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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비움이 가져다 주는 ‘맑은 복’

“제가 산중에서 혼자 지내면서도 기가 죽지 않고 나날이 새로워지려고 하는 것은 무엇인가 내 뒤에서 내 자신을 받쳐주기 때문에 그렇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내 둘레에 무엇이 있는가. 몇 권의 책이 있습니다. 출출하거나 무료해지려고 할 때 마시는 차가 있습니다. 딱딱하고 굳어지려는 삶에 탄력을 주는 음악이 있습니다. 내 일손을 기다리는 채소밭이 있습니다. 고마운 일입니다. 여러분들도 여러분들의 삶을 녹슬지 않게 받쳐주고 있는, 맑은 복이 무엇인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 말씀은 법정 스님이 생전에 하신 법문이다. 요즘 나는 이 말씀을 틈나는 대로 거듭해서 들으면서 내가 가진 맑은 복에 대해 생각해보곤 한다.

십수 년만에 이사를 하느라 몸살을 앓았다. 코로나19 때문에 집을 내놓는 일이나 집을 새로 알아보는 일이 쉽지 않았다. 그러나 이런 일보다 더 큰 고민은 그동안 집 내부에 있었던 물건들을 갖고 가지 못하거나 혹은 줄여서 갖고 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지인들은 충고하길, 이사는 불필요한 것을 과감하게 줄이는 일이라고 일러주었다. 그러나 오랜 세월 함께 살다보니 정이 들지 않은 것이 없었다. 물론 정이 들었더라도 그것을 근년에 한 번이라도 사용하거나 먼지를 털어낸 적도 없었으니 기실은 하나의 공간에 방치되어 있었던 셈이었다. 심지어 이삿짐에 포함시켰다가 새로운 집에 들어간 후에 다시 버리게 된 물건들도 상당했다.

많은 것을 갖고 살았다는 생각이 절로 들지 않을 수 없었다. 소유의 목록도 그러하거니와 삶 자체도 정신없이, 어찌할 줄을 몰라 갈팡질팡하면서, 서두르면서 살았다는 생각도 함께 들었다. 물건이든 일이든 붙잡고만 살고 있었던 것이었다. 오직 물건들에 휩싸였을 뿐, 나를 받쳐주고 있는 맑은 복이 무엇인지를 가늠하지는 않았던 것이었다.



얼마 전 불교학자인 한 선생님으로부터 꽤 오래전 당신의 일화를 들었다. 경봉 스님을 가끔 찾아뵙고 이런 저런 말씀을 여쭸는데 그날도 “찾아뵙고 싶은 마음은 크지만 자주 오지를 못합니다”라고 인사를 드렸더니 경봉스님이 “자네는 뭐가 그리 바쁜가?"라고 한 말씀하셨다고 했다.

그날 다시 서울로 올라오는 내내 그 말씀이 머릿속에 맴돌았다고 하셨다. 그러고 보면 나도 그 언젠가 내가 모시던 스님을 뵈러 간 적이 있었는데 “빈방 내줄테니 하룻밤 자고 가시게”라고 하신 말씀을 따르지 못하고 급히 당일에 서울로 올라온 적이 있었다. 하룻밤 자고 오지 못할 정도로 촌각을 다투는 일도 벌어지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갖기 경쟁을 하듯 살기 때문에 버리지도 두지도 못하는 형편에 놓이게 되고, 또 맹렬한 무엇에 쫓기듯이 살게 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 내가 평소에 존경하는 분의 시상식이 있어서 잠깐 들른 적이 있었다. 그 선생님께서는 수상소감으로 이렇게 말씀하셨다. “장락(長樂)과 장춘(長春)은 없어요. 오래 가는 즐거움과 늘 봄날만 같은 때는 없어요. 다만 오늘의 시간이 첫날이라고 생각하고 살았으면 해요.” 그리고 최근에 펴낸 산문집에서는 ‘장자’에 들어 있는 문장인 “인생이란 문틈으로 얼핏 스쳐 빠르게 지나가는 하얀 망아지를 보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말씀을 인용하셨다.

삶을 사는 일은 무엇일까를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물건 갖기 욕심을 줄이고, 영혼을 아름답고 근사하게 가꾸고, 사랑과 연민의 마음을 넓히고, 다른 사람에게 귀를 기울이는 일이 아닐까 싶다. 이사를 하는 내내 내가 챙긴 물건은 바로 이 ‘마음’이라는 것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이제서야 내가 가진 맑은 복에 대해 생각해본다.


문태준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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