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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 칼럼] 공권력 남용의 한인 피해자들

2007년의 마지막 날을 잊을 수가 없다. 그때 사회부 막내 기자였다.

20대 한인 마이클 조(당시 25세)씨가 경찰이 쏜 총에 맞아 숨졌다는 제보에 곧바로 라하브라 지역 사건 현장으로 달려갔다. 당시 라하브라 경찰국 소속 경관 2명은 쇠막대를 들고 다가왔다는 이유로 조씨에게 무차별 집중 총격을 가했다.

총격 횟수는 무려 12발. 아무리 공권력이 강한 미국이라 해도 10여 발이 넘는 총격은 제지가 아닌 사살 의도가 분명해 보였다.

이후 사건 현장의 감시 카메라가 공개됐다. 조씨는 쇠막대를 들고 있었지만 별다른 저항 없이 현장을 떠나려 했다. 이는 공권력 남용 문제로 이어졌다.



한인들은 분개했다. 한인사회 내에서 사건 진상규명 대책위원회가 구성됐고 서명운동은 물론 촛불집회까지 진행됐다. 분노의 목소리가 거세지자 ‘정당방위’였다며 원론적으로 일관하던 경찰과 시 정부는 압박을 받기 시작했다. 결국, 당국은 2년 6개월만에 조씨 가족과 합의, 보상금을 지급하면서 사건을 조용히 마무리했다.

2009년에는 이틀 새 2명의 한인이 잇따라 경찰 총격에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수지 영 김(어바인)씨는 한 살배기 딸을 차에 태운 채 경찰과 추격전을 벌이다 경찰이 쏜 총에 맞아 숨졌다. 김씨를 추격하던 경관 중 한 명이 김씨의 차량 뒷좌석에 아동용 카시트를 발견하고 다른 순찰 경관에게 그 사실을 알렸음에도 경찰은 아이가 탄 차에 총격을 가했다.

이틀 후 새크라멘토 폴섬 지역에서도 사건이 발생했다. 경찰은 전기총을 맞고 수갑이 채워져 이미 제압을 당한 조셉 한씨에게 총을 쐈다. 한씨는 그렇게 생을 마감해야 했다.

지난달 조지 플로이드가 경찰의 과잉 진압으로 숨졌다. 현재 미국 전역에서는 이번 사건에 대한 시위가 계속되고 있다.

플로이드가 경찰에 의해 목이 짓눌린 영상을 보는데 한인 사회를 분개하게 했던 사건들이 스쳐 지나갔다. 동시에 당시 한인 사회의 대응 방식을 떠올리니 아쉬움이 남는다. 한인 사회도 그때 ‘한인 중심’ ‘지역 사회’에 국한된 대응을 넘어 분노의 목소리를 주류 사회에 효과적으로 전달해 전역에 공론화할 수 있었다면 하는 아쉬움이다.

공권력 남용으로 인해 발생하는 논란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거기에 인종 문제까지 엮여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공분을 자아낸다. 안타까운 사건은 다시는 발생해선 안 되겠지만, 현재 시스템이 확연하게 바뀌지 않는 한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

한인들이 이번 조지 플로이드 관련 시위에 함께 목소리를 보태는 것은 고무적이다. 대신 단발성 연대로 끝나서는 안 된다. 이번 기회를 계기로 주류사회와의 연대를 지속해서 다져 나가야 한다. 우리가 피해를 입었을 때 역시 주류사회가 함께 힘을 보탤 수 있도록 말이다.

또 하나. 조지 플로이드 사건에 분개한다면 한인 사회 내 남아있는 타인종에 대한 차별적 인식 역시 뿌리 뽑아야 한다. 한 예로 라티노를 ‘멕작’이라 부르며 비하한다거나 보이지 않게 일부 인종과 민족을 멸시하는 태도는 지양해야 한다.

인종과 민족에는 차등이 없다. 평소 차등을 두는 듯한 태도로 살다가 불평등한 상황에 부닥치면 아무도 손을 잡아주지 않는다.

인권과 평등의 실현은 외침을 넘어 행동의 영역이다. 조지 플로이드 사망 시위를 계기로 자성과 실천은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 그럴 때 한인 사회의 위상과 네트워크가 비로소 공고해질 수 있다.


장열 사회부 부장 jang.yeol@korea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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