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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향계] 누가 배신자인가

[LA중앙일보] 발행 2020/05/29 미주판 16면 기사입력 2020/05/28 18:41

# 정치는 말싸움이다.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는다. 말은 뒤집힐 수 있다. 지금 옳다고 계속 옳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당장 아니라고 해서 끝까지 아닌 것도 아니다. 그게 정치 언어다. 보통사람은 그래서 함부로 의견을 내놓기가 두렵다. 자칫 친한 사람에게 상처를 줄 수도 있고 섣부른 판단이 두고두고 오점이 될 수도 있어서다.

지난 몇 년, 한국 정치판을 돌아보면 더욱 그렇다. 나만 옳고 너는 틀렸다는 주장들이 얼마나 판을 쳤던가. 얼마나 많은 모진 말들로 서로를 할퀴고 헤집었던가. 소설가이자 노 언론인 김훈은 오래 전 이렇게 쓴 적이 있다. “욕망을 정의라고 말하는 그 말들은 허망할수록 격렬하고, 격렬할수록 무내용하고, 무내용할수록 진지하고, 진지할수록 기만적이다.” 말과 글을 취미나 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이라면 곱씹어 되새김질해야 할 경고가 아닐 수 없다.

# 요즘 한국에서 가장 큰 이슈가 되고 있는 ‘윤미향 사태’의 불똥이 미국까지 튀었다. 한인들도, 관련 단체들도 치열한 공방을 벌인다. 발단은 이용수 할머니의 회견이었다. 올해 92세인 할머니는 과거 위안부 피해 경험을 증언하며 여성인권운동가로 거듭난 분이다. 위안부 피해자 인권 단체인 정의연(정의기억연대←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과 함께 30년을 같이 달려온 분이기도 하다. 그런 분이 정의연 활동을 공개 비판하면서 여당 측 비례대표로 국회의원에 당선된 정의연 대표 윤미향을 잇따라 흉을 봤다. “30년간 이용만 당했다"는 게 요지다.

정의연 쪽도 가만있지 않았다. 잘못이 있다면 바로잡으면 되지 일제 만행을 고발하고 알려온 그동안의 운동 성과를 할머니의 말 한마디로 무너뜨려서는 안 된다고 맞섰다. 배후설을 제기하기도 했다. 청춘을 걸고 여성인권 운동에 매진해 온 사람들을 여태껏 거들떠보지도 않다가 이제와서 옳다구나 하고 싸잡아 파렴치범으로 몰고 있다고도 항변했다. 사태는 양측 지지 세력까지 가세하면서 지난 해 ‘조국-검찰 대립' 때처럼 결론 없는 진영 대립 양상으로까지 번지는 조짐이다.

지금으로서는 양측이 모두 자신들의 경험에 근거해 주장하는 것이어서 누가 옳고 누가 그른지 단정하기가 쉽지 않다. 어느 쪽이 진실인지도 알 수가 없다. 직접 경험했다고 사태의 진실을 제대로 파악하는 것은 아니다. 누구나 기억의 한계도 있다. 경험과 진실 사이의 거리는 그만큼 멀다.

해당 단체의 모금 관련 회계 부정 의혹은 검찰 수사로 넘어갔다. 차제에 당국도 모든 비영리단체의 투명성과 개방성을 제고하는 장치를 마련하겠다고 나섰다. 사태를 좀 더 지켜보면서 성급한 판단을 아껴야 할 이유다.

# 양쪽은 서로 배신자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맛있는 것 사 달라 했는데 돈 없다며 거절하더라.” 인간적 섭섭함을 토로한 이 말이 전후 맥락을 떠나 이용수 할머니의 심중을 대변한다. “자기가 못한 국회의원을 윤미향이 하게 되니 시샘이 나서 그런다.” 정의연 쪽의 이런 인식도 같은 배를 탔던 사람에게 할 소리는 아니다. 이쯤 되면 이제 서로가 돌아오지 못할 강을 건넜다고 봐야 한다.

배신이란 믿음을 저버리는 행위를 말한다. 하지만 그 믿음은 전적으로 나의 것이지 상대의 소관은 아니다. 살다 보면 누구든 생각이 바뀌고 처지도 바뀔 수 있다. 어쩔 수 없이 길을 달리하기도 한다. 누구도 그것을 배신이라고는 하지 않는다. 다만 길은 바꾸더라도 함께 마시던 우물에 침은 뱉지 말아야 한다. 그것이 함께 했던 사람들에 대한 마지막 예의다. 그걸 못해서 배신자 소리를 듣는다면 그때는 어쩔 도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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