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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의 한국인 미술가들] (46) 비디오 아티스트 고 백남준

한국이 낳은 '문화 영웅'
예술가이자 사상가로 세계적 명성
미술+영상 결합시킨 새 장르 창조

고 백남준은 비디오 아트의 창시자이자 화가, 행위 예술가, 예술 사상가다. 1932년 서울에서 태어나 2006년 뉴욕에서 사망했다. 64년 뉴욕에 정착해 유럽과 한국, 일본 등을 오가며 활동했다.

그의 지적인 영역은 미술 한 분야에만 그치지 않고 음악과 미학, 과학, 기술, 역사, 문명, 인간 등을 망라한다. 그는 위대한 예술가였고 또한 위대한 사상가였다.

백남준은 40년대 한국에서 태창방직을 운영하던 거부 백낙승의 아들로 종로구 서린동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음악에 재능을 보였다. 경기중고를 다닐 때 음악 교사인 피아니스트 신재덕 선생(전 이화여대 음대학장)이 백남준의 타고난 재질을 발견하고 피아노와 작곡, 성악 등 음악의 다양한 분야를 가르쳤다.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부산을 거쳐 일본으로 피난, 도쿄에 정착한 백남준은 타고난 지적인 능력을 바탕으로 도쿄대학 미학과에 우수한 성적으로 입학한다. 이곳에서 백남준은 전후 일본 인문학의 대표적 지성인 다케우치 토시오 등 여러 명의 교수들에게 미학, 음악학, 작곡 등을 배우고 졸업 후 당시로서는 세계 현대 음악의 메카인 독일의 뮌헨대학 음악과 석사과정에 진학한다. 백남준은 이곳 뮌헨대학에서 전생의 분신으로까지 평가했던 전위음악 작곡가 존 케이지를 운명적으로 만난다. 이 때가 58년이고 백남준 예술에서는 가장 중요한 전환점이 된 해다.



백남준은 존 케이지와 교류하고 한편으로 독일에서 발흥하던 현대음악, 아방가르드 미술 등을 접하면서 새로운 예술철학을 구축한다. 여기에는 존 케이지의 영향이 크다. 존 케이지의 철학은 심오하다. 억지로 간단히 말하면 이렇다. 서양음악은 기본적으로 음가(옥타브)와 박자(리듬)로 구성된다. 다시 말해 ‘높낮이를 가진 도레미…’로 만들어진다. 그러나 음악은 정해진 음가 이외에 무수한 음가의 영역을 포괄하고 있을 뿐 아니라 (더 중요한 것은) ‘도’와 ‘레’ 사이에 있는

‘쉬는 순간’ 또는 ‘빈 영역’이 오히려 음악적으로 더 중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한마디로 동양 불교에서 일찍이 갈파한 ‘삶과 죽음이 하나(生死一如)’ ‘있는 것과 없는 것이 둘이 아니다(無二)’ 등의 위대한 지혜를 서양 음악으로 수용한 것이다. 서양 음악은 존 케이지로 인해 모든 음향과 순간(무의미) 모두를 음악(의미)으로 끌어들여 무한의 개방된 표현세계를 열었다.

백남준은 여기서 20세기 중반 인류문명의 총아라고 할 수 있는 TV와 영화 등 영상매체는 물론 온갖 만물을 미술로 끌고 들어온다. 63년 백남준은 독일의 부퍼탈에서 TV 13대를 이용해 ‘음악의 전시-전자 텔레비전(exposition of music-electronic television)’ 전시를 연다.

TV가 깨지고 망가지고 관객이 밟아야 영상이 보이게끔 만든 이 전시는 괴팍하게 보였을지 모르지만 정작 20세기 후반 미술사의 한 획을 그은 비디오 아트를 연 위대한 첫 걸음이었다. 백남준은 이어 조셉 보이스를 만나면서 자신의 표현 영역을 몸을 이용한 행위예술로 확대시켰고 ‘플럭서스’ 전위그룹 활동을 거쳐 64년 뉴욕으로 이주한다.

백남준은 이후 미술가로서 절정의 시기를 보내는데 샬롯 무어맨과의 ‘오페라 섹스트로니크’ 공연, 84년 뉴욕과 파리를 연결하는 전지구적 비디오 아트인 ‘헬로우 미스터 오웰’, 1003개의 TV를 이용한 피라미드 형상의 엄청난 대작인 ‘다다익선’은 물론 우주인의 언어 같은 펜화, 어린이 유희 같은 크레용화, 일상품을 접합시키고 그 위에 그림을 그리는 반회화 반조각 작품, 조셉 보이스의 영혼을 기리는 진혼굿 등을 통해 뜨거운 예술혼을 연소시켰다. 그러나 2000년을 전후해 당뇨병이 심해지더니 3년 전 맨해튼에서 길고 긴 잠에 들었다.

백남준. 그는 한국인으로 태어나 뛰어난 감성과 지성을 바탕으로 비디오 아트를 창시해 미술의 외연을 넓히는 한편 내적으로는 인간과 세계, 역사에 대한 통찰을 특별한 감수성으로 승화시켜 작품으로 표현, ‘인간 창조성의 무한함’을 드러낸 위대한 인간이었다.

박종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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