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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우리말] 발 이야기

두 발로 걷는다는 말은 인간을 표상하는 말입니다. 포유류 중에서 인간의 특징을 설명할 때 빠지지 않는 게, 두 발로 걷는 것, 즉 직립보행입니다. 발은 사람에게 이동의 수단입니다. 다른 수단으로 공간을 옮겨 다니는 것도 가능하겠지만, 아무래도 인간의 가장 중요한 이동은 발이 주인공입니다. 물구나무를 서서 걷는 것은 묘기(妙技)에 해당할 정도이고, 아가들이 ‘배밀이’를 하는 것은 안쓰럽기까지 합니다. 배밀이가 지나면 아가들도 네발로 걷습니다. 우리는 그 모습을 기어 다닌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마침내 두 발로 서게 되죠. 그리고 그때쯤 말을 시작합니다.

발이 공간의 이동을 나타내기 때문에 발은 행동의 의미로도 사용됩니다. 발이 빠르다는 말은 남보다 움직임이 빠르다는 말입니다. 이는 종종 판단을 행동으로 옮기는 속도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발 빠르게’라는 말은 생각을 실천하는 속도입니다. 물론 발이 빠른 게 꼭 좋은 것은 아닙니다. 발이 빨라서 실수를 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아무래도 발은 머리나 감정보다는 행동이 앞서는 경우를 보여줍니다.

발이 넓다는 말은 내가 미치는 범위를 의미합니다. 내가 가는 곳이 많으니 아는 사람도 많습니다. 발이 넓어지려면 부지런히 움직여야 합니다. 돌아다니는 것을 싫어하고, 사람 만나는 것을 귀찮아하는데 발이 넓어질 리 만무합니다. 다만 발이 넓은 게 꼭 좋은 것은 아니라는 점도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아는 사람은 많은데 제대로 아는 사람은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찌 보면 그저 얼굴만 아는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그야말로 ‘안면(顔面)’이 있는 겁니다.

발은 부정적인 느낌으로도 쓰입니다. 아마도 내 발이 가는 곳이 다 좋은 곳은 아니어서 하는 말일 겁니다. ‘발을 담그다’라는 말은 어떤 일을 하게 된다는 의미로 쓰이는데 꼭 그런 것은 아니지만 부정적인 느낌이 강합니다. 나쁜 일이나 범죄의 경우에 발을 담그게 됩니다. 그러면 발이 더러워집니다. 원래도 발은 사람의 신체에서 가장 더럽게 느껴지는 곳이기도 합니다. 냄새도 나는 곳이지요. 물론 냄새의 이유는 열심히 몸을 움직이려 노력했기 때문일 겁니다. 그래도 나쁜 짓을 끝낼 때는 발을 씻는다고는 안 하고, 손을 씻는다고 표현하네요. 발의 입장에서는 다행인 표현입니다.(일본어에서는 발을 씻는다고 합니다.)



발을 더럽다고 생각해서 ‘발끝의 때’, ‘발밑에도 못 미친다’ 등의 부정적인 표현에도 쓰입니다. 그래서 어떤 나라에서는 발바닥을 상대에게 보이는 것이 상대를 모욕하는 행위가 되기도 합니다. 의자에 앉을 때 항상 주의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들의 문화를 모를 때 우리는 자연스럽게 발바닥을 상대 쪽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모르는 사이에 모욕 행위를 하고 있는 겁니다. 발이 모욕이 되기에 종종은 신발을 상대에게 던지는 것도 참을 수 없는 모욕이 됩니다.

발은 더럽고 가장 낮은 곳을 의미하기에 ‘발아래’는 복종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상대의 발아래 절을 하는 것도 자신을 낮추는 행위입니다. 왕이나 권력자 앞에서라면 복종이겠지만 종교에서라면 기쁜 감사이기도 합니다. 내가 낮다는 것, 상대가 귀하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종교에서 깊은 절을 하는 것은 그 자체가 깨달음입니다.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는 예수님의 모습은 경건함과 감사의 마음을 보여줍니다.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몸소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수고하여 지친 힘든 발을 정성껏 씻어주면서 우리 모두가 귀하다는 것을 알고, 서로가 서로에게 감사하게 됩니다. 부디 발을 모욕의 도구로 사용하지 않기 바랍니다. 발은 움직임의 상징이고 수고의 상징입니다. 그래서 발은 우리에게 깨달음을 줍니다. 발을 통해 감사의 마음도 깊어지기 바랍니다.

군대에서 휴가를 나온 아들이 부대의 전통이라며 세족식(洗足式)을 이야기했습니다. 첫 휴가 때 부모님의 발을 씻어드리고 감사의 편지를 낭독하는 전통이 있다는 겁니다. 부모 자식 간에 약간은 서로 쑥스러운 일이지만 좋은 전통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기분 좋게 아들에게 발을 맡겼습니다. 간지러웠지만 따뜻한 추억이 되었습니다.


조현용 / 경희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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