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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20/20] ‘피부 속으로 들어가라’

[LA중앙일보] 발행 2020/06/12 미주판 16면 기사입력 2020/06/11 19:16

“당신이 상대의 피부 속으로 들어가 그 안을 돌아보고, 그의 관점에서 사물을 생각하기 전까지는 상대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임기를 마치면서 2017년 시카고 고별연설에서 한 말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인종적으로 더 다양해지는 사회에서 정의를 위한 투쟁을 강조하면서 미국 소설 속 인물 애티커스 핀치의 충고를 인용했다. 그는 핀치를 ‘소설 속 위대한 인물’이라고 표현했다.

오바마가 인용한 소설은 ‘앵무새 죽이기(To Kill a Mockingbird)’다. 미국인에게 가장 사랑받는 책이다. 애티커스 핀치는 철저한 도덕성과 정의감을 갖춘 소설 속 변호사의 이름이다. 2018년 공영방송 PBS가 3개월간 실시한 설문조사 '미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책 100선’에서 1위를 차지했다. 미국 도서관 사서들이 뽑은 ‘20세기 최고의 책’으로도 선정됐다. 2006년 조사에서 영국 사서들은 '성경보다 먼저 읽어야 할 책’으로까지 칭찬했다.

1960년 하퍼 리가 출간한 소설은 1930년대 남부의 시골 마을을 배경으로 인종차별 문제를 다룬다. 마을 백인 여성 메옐라 이웰이 흑인청년 톰 로빈슨을 먼저 유혹하지만 여자의 아버지는 오히려 톰에게 성폭행 혐의를 씌운다. 불의에 맞선 애티커스는 흑인 변론에 나선다. 무죄를 입증할 증거를 제시하지만 백인 배심원들은 유죄 평결을 내린다. 감옥에 간 로빈슨은 탈출을 시도하다가 비참한 죽음을 맞는다. 앵무새의 죽음이다.

미니애폴리스 조지 플로이드 죽음으로 전국적인 항의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1968년 마틴 루터 킹 주니어 목사 암살로 촉발돼 전국을 휩쓸었던 인종차별 반대시위 이후 최대 규모다.

이번 시위가 이전과 다른 점은 다인종의 공감대를 끌어냈다는 점이다. 무참히 짓밟힌 흑인의 인권을 외치며 시작된 시위였지만 백인, 히스패닉, 아시안 등 인종의 경계를 초월했다. ‘흑인의 삶도 중요하다’는 목소리는 특정 인종의 권익옹호 차원을 넘어 미국 사회에 잠재된 인종차별에 대한 항거였다. 일부 참가자의 폭력행위에도 시위의 정신은 훼손되지 않았다. 시위 현장에서 백인들이 무릎을 꿇고 목조르기로 숨진 플로이드의 죽음을 애도했고 경찰까지도 동참했다. 코로나19의 위험에도 피켓을 들고 군중 속으로 뛰어든 젊은 시위자들의 모습은 미국의 미래를 보여주는 듯했다.

시위는 공권력으로 결코 제어할 수 없는 순수한 시민정신을 대변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시위대를 폭도 취급했지만 이는 극히 일부다.

1968년 폭동으로 사회 질서가 파괴되고 혼란스러웠을 때 당시 대선에 나선 리처드 닉슨은 ‘법과 질서(Law and Order)’을 호소하면서 사회 안정을 강조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국민이 원하는 것은 시위 사태의 조속한 진압이 아니라 인종차별에 대한 근원적인 인식 변화다. 인종차별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끓어올랐다가 사라지는 1회성 시위가 아니다. 경찰개혁 등 흑인에 대한 제도적인 차별을 개선하고 철폐하는 것이 우선 돼야 하지만 궁극적 목표는 편견과 오해를 극복해 흑인에 대한 정서적 차별을 종식시키는 것이어야 한다.

고별연설에서 애티커스 핀치를 인용한 오바마는 이런 말을 남겼다.

“시위를 하는 것은 특별한 대우를 해 달라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건국 선조들이 약속했던 동등한 대우를 원하는 것이다.”

피부색은 달라도 그 속을 흐르는 피는 한가지로 붉고 따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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