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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In] ‘가제타’의 책임

신문은 ‘밥값’이었다.

1556년 베네치아 시민들은 유럽 최초로 돈을 주고 월간지를 ‘구독’했다. 근대 신문의 효시가 된 유료 정기간행물의 이름은 '노티지에 스크리테(Notizie Scritte)’다. 영어로는 ‘Written Notices’니 우리말로 ‘통지문’ 정도로 해석할 수 있다.

듣지도 보지도 못한 ‘종이쪼가리’ 통지문이 팔릴 수 있었던 건 시대 배경에 있다. 베니치아는 14세기 지중해를 장악했던 무역대국이다. 역사학자들은 베네치아를 국가라기보다 현대의 기업에 종종 비유한다. 대부분의 시민들이 본업과 상관없이 사고파는 행위에 능숙한 상인이었다. 남보다 더 많은 이윤을 남기려면 소식에 빨라야 했다. 정보가 곧 돈이라는 깨달음이 기꺼이 통지문 구독에 지갑을 열게 했다.

이 통지문의 흔적은 460년이 지난 지금도 신문에 남아있다. 통지문에는 환율과 상품가격, 정치 동향, 떠도는 소문들이 담겼다. 특히 새로운 소식을 ‘누오베(Nuove)'라는 제목으로 소개했는데 이 말이 영국으로 건너가 ‘뉴스(News)’가 됐다.



가장 흥미로운 건 구독료다. 통지문의 가격은 ‘가제타(Gazetta)’라는 동전 한 닢이다. 당시 베네치아 상업중심지인 리알토 일대 식당에서 샐러드 한 접시 값이 1솔디(Soldi)였는데, 1가제타는 2솔디라고 한다. 샐러드 두 접시 정도의 가치가 유럽 최초의 월간지 구독료였던 셈이다. 가제타라는 동전의 상징성은 현재 언론 매체명으로 자주 쓰이는 ‘가제트(Gazette)’로도 남아있다.

한국 최초의 근대 신문은 노티지에 스크리테보다 327년 늦다. 1883년 10월 창간된 한성순보다. 열흘 간격으로 발행된 1부의 가격은 50문이었다. 지금 가치로는 2만5000원(약 20달러)정도다.

두 신문의 구독료 책정 기준을 알기는 어렵다. 다만 만드는 이들 입장에서 고민이 깊었을 것이라 짐작은 할 수 있다. 처음이라 비교 대상이 없어 ‘적당한 가격’을 가늠하기 어려웠을 테니 말이다. 비싸면 보지 않을 테고 싸면 이윤이 남지 않는다.

난제의 해결법은 아마도 독자 입장에서 생각해보지 않았을까 싶다. ‘나라면 이 신문을 얼마를 내고 볼까’라는 불편한 자문이다. 양 신문이 내린 결론은 비슷하다. 현재 물가 기준으로 구독료 가치는 한두 끼 밥값과 바꿀 수 있을 만큼이다. 그 금액의 가치는 사람마다 다를 수밖에 없다. 신문을 만드는 이들이 얻어야 할 것은, 밥값을 양보해도 밥값 이상의 무언가를 얻을 수 있다는 독자의 신뢰였다.

그 신뢰를 얻기 위한 노력은 수백 년이 지난 지금 더 치열하고 어렵다. 이윤과 독자 확보라는 두마리 토끼를 잡는 일은 대부분의 활자매체 언론사들에겐 꿈처럼 멀어지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힘든 상황에 악재는 더 많아졌다. 최근 유례없는 세계적 전염병에 언론들도 직격탄을 맞았다.

미국 최대 언론사인 뉴욕타임스의 2분기 광고수익은 반토막이 됐다. 지난달 23일 직원 68명을 해고한다고 발표했다. USA투데이의 모회사인 가넷(Gannett)은 지난 4월부터 산하 100여 개 언론매체 직원들에게 3개월간 무급휴가를 시행 중이다.

본사를 비롯한 한인 언론들도 그 폭풍을 비켜가지 못했다. 다들 허리띠를 졸라매고 새 길을 모색중이다. 본지도 독자들이 좀 더 쉽고 편하게 뉴스를 받아볼 수 있도록 새 틀을 만들고 있다. 효율적인 전달수단을 고민하다가 460년전 노티지에 스크리테까지 거슬러 올라갔다.

노티지에 스크리테는 손으로 꾹꾹 눌러쓴 필사 월간지다. 사회정의라는 거창한 사명보다 꾹꾹 눌러쓴 통지문의 구독료인 동전 한 닢을 되새김질 중이다.

신문의 밥값은 신뢰다.


정구현 선임기자 chung.koohyun@korea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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