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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섭리…보이지 않아서 보이는 역설

[LA중앙일보] 발행 2020/07/28 종교 14면 기사입력 2020/07/27 18:18

복음주의 신학자 J.I 패커의 생과 사

기독교 복음주의의 큰별 J.I 패커 박사가 지난 17일 세상을 떠났다. 패커 박사 오른쪽 이마에 움푹 패인 흉터는 어린 시절 발생한 교통 사고 때문에 생겨났다. [리젠트 칼리지 제공]

기독교 복음주의의 큰별 J.I 패커 박사가 지난 17일 세상을 떠났다. 패커 박사 오른쪽 이마에 움푹 패인 흉터는 어린 시절 발생한 교통 사고 때문에 생겨났다. [리젠트 칼리지 제공]

죽음 다르게 바라봤던 패커
"지혜, 신의 섭리 인정하는 것"

난해한 신학, 대중의 언어로
그의 유산은 남은 이의 숙제


복음주의의 큰 별이 졌다.

영국 성공회 출신의 신학자 J.I 패커(James Innel Packer) 박사가 지난 17일 영원히 눈을 감았다.

<본지 7월21일자 A-16면>

그의 삶 전체가 기독교에 미친 영향은 지대하다. 그만큼 기독교 복음주의권에서 패커 박사의 자리는 컸다. 그의 죽음은 개인의 영성과 복음주의의 흐름을 반추하게 한다.

패커 박사는 자신의 영향력, 위치에 비해 늘 겸손했다. 존재감을 드러내기보다 신학자로서 제 역할에 충실했다.

이미 그는 4년 전부터 앞을 볼 수 없었다. 황반변성으로 시력을 잃어서다. 천국을 향한 여정이 끝무렵이라는 것을 직감해서일까. 패커 박사는 그때 "(시력을 잃은 것은) 하늘이 알려주는 일종의 암시"라고 말했다.

그는 영원히 눈을 감게 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덤덤하게 받아들였다. 아니 되레 평온했다. 그의 한마디는 많은 이에게 삶의 본질을 돌아보게 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보이는 것'을 말했다. 신앙인으로서 죽음에 대한 고찰이다.

보이지 않아서 보이는 역설은 질문한다. 인생은 유한하다. 이 땅에서 진정 시력을 잃은 건 누구인가.

패커 박사는 그 당시 "더 이상 앞을 볼 수 없지만, 어두움 속에서 다른 것들을 더 선명히 보게 됐다"며 "그 앞에서 나는 신(하나님)의 목적과 섭리에 더욱 집중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죽음을 다르게 바라봤다. 그래서 겸허했다. 죽는다는 건 끝으로 가는 여정이 아닌, "신이 인간을 더 나은 세계로 이끌기 위해 준비하는 방법"이라 정의했다.

패커 박사는 그때부터 유한의 삶을 정리해나갔다. 차분히 지난 인생을 돌아봤다. 그는 신학자다. 욥기 1장21절을 예로 들며 인간과 신의 관계를 설명한 바 있다.

패커 박사는 "주신 이도, 거두신 이도 '그 분(God)'이다. 인간이 삶의 모든 것을 주관할 수 있다는 생각은 어리석은 것"이라며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지혜는 신의 섭리를 겸손히 인정하는 자세"라고 했다.

패커 박사는 영국 글로스터 지역 출신이다. 가정 형편은 좋지 못했다. 그는 유약했다. 어린 시절 괴롭힘도 많이 당했다. 7살 때였다. 교통 사고로 머리 부분에 흉터가 생겼다. 패커 박사의 오른쪽 이마에 움푹 패인 흉터는 그때 생긴 거다. 그는 평생 그 상처를 지니고 살았다.

그럼에도, 패커 박사는 "어린 시절 그런 일이 나에게 발생한 것을 두고 한 번도 불평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만큼 인생의 섭리가 인간이 아닌 '신'에게 속한 것임을 인정하며 살았던 셈이다.

인간은 스스로 태어난 존재가 아니다. 삶의 시작을 본인이 선택하지 못한다. 그럴 수 있는 인간은 아무도 없다.

처음을 선택할 수 없다는 것은 인생이 끝나는 시점 역시 모른다는 것을 반증한다. 마지막을 정확히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래서 탄생과 죽음은 하늘에 속한 신비다. 신의 섭리에 해당하는 영역이다.

기독교는 처음과 마지막의 의미를 그 지점에서 고찰한다. 패커 박사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의미를 묵상했다.

사람에겐 자꾸만 가시적인 세속의 것을 좇고자 하는 습성이 존재한다. 그런 인간에게 불가항력의 죽음은 무한할 것만 같던 세속의 가치가 유한함을 알려준다. 죽음을 앞둔 패커 박사의 한마디는 기독교계에 그렇게 울림을 전했다.

그는 삶의 끝자락에서 평소 삶에서 보이지 않던 가치를 더욱 선명하게 보고자 했다. 그는 항상 신과의 교류를 강조했다. 패커 박사가 늘 "하나님을 알아야 한다"고 역설했던 이유다.

그가 쓴 '하나님을 아는 지식(Knowing Godㆍ1973년 출간)'은 세계적으로 100만 부 이상 인쇄됐다. 고차적인 학자임에도 난해한 신학의 언어를 대중이 이해하는 언어로 풀어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는 일평생 기독교의 본질을 주창했다. 온갖 형태의 기독교가 난무할수록 목소리를 냈다.

21세기 들어 '기독교(Christianity)'에는 갖가지 수식어가 붙기 시작했다. 다원주의, 포스트포더니즘 등의 기조와 맞물려 기독교의 형태를 새롭게 규정하는 시도가 많았다. 신학에도 다양한 유형이 생겨났다. 세간에서는 이를 통틀어 '자유주의 신학'이라 했다.

패커 박사는 그때마다 기독교의 근간이 흔들리는 것을 막아섰다. 신학의 표피에서 심층으로 안내하길 즐겼다. 논쟁은 밀도 있는 논리로 대응했다. 묵직한 변증과 논평은 힘이 있었다.

성경의 권위와 무오성(infallibility), 삼위일체, 이신칭의 교리 등은 그가 강력하게 설파했던 부분이다. 패커 박사가 수도 없이 낸 논문, 기고문, 저서 등은 복음주의 교리의 젖줄로까지 여겨진다. 그가 남긴 것들은 유산이다. 때문에 소모를 넘어서야 한다. 계승과 발전으로 나아가야 한다.

패커 박사는 오늘날 복음주의의 보루로 불렸다. 혹자는 이 시대의 '마지막 청교도'라 했다.

그의 죽음이 질문한다. 과연 '마지막'이 돼야 하는가. 어쩌면 패커 박사 역시 정작 그 호칭을 원하지 않았을 수 있다.

기독교 복음주의가 시대적으로 위기에 처한 건 자명하다. 마침표가 찍힐 것인가. 남은 이들에겐 그 부분이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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