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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 고] 냉면이 무슨 죄가 있나

남북한 민족 화해의 상징이었던 평양냉면이 수난을 겪고 있다. 최근 평양 옥류관 주방장이 “국수 처먹을 땐 요사 떨더니…”라며 우리 정부를 향해 막말을 내뱉었다. 남한 측에 대한 음식 타박이 슬프기만 하다. 평양 옥류관은 단순한 식당이 아니다. 옥류관은 김일성 주석이 생전에 구상하고 완성한 북한의 ‘민족 료리의 원종장(原種場)'이다.

북한에서 냉면은 전통과 선전의 상징적인 음식이다. 19세기 후반의 평양 일대를 그린 회화식 지도인 ‘기성전도’에는 대동문 옆 동포루 앞에 ‘냉면가(冷麵家)’가 표시돼 있다. 지금 옥류관과 그리 멀지 않은 대동강변 성 안쪽이다.

조선 후기부터 평양은 냉면의 본향이었다. 일제강점기 ‘평양상업조사’(1939년)에는 냉면 식당이 전체 음식점 578개 가운데 127개로 단일 업종으로는 압도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이런 역사적 전통에 더해 1960년대 이후 냉면은 북한 정권의 강력한 상징이 된다.

북한의 냉면 기사에는 김일성 주석이 자주 등장한다. 냉면은 직접 조리법을 지도한 수령이 사랑한 음식이자 ‘로동당 시대에 와서 더욱 빛을 내며 유명해진’(로동신문, 1995년 9월 21일), 북한의 식량 정치(food politics)의 중심에 있는 ‘민족의 대표 음식’이다.



평양냉면은 김치 담그기, 신선로와 함께 북한의 비물질 문화유산에 정식으로 등록돼 있다. 남북 정상회담 때 옥류관 냉면이 빠짐없이 등장하는 이유는 이런 전략적 위치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2018년 4월 판문점 남측 지역에서 있었던 3차 정상회담에서 북한의 옥류관 기계를 가져와 냉면을 먹은 것은 음식 정치의 전술적 측면에서 아쉬움이 남는다. 음식이 지닌 정치적 함의로도 그렇지만 전 세계가 지켜보는 최고의 기회에 대한민국의 음식을 알릴 기회를 놓쳤기 때문이다. 서울을 대표하는 설렁탕이나 좀 더 세련된 곰탕이 나왔으면 좋았을 것이다.

분단 이전에 평양에선 냉면이, 서울에선 설렁탕이 대표 외식이었다. 물론 당시 서울에도 냉면 가게가 많았다. 겨울이면 설렁탕집이 성업했는데 냉면집에서도 설렁탕을 팔았다. 여름에는 정반대 상황이 벌어졌다. 남북관계는 냉탕과 온탕을 오갈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지만 냉면이든 설렁탕이든 국물을 기본으로 하는 것은 한민족이 즐겨온 음식의 대표적 특징이다.

한민족만이 세계에서 유일하게 냉면 같은 차가운 국을 먹는다. 중국 옌지에도, 일본 모리오카)에도, 미국 LA에도, 한민족이 사는 곳에 차가운 냉면이 있고 뜨거운 고깃국이 있다. 같은 음식을 먹는 사람을 우리는 식구(食口)라 부른다. 그런 음식을 가지고 상대를 몰아붙이는 것은 식구의 도리가 아니다. 여름철 한복판에 들어선 지금, 시원한 냉면 한 그릇이 더욱 소중할 뿐이다.


박정배 / 음식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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