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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 칼럼] 어쩌면 낯선 이름 ‘라타샤 할린스’

백종인 / 사회부장
백종인 / 사회부장 

[LA중앙일보] 발행 2020/06/10 미주판 16면 기사입력 2020/06/09 18:22

# 캘리포니아의 화창한 3월이었다. 15살 소녀가 동네 가게를 찾았다. 음료수가 필요해서다. 매대의 오렌지주스 하나를 가방에 담았다. 그런데 계산대에 앞에서 시비가 생겼다. 손님을 도둑으로 여긴 탓이다. 가방을 뺏으려 했고, 아니라고 뿌리쳤다. 말싸움은 격해져 주먹다짐이 됐다. 소녀가 세차례 얼굴을 때렸다. 격분한 주인은 돌아선 상대의 뒷머리에 38구경 리볼버를 발사했다.

1991년 3월 16일. 사우스 LA에 있는 엠파이어 리커라는 곳에서 일어난 사건이다. 쓰러진 소녀의 이름은 라타샤 할린스(Latasha Harlins)다. 우리에게는 어쩌면 낯선 이름인지 모른다. 하지만 주인의 이름이 익숙하다. 두순자씨다. 그만큼 우리에게는 한 쪽의 사연만이 기억에 많다.

반대쪽 얘기도 있을 것이다. 소녀쪽에서 본 시선들이다. 도둑이 아니라는 증언도 있었다. 그때 오렌지주스의 가격이 1.79달러였다. 싸늘해진 손은 1달러짜리 2장을 쥐고 있었다. 또 있다. 착실하게 교회를 다니고, 학교에서도 모범생이라는 얘기들이 보도됐다.

# 8개월 지난 11월 15일. LA 고등법원은 우발적 살인혐의를 적용해 유죄 판결을 내렸다. 문제는 형량이다. 판사 조이스 칼린은 보호관찰 5년, 400시간 사회봉사, 벌금 500달러를 선고했다. 당초 1급 살인혐의를 받던 두순자씨는 자유의 몸이 됐다. 검찰측의 항소는 기각됐다.

판결이 내려지자 흑인 커뮤니티는 절망했다. 부글거리던 분노는 이듬해 4월에 폭발했다. 로드니 킹 사건으로 촉발된 폭동은 LA 한인타운을 거대한 화염 속으로 몰아넣었다.

# 힙합은 본래 흑인들의 언어다. 많은 래퍼들이 라타샤의 얘기를 노래했다. 대표적인 게 사우스LA 출신의 투팍(2Pac)이다. ‘Something 2 Die 4’라는 곡의 한 대목이다. “그 이름을 기억해야 해. 겨우 주스 한 병 때문에, 죽어야 하나.” 무자비한 약탈과 혼란에 대해서도 서슴없다. “너희들은 오랫동안 내 것을 빼앗았지, 이제는 내가 너희 것을 빼앗을 차례야. 너희는 도대체 우리 말을 들으려 않지. 우리가 다 태워버릴 때까지 말이야. 이젠 부시(대통령)도 이걸 멈출 수 없어.” (I Wonder If Heaven Got a Ghetto)

래퍼 아이스 큐브는 훨씬 끔찍하다. 유명한 곡 ‘Black Korea’는 선동이나 다름없다. “그러니까 검은 주먹에 경의를 표해, 안 그러면 너희들 가게에 불을 질러서, 바삭바삭하게 태워버릴거야.”

# 이듬 해 4월은 상처투성이였다. 찢기고, 불타고, 비명이 난무했다. 도저히 잊을 수도, 용서할 수도 없는 아비규환의 며칠이었다.

아이스 큐브는 나중에 후회했다. “시간을 되돌린다면 ‘Black Korea’를 지우거나 수정하고 싶다. 그건 실패한 곡이다. 아시안들을 모욕하지 않는 다른 방식이어야했다.”

또 한 명의 래퍼가 있다. 어쩌면 그의 통찰력에서 메시지를 찾아야 할지 모른다. 아이스-T의 ‘Race War’라는 곡의 일부다.

“한국인들이 흑인 동네에 와서 X같은 오해를 받았지. 동양인들도 마찬가지 노예야. 망할 놈의 성조기에 하는 말이지…. 시스템은 우리가 서로의 목을 노리길 원하지. 흑인들은 사실 마이너리티가 아니지, 아주 엿같은 머조리티지. 멕시칸도 흑인… 동양인들도 흑인. 맞아 우리 모두 흑인들이야. 우린 모두 형제야. 눈을 크게 떠. 정신 똑바로 차리라고.”

역사는 과정이다. 공포와 분노와 아픔의 기억은 결국 극복의 대상이다. 우리가 라타샤 할린스의 이름을 기억하지 않는 한, 역사는 반복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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