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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창 밖의 아들

김지영 / 변호사
김지영 /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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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중앙일보] 발행 2020/06/30 미주판 20면 기사입력 2020/06/29 17:58

“아들이 왔다. 아들이 왔나? 아들이 맞네. 지금인가? 아니 어제?” 엄마는 이렇게 생각하실 터이다.

엄마가 유리창 너머로 손을 흔드신다. 살포시 터지는 엄마의 환한 웃음, 꼭 달빛 아래 활짝 핀 하얀 박꽃 같다는 생각이 얼핏 든다. 엄마를 향해 한 발 내딛는다. 더 다가갈 수 없다. 세월이 “하~ 수상하니” 엄마와 아들 사이에 금줄이 쳐졌다.

엄마가 계신 요양원의 문은 굳게 닫혀 있다. 방문객은 모두 사절. 아들은 병원 바깥에서 유리 벽 너머 엄마를 본다. “엄마” 큰 소리로 불러 본다. “그랴, 왔어” 엄마 대답하신다. 외벽용 강화 유리를 통해 들리는 목소리, 꼭 고장 난 전화기 소리 같다. 안에 계신 엄마, 밖에 있는 아들, 외마디 고함 몇 번. 이런 것이 2020년 코로나 시대의 대화법이다.

구십이 가까워지면서, 엄마는 사람들의 이름표를 하나 하나 지우고 계신다. 아들과 같이 간 조카들을 헷갈려 하신다. 그래도 아들 하나만은 또렷이 알아보신다. “애들도 다 잘 있고?” 더 이상 애가 아닌 손자, 손녀도 아직은 기억하신다. 칠십 년 동안 엄마 생각 리스트의 첫 번째였을 아들, 그 아들 만은 잊지 마시길….

엄마에게 이제 시간은 별 의미가 없다. 어제 일인지 10년 전의 일인지 구별을 안 하시는 듯하다. 지금 만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그때 만났던 것을 지금 생각하고 있는지도 필요 없는 구분이다. 더구나 유리창 밖에 어른거리는 아들의 모습은 꿈 속에서 본 그림과 다를 바 없을 터이다. 아들의 존재는 그냥 엄마 마음 속의 느낌일 따름.

아들은 태평양을 건너서 갔다. LA의 집을 떠나 만 24시간 만에 엄마가 사시던 빈 아파트에 도착, 14일 동안 강요된 은거를 했다. 엄마가 계신 요양원과는 7.5 마일, 그래도 그동안은 갈 수 없었다. 다행히 전화를 하면 반갑게 받으신다. 첫 질문은 "워디여?” “공주 엄마 집” 이렇게 대답하면 또 물으신다. “거긴 왜?”

자가 격리가 끝나고 공주를 떠날 때까지 아들은 매일 엄마를 보러 간다. 판토마임-엄마와 아들은 눈빛으로만 만난다. 아들은 초조하고 안타깝다. 그래도 엄마는 항상 웃으신다. 아들이 어릴 때 본 보름달 아래 잿빛 초가 지붕 위에 정갈하고 의연하게 피어 있던 박꽃 같은 웃음. 박꽃의 꽃말이 기다림이라고.

엄마와 아들은 만나기나 한 것인가? ‘만나다’라는 우리 말은 ‘맞이하다(迎)’와 ‘나오다(出)’가 합쳐서 생긴 단어라고 한다. 한 사람은 맞이하고 또 한 사람은 다가오고 그래서 만남이 이루어진다. 맞이함과 다가옴이 같은 점을 찾지 못하는 상황도 만남이라 할 수 있을까?

엄마와 아들이 만나서 손을 잡고 한 끼 식사를 같이 할 수 있었던 그 일상이 그립다. 그 일상이 기다리면 다시 돌아오겠지.

아들은 LA집으로 돌아온다. “엄마 잘 왔어.” 아들이 전화한다. “워디여?” “여기 미국.” 엄마가 또 물으신다. “거긴 왜 갔어?” 하기는 ‘거기’ 미국에서 40년을 살아온 아들도 요새는 자신에게 똑 같은 질문을 자주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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