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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타인을 차별하는 오만

“내 곁에 너는 살고 있다, 나같이/ 움푹 꺼진 어둠의 뺨 속/ 돌 하나로// 오, 이 돌 언덕, 사랑아/ 우리가 쉼 없이 구르는 곳/ 돌인 우리가/ 얕은 물줄기에서 물줄기로/ 한 번 구를 때마다 더 둥글게/ 더 비슷하게 더 낯설게.”

이 시는 파울 첼란의 시 ‘돌 언덕’의 일부분이다. 1920년 루마니아에서 유대인 부모의 아들로 태어난 파울 첼란은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났을 때 자신의 고향이 유대인 거주 지역으로 확정된다. 그리고 독일군이 점령한 후에 유대인들은 강제수용소로 끌려갔고 파울 첼란 또한 끌려가 강제 노역에 시달렸다. 이 시는 돌이 많은 언덕을 바라보면서 우리가 각각의 돌로서 쉼 없이 구르면서 더 둥글게, 더 비슷하게 된다는 생각을 드러낸다. 우리는 서로의 곁에서 사랑으로 구르며 살아가는 존재라는 생각이 깔려 있다.

인용한 한 편의 시는 요즘 내게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한다. 특히 미국에서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조지 플로이드가 사망한 사건이 일어난 이후 세계적으로 인종차별 반대 시위가 확산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면서 그러하다. ‘흑인 생명도 소중하다'는 현수막이 세계 곳곳에 내걸리면서 더욱 그러하다. 우리가 돌 언덕에 함께 있는 돌이라고 생각한다면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누군가를 격리시키려는, 비하하려는 의욕이 꺾이지 않을까 한 번쯤 생각해보는 것이다.

노벨문학상을 받은 싱어송라이터 밥 딜런은 인권운동가였던 메드거 에버스의 죽음을 애도하면서 다음과 같은 가사를 썼다. 메드거 에버스는 전미유색인지위향상협의회에서 활동했는데 한 백인에 의해 암살되었다.



“그는 학교에서 배웠다/ 처음부터 규정대로/ 법은 그와 함께한다고/ 그의 흰 살결을 보호하기 위해/ 그렇게 빚어진 자신의 모습에 대해 그는/ 한 번도 의문을 품어본 적 없다/ 하지만 그를 비난할 순 없다/ 그는 단지 장기판의 졸에 불과하기에." 메드거 에버스를 살해한 사람을 향해 ‘당신은 당신이 한 행위에 의해 스스로 장기판의 졸에 불과한 존재가 되어 버렸어!’라고 퍼붓는 듯한 내용이다.

언젠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시인인 모리스 마테를링크가 쓴 산문을 읽은 적이 있는데 그는 산문을 통해 우리가 존재의 오솔길을 갈 것을 권고하고, 존재의 오솔길을 걷다 보면 겸허하고 소박한 진리의 아름다움과 깊이에 눈을 뜨게 된다고 썼다. 그리고 보편적 차원의 겸허함을 우리가 지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간이 기대하고 희망할 수 있는 것을 과장 없이 정확하게 일러주는 겸허함, 인간을 축소함으로써 인간이 볼 수 있는 영역을 더욱 확장해주는 겸허함, 한 인간의 현재 상태가 아니라 앞으로 그가 깨칠 수 있고 이해하려고 노력할 수 있는 경지를 통해 인간의 가치를 보여주는 겸허함”이 중요하다고 보았다.

한 사람이 지녀야 할 겸허함은 허황한 행복의 기대를 걷어낸 것이고, 진정한 겸손은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자기 마음 안에서 스스로 작아지는 것이며, 맹목적인 단념이 아니라 내일의 시간이 있음을 알아서 인간으로서의 지향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보았다. 이처럼 우리가 스스로를 단속하고 서로 신뢰한다면 다른 사람에 대한 업신여김이나 가해는 사라질 것이다.

차별을 않는 것은 아집과 대립하는 마음을 버리는 것이다. 원만하고 평화로운 마음을 회복하는 것이다. 모든 존재를 대등하게 바라보고, 우리가 하나라는 생각을 갖는 것이다. 불교에서는 동일한 자성(自性)을 가르친다. 청정한 깨달음의 마음을 누구나 공히 갖추고 있다고 말한다. 이러한 생각이라면 다른 사람을 괄시하는 일을 그칠 수 있을 것이다. 누군가를 차별하고 해치는 일은 나를 차별하고 해치는 일이 되기 때문이다.

언덕과 물줄기를 함께 구르며 닮아가는 돌들의 관계가 우리의 관계라는 생각을 깊게 해보는 요즘이다.


문태준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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