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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우리말] 눈물 젖은 빵

어릴 때부터 자주 듣는 말 중에 ‘눈물 젖은 빵’이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눈물 젖은 빵을 먹어보지 않은 사람은 인생을 논할 자격이 없다는 말로 표현은 이어지곤 했습니다. 정확한 의미는 몰라도 고통스럽고 서러움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이 인생의 참 의미를 알기 어렵다는 말로 받아들여졌습니다. 축축한 빵에서 한없이 가라앉는 자신을 보았을 겁니다.

눈물 젖은 빵은 독일의 문호 괴테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말입니다. 제가 직접 그 책을 읽지 않아서 전체적인 느낌은 잘 모르겠습니다만, 아마 우리나라 작가가 썼다면 ‘빵’이라는 말은 쓰지 않았을 겁니다. 빵보다는 밥이라는 표현이 어울릴 겁니다. ‘자유가 아니면 빵을 달라’라는 구호도 우리에게는 어색합니다. 당연히 자유가 아니면 밥을 달라고 했을 겁니다. 종종 서양어인 ‘빵’을 우리말에서 ‘떡’으로 번역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해가 안 되거나 어색할 때가 많습니다. 그것은 빵이 식사의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는 빵이 아니라 밥이 한 끼 식사입니다. 밥이 식사 전체를 대표합니다. 그래서 ‘면’을 먹으러 가면서도 밥 먹으러 가자고 합니다. 식사하러 가면 분명히 ‘반찬’도 먹겠지만, 밥 먹으러 가자고 표현하는 겁니다. 밥 먹으러 가서 밥만 먹고 오는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말 표현에서 밥이 음식의 대표인 셈입니다. 서양에서는 빵이 식사의 대표였던 겁니다. 우리나라 사람은 예전에 아침에도 꼭 밥과 국이 있어야 한다고 이야기하곤 했습니다. 물론 요즘은 빵으로 아침을 먹는 경우도 많습니다. 세상이 바뀌고, 식생활의 습관이 달라진 겁니다. 전에는 빵으로 식사하는 것을 ‘빵으로 때웠다’고 표현할 정도도 빵을 식사로 생각하지 않은 경향이 있었습니다.

눈물 젖은 빵은 고통스러운 상황에서 먹는 빵일 겁니다. 괴테는 눈물 젖은 빵과 슬픔으로 울면서 밤을 지새운 사람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가난함에서 오는 고통도 이야기합니다. 눈물이 가난에서 비롯된 것일지 모릅니다만, 눈물은 모든 고통을 상징합니다. 눈물 젖은 빵이라는 표현에서 가난해서 생긴 서러운 마음도 느껴집니다. 눈물은 단지 배고파서 흘리는 게 아닙니다. 서러움과 억울함은 눈물을 참지 못하게 만듭니다. 내 잘못이 아닌데 당하는 고통은 참을 수 없는 눈물로 쏟아져 내립니다. 잠을 이룰 수도 없습니다. 베개도 이불도 눈물에 젖습니다. 나의 고통뿐 아니라 가족의 고통도 나를 견딜 수 없게 합니다.



하지만 눈물 젖은 빵도, 서러운 마음으로 먹는 찬밥도 나를 일으키는 힘이기도 합니다. 우리 표현에 ‘찬밥 신세’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다 식은 밥을 먹는 신세는 참으로 처량합니다. 눈물도 날 겁니다. 하지만 눈물을 흘리고 나서 다시 일어난다면 새로운 세상을 만날 수 있습니다. 눈물 젖은 빵을 먹어보지 않은 사람이 왜 인생을 모르는지에 대한 대답이 될 수 있을 겁니다. 딱딱하게 굳어버린 고깃덩어리, 다 식은 커피 한 잔이 모두 서러울 수 있지만, 다시 일어나는 힘이 되기도 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지금 나는 눈물 젖은 빵을 먹고 있나요? 눈물을 흘리면서 빵을 먹어본 적이 있나요? 서러움에 흐느끼며 밤을 새운 적도 있나요? 만약 그렇다면 인생을 알 수 있게 된 겁니다. 비싼 인생의 수업료를 낸 것은 분명하지만 그만큼 내가 성장하게 된 것도 틀림없습니다. 눈물 젖은 빵은 고마움을 알게 하는 빵입니다. 힘들 때는 이 말이 잘 안 들리지만 말입니다.


조현용 / 경희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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