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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엠마’라는 이름의 두 여자

임신한 막내딸이 곧 태어날 아기 이름을 뭐라고 지을까 가족 단톡방에 올렸다. 딸 셋과 사위들, 그리고 손자들까지 모두 참여하여 11개의 이름이 올라왔다. 여러 이름 가운데 아홉 살 손자가 써낸 ‘엠마’로 결정이 났다. 다들 그 이름이 좋다고 하였다. 그렇지만 나는 엠마라는 이름이 그리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왜냐하면 구스타브 플로베르의 소설 ‘마담 보바리’의 주인공 엠마가 갑자기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엠마는 허영과 불륜으로 자신을 망친 이름이라고 얼토당토않은 이유를 댈 수는 없었다. 요즘 세상에 더군다나 최고 첨단 선진국에 살면서 그런 황당하고 케케묵은 말은 더더욱 할 수 없었다. 남편 또한 ‘아직도 미신을 못 벗어나냐’며 분명 눈초리 날릴 것은 안 봐도 뻔했다.

보바리 부인 엠마는 젊고 아름다운 여인이다. 그녀는 자신의 상상과는 달리 결혼 생활이 권태로워지자 다른 삶을 갈구하게 되고 결국엔 성실한 의사인 남편을 무시하고 외간 남자를 만난다. 이런 퇴폐적 만남은 끝내 그녀를 자살로까지 이끌고 자신의 삶은 물론 딸과 남편의 인생까지 망쳐놓는다. 이런 비극의 주인공 이름이 햇살 같은 내 손녀에게 절대로 적합할 수 없었다. 그렇지만 입을 꼭 다물고 있었다.

입 다물고 있길 참 잘했다. 몇 초 후에 금방 또 다른 엠마가 번쩍 떠올랐기 때문이다. 바로 제인 오스틴이 쓴 ‘엠마’였다. 천만다행이었다. 이 소설 속 엠마는 보바리 부인과는 전혀 다른 품성을 지녔다. 그녀는 영국의 가문 있는 부잣집 딸이면서 예쁘고 지적이고 교양까지 갖춘 그야말로 흠잡을 데 없는 사랑스러운 아가씨다.



그녀는 세상에 유익이 되는 일을 한다. 서로 어울리는 사람을 찾아 인연을 맺어주는가 하면 연인 사이에서 일어나는 욕망과 오해를 사랑의 탐구라는 형식으로 상큼하고 발랄하게 해결해주기도 한다. 이런 엠마라면 손녀의 이름으로 전혀 손색이 없었다. 그제야 환한 마음으로 “이름이 참 예쁘다”고 카톡방에 올렸다. 나만 아무 말이 없어서 은근 걸렸는지 막내딸이 반가워하며 대뜸 “생큐 맘”과 함께 빨간 하트가 눈과 입에 붙은 이모티콘을 보내왔다. 딸이 좋아하는 걸 보니 나도 기뻤다.

‘마담 보바리(1857)’를 쓴 구스타브 플로베르는 19세기 후반의 프랑스 대표 소설가이다. 그가 처음으로 발표한 이 소설은 그를 프랑스 사실주의 문학의 대표작가로 올라놓았을 뿐만 아니라 이 작품으로 프랑스 최고의 작가가 된다.

‘엠마’를 쓴 제인 오스틴 역시 영국이 자랑하는 최고 작가다. 가난하다는 이유로 결혼이 무산되는 아픔을 겪은 이후 1813년 작품 ‘오만과 편견’를 발표한다. 그리고 평생 독신녀로 살다가 마흔 살에 ‘엠마’를 내놓는다.

플로베르와 제인 오스틴은 19세기 유명한 작가로서 자신들의 소설 속에 엠마를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나는 제인 오스틴의 주인공을 손녀의 이름으로 선택했다. 하마터면 구식 노인네 소리를 들을 뻔했다. 나이가 들면 내 생각은 한 걸음 뒤로 물러나야 한다. 그런 다음 생각을 살짝 바꾸면 모두가 편안해진다. 내 손녀 엠마는 외할머니가 “참 예쁘다”고 말해준 것처럼 자신의 이름을 좋아할 것이다. 그리고 예쁘고 착하게 잘 자랄 것이다.


정국희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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