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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주머니, 소매치기, 낭중지추

남편은 상의의 왼편에 주머니가 꼭 달려있는 옷을 원한다. 영수증이나 펜, 메모 등을 넣어야 해서 필요하다며 강조했다. 그걸 귓등으로 듣고 주머니 없는 셔츠를 몇 번 샀더니 나중엔 비싼 새 옷으로 차를 닦으며 퍼포먼스를 했다. 그 성질 더러움이 무서워 이젠 꼭 지킨다.

혹시 한국에서 친정엄마나 시누이들이 선물로 부쳐주는 옷엔 내가 주머니를 달아 입힌다. 딴 천의 주머니를 단 옷이 내가 보기엔 웃겨도 본인이 원하니 할 수 없는 일이다. 아들아이 말이 요즘 그런 주머니 단 옷이 유행이라니 격세지감이기도 하다. 실제로 아들이 입고 있는 티셔츠가 영 딴판의 주머니가 붙은 옷이었다.

주머니는 물건을 담기 위해 만들어진 헝겊과 헝겊 사이 하나의 공간이다. 손에 휴대하기 불편한 물건을 담는 용도로 사용된다. 가방 혹은 의류에 헝겊을 달거나 덧대어 만든 주머니를 호주머니라고 하는데 북방에서 왔다고 ‘호(胡)’주머니라고 부르게 되었다. 우리의 전통 한복엔 주머니가 달려있지 않다.

한복엔 복주머니, 오방낭 등과 같이 옷에 달리지 않은 별개의 작은 자루를 허리에 차거나 들고 다녔다. 주머니 대신 한복의 넓은 소매가 주머니 역할을 하는 때가 많았다. 남의 돈을 소매에서 슬쩍 꺼내는 좀도둑을 ‘소매치기’로 부르는 것이 여기에서 유래했다고 들었다.



영어권에선 ‘pickpocket(소매치기)’에 반대되는 의미로 ‘putpocket’이라는 말을 쓴다. 선한 의도로 기부를 한다는 점 때문에 ‘소매넣기’라고 불린다니 포켓의 용도가 참으로 다양하기도 하다.

한자로는 주머니 ‘낭(囊)’을 쓴다. 배낭(背囊), 침낭(寢囊)은 자루의 성격이 크다. 이 한자를 사용한 대표적인 사자성어로 ‘낭중지추(囊中之錐)’가 있다. 주머니 속의 송곳으로, 재능을 가진 사람은 자연스레 눈에 띄게 된다는 말이다. 반대의 뜻으로 ‘모수자천(毛遂自薦)’이 있다. 모수가 자기 자신을 천거했다는 의미로, 스스로 자신을 추천하거나 자진해서 나서는 경우를 가리키는 말이다.

치열한 경쟁의 현실에서 낭중지추의 신념으로 겸양의 미덕만을 고집하다가는 성공에 이르는 기회를 잡을 수 없으니, 때와 장소에 따라서는 모수자천의 적극성도 필요하다고 하겠다. 어느 것이 옳다 단정 짓기는 어려운 일이다.

손바닥 만한 천 한 조각 때문에 이야기가 소매치기, 낭중지추까지 흘러왔다. 이 정도의 '썰'이면 소설을 써도 되겠다 싶다. 시간이 남아도니 해본 공상이다.

오늘도 천 조각으로 네모 만들어 남편 옷에 붙인다. 주머니 철철 넘치게 돈을 벌어오라는 염원을 담아 크게 하나 척 붙였다. 코로나19 팬데믹의 불황으로 주머니를 뒤집어도 먼지만 날리는 요즈음이다.


이정아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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