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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우리말] 춤을 추다

동사와 명사 중에서 어떤 말이 먼저 생겼을까가 어원을 연구하는 사람에게는 흥밋거리입니다. 구체적인 사물을 보고 동작에 해당하는 말을 만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과 사람의 동작을 보고 거기에 해당하는 구체적 명칭을 붙이지 않았을까 고민하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명사와 동사의 형태도 구별되지 않았을 겁니다. 명사로 동사의 역할도 함께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무슨 품사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오히려 부정확할 수 있습니다.

말을 배우는 어린아이의 경우를 보면 말에서 명사와 동사를 잘 구별하지는 않는 듯합니다. 주로는 명사로 말하는데 동사의 느낌까지 함께 싣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아이가 목이 말라서 ‘물’이라고 하면 명사를 말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물을 달라는 의미니까 동사인 셈입니다. 아마 인간의 언어도 최초에는 어린아이의 발달과 비슷했을 겁니다. 형태는 지금의 기준으로 말하면 명사라고 할 수 있지만, 기능은 명사이기도 하고 동사이기도 하고, 감탄사이기도 했을 겁니다. ‘물!’이라고만 해도 충분히 감탄의 의미가 될 수 있으니 말입니다.

우리말에서 ‘신다, 품다, 밟다, 빗다, 비추다’와 같은 동사는 모두 ‘신, 품, 발, 빗, 빛’이라는 명사에서 발달한 말입니다. 우리말에는 이렇게 명사에서 동사로 발달한 말이 많습니다. 명사에서 형용사로 변한 경우도 많습니다. 대표적인 예는 색깔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불’에서 ‘붉다’가, ‘풀’에서 ‘푸르다’가 발달했습니다. 희다는 해에게서 온 말로 생각하고 있고, 누렇다는 땅을 나타내는 누리와 관계가 있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동사나 형용사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어떤 구체적인 말에서 출발하였는지 추론이 가능합니다. 일본어의 경우도 어간이 구체적인 명사인 경우가 많습니다.

한편 우리말에서는 동사나 형용사를 명사형으로 만드는 방법이 있습니다. 주로는 음이나 기가 붙어서 명사형으로 바뀌는 경우가 있습니다. 가다를 감, 오다를 옴이라고 표현하는 것입니다. 얼다를 얼음이라고 표현하는 경우는 완전히 명사로 변한 예입니다. ‘날이 추워서 물이 꽁꽁 얼음이 신기하다’라고 할 때와 ‘얼음이 투명하다’라고 할 때의 얼음은 다른 말입니다. 앞의 얼음은 명사형이고, 뒤의 얼음은 명사입니다.



그런데 얼음이 구체적인 명사에서 동사 ‘얼다’가 된 것이 아니라 ‘얼다’에서 얼음이라는 단어가 만들어졌다는 점이 특이합니다. 이런 어휘가 많기 때문에 특이하다기보다는 왜 그런지 이유가 궁금하다고 하는 게 맞겠습니다. 1음절 어휘 중에 이런 표현이 많습니다. 대표적인 단어가 ‘꿈’입니다. 꿈은 ‘꾸다’에서 온 말로 보고 있습니다. ‘잠’도 마찬가지입니다. ‘자다’와 관련이 있습니다. ‘춤’의 경우도 ‘추다’에서 온 말입니다. 인간에게 아주 원초적인 어휘인데, 동사의 사고를 먼저 하고 있다는 점에서 선조의 생각을 거슬러 올라가 보게 됩니다.

이러한 단어들의 공통점은 왠지 구체적인 느낌보다는 추상적인 느낌이 강하다는 것입니다. 동작이나 모습의 느낌이 나는 어휘들입니다. 아기가 잠을 잔다고 표현하기도 하지만 아기가 잔다고 표현하면 되는 겁니다. 이런 표현이 반복되면서 좀 더 구체적으로 표현할 필요성이 생긴 것 같습니다. 그래서 ‘어젯밤 꾸었어’가 아니라 ‘어젯밤 꿈을 꾸었어’로 표현하게 되었을 겁니다. ‘잘 추는데’를 ‘춤 잘 추는데’로 조금 더 구체적으로 표현하려고 한 것입니다.

명사인 단어를 보면서 이 말은 구체적이었을까를 고민해 보는 것은 흥미로운 일입니다. 특히 동사와 관련이 깊은 어휘를 보면서 우리의 선조는 구체적인 대상으로 인식하였을지, 동작이나 모습으로 인식하였을지 생각해 보는 것은 재미있는 일입니다. 반대로 동사나 형용사의 어간에서 명사의 뿌리를 찾는 것도 흥미롭습니다. 명사와 동사의 관계를 살피는 일은 마치 시간 여행을 떠나고, 선조의 생각을 만나는 기회가 될 겁니다.


조현용 / 경희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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