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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 광장] 자연에서 찾은 여유

코비드19와 골반골절 수술로 집에만 있은 지 넉 달이 지났다. 망설이며 은퇴하지 못하는 나를 코로나 사태가 집에 묶어 놓았다. 45년 직장생활에 젖어있는 탓에 집안에서도 무언가를 만들어 일해야 한다. 아침엔 남편과 하루의 일과를 정한 후, 하루가 바쁘고 빠르게 지나가야 오늘도 잘 살았다고 직성이 풀린다.

맨 처음 목표는 텃밭을 만드는 것이다. 마당의 잔디를 뒤엎어 옥토로 만들어 채소를 재배하기로 했다. 밭을 갈고 이랑을 만들고 거름을 섞어 질 좋은 성분의 토양을 만든다. 씨앗을 뿌린 후 열심히 물을 준다. 아침 공기가 흔들리며 이슬이 내린 땅은 신선한 기운으로 기쁨을 준다. 햇살이 가득 차니 땅이 호흡하기 시작한다. 지렁이가 꿈틀거리며 딱딱한 땅의 표면을 연다. 사이사이로 새싹이 얼굴을 내민다. 하루가 다르게 키가 자라고 줄기가 굵어진다. 잡초를 없애주고 가지치기로 열매에 충분한 영양분을 공급한다. 가느다란 넝쿨손을 붙잡아 장대를 탈 수 있도록 돕는다. 작은 꽃이 핀다. 벌들이 분주하게 드나든 후 열매가 맺힌다. 그 결과는 실로 놀랍다. 성공이다. 농사를 처음 지어보는 서울 촌놈은 놀라 열린 입을 다물기 힘들다. 상추, 풋배추, 열무, 시금치, 근대뿐만 아니라 토마토, 가지, 고추, 오이, 호박 열매를 수확한다.

유기농 채소를 자급자족한다는 의미 이상의 것이다. 물론 물이 귀한 이곳에서 수돗물 요금이 마켓에서 손쉽게 사오는 채소보다 더 많을 수도 있지만, 반면 얻는 것이 있다.

이젠 제법 농사꾼에 가까이 다가간다. 농부의 땀 맺힌 수고와 마음을 이해한다. 작은 씨앗의 발아에 감탄하고 맺히는 꽃과 열매에 황홀해한다. 땅이 품고 거두는 정직한 소출이 경이롭다. 노력 후에 대가로 주어지는 결실을 보며 감사할 뿐이다. 값없이 받은 햇빛과 산소도 있었음을 깨닫는다.



언젠가 외딴 농촌이나 어촌에서 음식의 재료를 손수 마련하여 먹을거리를 종일 만드는 ‘삼시 세끼’라는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다. 현실성 없이 여가를 즐기는 나와는 관계없는 프로그램이라 생각했는데 이제 내가 그 주인공이 된 셈이다. 가꾸고 수확하며 기쁨을 맛보고 그로 인해 건강한 생활과 몸을 유지할 수 있다면 삼식이나 삼순이라도 좋다.

캐낸 채소를 나무 아래 앉아 다듬는다. 시간에 구애받지 않은 채. 마음이 편안해지고 여유가 생긴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그저 좋기만 한 시간이다. 문을 여닫기까지 내가 아니면 안 될 줄 알았던 직장도 잘 돌아가는데, 왜 그토록 애타며 뛰었던가. 무념무상의 시간이 다른 가치를 창조할 줄이야. 이렇듯 어려운 시기를 이겨낼 것이다. 초록빛 여유에서 얻는 선물은 크다.


이희숙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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