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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향계] 자전거가 지구를 살린다

이종호/편집2팀장

15년 전 중국 베이징에서의 아침 풍경을 나는 지금도 잊지 못한다. 칼칼한 새벽 바람을 가르던 수백 수천대의 자전거 행렬은 도도하고 장엄했다. 청년.학생.노인.아가씨 할 것 없이 누구나 페달을 밟아 대던 그 모습이야말로 신흥 중국의 용틀임이었다.

오래 전 가 본 일본의 이미지 또한 내게는 자전거로 남아있다. 도쿄.나고야.삿포로 어디든 거리는 깨끗했고 예쁜 자전거들이 동화처럼 구르고 있었다. 장바구니를 매단 주부들은 낯설면서 신기했고 짧은 치마를 입은채 바퀴를 굴리는 여학생들의 모습은 우습고도 신선했다.

요즘은 한국도 자전거 바람이 불고 있다. 지방 자치단체마다 전용도로 만들기다 공용 시스템 구축이다 해서 경쟁이 뜨겁다. 포항시는 매월 1일은 자전거 출근의 날로 정했다 하고 창원시는 50만 시민이 모두 자전거 보험에 들었다고 한다.

한 번 바람이 불면 금세 광풍이 되고 태풍이 되는 나라가 한국이다. 마라톤이 좋다 하면 사생결단 달려야 하고 걷기가 좋다 하면 온 국민이 걸어야 한다. 지금은 자전거가 그 짝이다. 이명박 정부는 대운하를 뚫고 그 물길 따라 자전거 길까지 만들겠다고 했다. 누가 알까. 이러다 대운하 따라 서울 부산을 자전거로만 내달릴 수도 있게 될 지.



자전거는 미국에서도 화두다. 타운마다 자전거의 날 자전거 주간 자전거의 달이 정해져 있고 갖가지 이벤트가 펼쳐진다. LA.패서디나.벤투라 카운티는 이번 주가 자전거 주간이다. 뉴욕도 5월이 자전거의 달이다. 자전거로 출퇴근하기 다이어트 경연 다큐 상영 퍼레이드 등 다채로운 행사가 쏟아진다.

그러나 한인들에겐 모두 남의 일 같다. 바쁘고 힘든 이민 생활에 한가하게 자전거 타령이나 하고 있을 처지가 아니어서 일 것이다. 먹고 사는 문제 아니면 거창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살피느라 미처 거기까지는 관심을 돌리지 못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제 환경과 에너지는 21세기 인류의 최대 숙제가 됐다. 이 문제를 풀지 않고는 지구의 미래는 없어 보인다. 자전거에 대한 호들갑스럽기까지 한 요즘의 관심은 모두 그 연장 선상에 있다.

미국 작가 존 라이언은 '지구를 살릴 7가지 불가사의한 물건'으로 콘돔.빨랫줄.무당벌레.선풍기.국수.공공도서관을 꼽았다. 그 맨 처음이 자전거다. 배기가스를 줄이고 대도시의 교통정체와 주차난을 해결할 가장 적절한 대안이라는 이유에서다.

자전거는 차가 못 가는 길도 가고 길이 아니어도 간다. 그렇지만 차와 달리 난폭하지 않고 세상을 겸손하게 바라보게 만든다.

자전거는 또한 삶의 속도를 조절해 주는 쉼표다. 내 몸의 지방과 탄수화물을 태워 두 바퀴를 굴리는 땀의 기쁨도 있다. 소설가 김훈이 '자전거 여행' 서문에서 내 몸과 길을 엔진의 매개 없이 아날로그 방식으로 연결시켜 주는 것을 자전거의 축복이라 한 것은 그래서일 것이다.

자동차가 아니면 한 발짝도 못 움직인다는 미국이다. 자전거를 탄다는 게 오히려 번거롭고 더 불편할 수도 있다. 그러나 레저라 여긴다면 못 탈 것도 없다.

이것이 트렌드라면 일부러 라도 한번쯤 안테나를 돌려 볼 일이다. 한인 커뮤니티 바깥에선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타인종은 어떻게들 사는지 가끔씩 눈을 돌려 볼 일이다. 구경도 가 보고 동참도 해 볼 일이다. 그게 미국 사는 재미다.

'삶이 지나치게 빠르다고 생각한다면 페달을 밟자. 사랑하는 아이에게 숨 쉴 공기를 주고 싶다면 페달을 밟자.'

자전거 천국이라는 네덜란드 남부의 작은 도시 델프트시가 내세운 구호가 새삼 가슴을 뛰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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