 판잣집을 짓고 억척으로 살았을 이남 피란민이 그려진다.

누구나 극한 상황에는 없던 힘이 솟는다. 우리는 4.29폭동에 좌절하지 않고 이만큼 살아간다.

아이스크림 하나 얻어 걸린 딸, 부인이 뒤에서 뭐라 해도 꼬맹이 녀석과 함께 카트를 밀고 주차장으로 나가버리는 신사 아저씨, 교회 전도지 들고 상냥히 웃어주는 할머니, 주간지 꺼내 뒤적이며 혀를 차는 할아버지, 모두 정이 가는 사람들이다. 한인타운은 언제 가도 또 가고 싶은 고향이다.

구멍가게라도 차려 먹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이었을까. 그는 상업학교로 가고 나는 목수가 되겠다고 망치 들고 공업학교로 가는 바람에 그렇게 맥 없이 우리는 헤어지고 반세기가 흘렀다. 친구여 당신을 그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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