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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TALK] 터널 속의 번스타인

김동민 / 뉴욕 클래시컬 플레이어스 음악감독
김동민 / 뉴욕 클래시컬 플레이어스 음악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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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중앙일보] 발행 2020/07/18 레저 7면 기사입력 2020/07/17 17:19

링컨센터 뉴하우스 극장과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사이에 놓인 건물이 하나 있다. 뉴욕 시티 발레, 메트 오페라, 뉴욕 필하모닉, 챔버뮤직 소사이어티 등을 포함하는 링컨센터 상주단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이곳은 다름 아닌 도서관이다. 뉴욕 공연예술 공립도서관(New York Public Library for the Performing Arts)으로 불리는 이곳은, 말 그대로 공연예술 쪽으로 특성화된 곳이다.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지난 몇 달간 문이 닫혀있지만, 각종 서적과 악보, 음반과 영상자료, 무대 세트, 대본과 편지, 행정문서, 정기간행물, 포스터와 프로그램 등과 같은 공연 예술 관련 자료들이 모여있다. 건물 안에는 전시관과 갤러리, 카페 그리고 1940년대 뉴욕 필하모닉의 지휘자였던 브루노 발터의 이름을 딴 강당까지 갖춰져 있다.

브루노 발터와 더불어 뉴욕 필하모닉과 인연을 맺었던 레너드 번스타인은 가장 미국적인 음악가이다. 그는 피아니스트였고, 작곡가였으며, 교육가였다. 그리고 정통을 자랑하는 유럽 악단의 자존심을 뛰어넘은 첫 번째 미국 지휘자였다.

2년 전 도서관과 그래미 박물관이 손잡고 미국 전역에 흩어져 있던 번스타인에 관한 자료들을 수집해 그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전시회를 열었다. 사진과 그림 약 150여 점을 비롯한 개인 소장품, 공부했던 자료, 친필 악보, 연주복, 편지, 졸업장, 여행용 가방과 가구 그리고 대표 음반과 영상자료들까지 거장이 걸어갔던 삶의 궤적을 엿볼 수 있었다.

매사추세츠 출신인 그는 어린 시절부터 모차르트에 비견된 천재였다. 라디오에서 들은 음악을 암기해 피아노로 연주했고, 하버드 대학에 진학해 음악이론을 공부했다. 이후 커티스 음악원에서 프리츠 라이너의 문하에서 지휘를 공부했다. 졸업과 함께 보스턴 심포니와 탱글우드 음악제에서 지휘자로서의 경력을 차근차근 쌓아가던 그는 브루노 발터에 의해 뉴욕 필하모닉의 부지휘자로 영입되었다.

작곡가로서의 번스타인의 이름이 대중들에게 알려지게 된 작품이 ‘웨스트 사이트 스토리’였다면, 뉴욕 필하모닉과 CBS 방송이 함께 했던 ‘청소년 음악회’는 지휘자로서의 그를 전국적인 스타로 각인시킨 계기가 되었다. 청소년에 특화된 최초의 음악회였고 이는 성공적으로 뿌리내렸다. 그의 명성은 유럽에까지 전해졌고 유수의 악단들과 수많은 명반을 쏟아냈다.

스타 바이올리니스트 조슈아 벨은 그를 회고하며 ‘콧대 높은 유럽의 악단으로부터 오랜 존경을 받았던 인물’이라고 말했고, 지휘자 마이클 틸슨 토마스는 ‘전통을 향한 깊은 존경을 가지고 모든 장르의 음악을 섭렵하고 사랑했던 천재’로 기억했다. 번스타인의 가장 중요한 업적 중 하나는 철저한 유럽 중심이었던 클래식 음악계에, ‘미국’이라는 갈래를 만들어 낸 공로가 있다는 점이다.

그는 1978년 남미 여행 중에 걸린 전염병 때문에 꽤 오랫동안 치료에 매달려야 했다. 회복 후에도 그의 겉모습이 예전과 달라졌을 정도로 길고 쉽지 않은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그러나 그는 투병 이후 오히려 작품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고 말했다. 피할 수 없는 어려움을 만났을 때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한다.

번스타인은 지휘만큼이나 피아노 연주를 원했다. 다수의 교향곡을 작곡했지만, 브로드웨이 뮤지컬이나 할리우드 영화음악 작곡에도 뜻이 깊었다. 모든 것을 끌어안은 전천후 음악가였던 그의 삶을 새삼스럽게 다시 떠올리며,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 속을 걸어가는 우리들의 오늘을 교차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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