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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속 뉴스] 대통령은 '죽을 수' 없다

김석하/탐사보도 데스크

실존하는 인간에게 '죽음'은 없다. 살아 있을 때는 죽음의 실체에 대해 전혀 알 수 없고 죽은 후에는 죽었다는 자체를 아예 인식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다만 인간에게는 '죽음에 대한 공포'만이 있을 뿐이다. 우리가 죽음이라고 부르는 것은 실제로는 그 공포다.

앙드레 말로가 쓴 '인간의 조건'은 1927년 혁명의 와중에 있는 중국을 무대로 한다. 국민당과 공산당의 투쟁 폭동 쿠데타 등이 숨가쁘게 펼쳐진다.

이 책의 절정은 국민당에게 잡혀서 고문을 당하던 공산당 비밀요원 카토우가 곧 증기 기관차 화통에 던저져 고통스럽게 죽게 될 두 중국인 죄수에게 자신의 자살용 청산가리 캡슐을 몰래 건네주는 장면이다. 그리곤 자신이 대신 기관차 화통으로 들어가 '긴 죽음'을 맞는다. 치욕스런 고문과 죽음(죽음에 대한 공포)에 맞선 용기였다. 책 내용에는 없지만 카토우가 겁에 질린 중국인 죄수를 보면서 주머니에 있는 청산가리 캡슐을 만졌을 장면이 떠오른다. '주느냐 마느냐' 한 인간에게는 가장 숭고한 찰나였을 것이다.

서거한 노무현 전 대통령은 '주지 않는 쪽'을 선택했다. 난 노 전 대통령이 비록 고통스럽더라도 '카토우의 긴 죽음'을 택했어야 했다고 본다. 죽음의 공포와도 같았을 치욕(검찰 조사)에 맞섰어야 했다. 어쨌든 명명백백한 결론을 낼 것으로 생각했다. 그의 정치적 신념을 좋아하든 싫어하든 그는 나름 용기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노 전 대통령의 사망 소식에 모두가 놀랐다. 왜 놀랐는가. 상식적으로나 이성적으로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유서에 적은 '운명이다. 화장해라. 작은 비석 하나만 남겨라'는 낭만주의자의 수사학이지 한 나라를 책임졌던 대통령으로서 마지막에 남길 말은 아니다. 아무리 외롭고 힘들어도 그가 그토록 사랑했던 '국민'에게 몇 마디는 남겼어야 하지 않았나. '국민 여러분 사랑합니다' 정도는 있었어야 했다.

그를 열렬히 지지하는 세력과 그를 열렬히 싫어하는 세력 사이에 노 전 대통령의 시대적 소명이 있었다. 보수와 진보라는 이념의 대립 있는 자와 없는 자의 대립이라는 '상하좌우'의 교차점에 서 있었기 때문이다. 유서에 실린 말처럼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이라면 살아서 책임질 것은 지고 항변할 것은 하면서 이 사회의 대척점을 좁히는데 모든 것을 쏟았어야 했다. 인간은 죽음을 선택할 수 있지만 '대통령'은 결코 죽음을 선택할 수 없다.

투신 직전 노 전 대통령이 "담배 있나"라고 물었고 경호원이 "없습니다"라고 말했다는 이야기로 인해 분향소에는 조객들이 올린 담배가 쌓여간다고 한다.

경호원이 투신 당시 상황에 대해 일부 거짓 진술을 한 것으로 드러났지만 담배 이야기는 사실인 듯하다. 담배 맛을 아는 사람은 그 당시 노 전 대통령의 심정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어떤 이는 마지막 가는 길에 그깟 담배 한 대를 못 핀 것이 불쌍하다고 하고 다른 이는 그 때 담배 한 개비를 피웠다면 이 같은 비극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한다.

LA시간으로 내일 밤 장례식이 치러진다. 많은 사람들은 장례식 이후 분향소에 올려진 담뱃불이 촛불이 되고 사회가 또 다시 혼란스러워질 것을 우려한다. 슬프고 답답하고 걱정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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