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s Angeles

75.0°

2020.08.03(Mon)

철조망 뚫고 월북…軍, 매일 순찰하면서도 일주일 넘게 몰랐다

[한국 중앙일보] 기사입력 2020/07/31 13:03

헤엄 장면 등 5차례, 뭍에 오른 뒤 2차례
흐릿해 구분 힘들거나 순식간이라 간과
배수로 철조망 훼손은 북한 보도 후 파악

지난 26일 북한이 재입북했다고 공개한 탈북민 김모(24)씨의 월북 과정이 군의 감시장비에 그대로 촬영된 것으로 드러났다. 그런데도 정경두 국방부 장관은 북한의 관영 매체 보도가 나간 뒤에서야 김씨의 월북을 알았다. 김씨가 월북한 18일부터 26일까지 8일동안 군은 '깜깜이' 상태였다.

이후 군은 대대적인 검열에 들어가 감시장비를 확인해 뒤늦게 해당 영상을 찾아냈다. 군 당국의 경계 태세가 얼마나 허술한지 보여주는 사례다.



탈북민 김모씨(24)가 빠져나갔을 것으로 추정되는 인천시 강화군 강화읍 연곳리 연미정 인근 배수로. 둥그런 형태의 윤형 철조망은 훼손된 상태다. [연합뉴스]






이는 31일 합동참모본부 전비태세검열단이 발표한 강화 지역 월북 사건 조사 결과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군 당국은 김씨가 한강을 건너 북한으로 가는 과정을 다섯 차례 포착했고, 북한 땅에 오르면서 인근 마을로 가는 장면을 두 차례 찍었다. 그런데도 어떻게 김씨를 놓쳤을까.


①안일한 초병
김씨가 월북 경로로 사용한 강화도 월미곶의 정자인 연미정에 도착한 시간은 지난 18일 오전 2시 23분쯤이었다. 인근 소초 CCTV 영상에 따르면 김씨는 곧바로 연미정으로 향했다. 당시 깊은 밤이었기 때문에 200m 떨어진 민간인통제출입선(민통선) 검문소에서도 택시 불빛이 뚜렷하게 보였다고 한다.

그러나 검문소 초병은 김씨를 간과했다. 그는 합참 조사에서 “가끔 마을 주민이 그 시간대 택시에서 내리곤 해 김씨도 그런 줄 알았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군 관계자는 “연미정은 북한과 한강을 사이에 두고 맞닿은 곳이기 때문에 김씨를 검문하거나 상부에 보고하는 등 적극적으로 행동했어야 했다”고 말했다.

②허술한 관리
합참은 김씨가 택시에서 내린 지 23분 후인 2시 46분쯤 연미정 배수로를 나와 한강 물로 뛰어들었다고 설명했다. 가로 1.84m, 세로 1.76m, 길이 5.5m의 배수로엔 10개의 수직 침투 저지봉(철근 장애물)과 바퀴 모양의 철조망이 이중으로 가로막았다. 그러나 CCTV는 설치되지 않았다.

박한기 합참의장은 지난 28일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김씨가 163㎝, 54㎏의 왜소한 체격이어서 탈출이 수월했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박 의장의 설명과 달리 저지봉ㆍ철조망 등 배수로 장애물은 오랫동안 제대로 관리가 안 돼 틈이 크게 벌어지거나 훼손된 상태였다.

저지봉의 간격은 35∼40㎝ 정도까지 벌어져 있었다고 합참은 전했다. 김씨가 짧은 시간 안에 별 어려움 없이 배수로를 빠져나갈 수 있었던 이유다.

더 큰 문제는 배수로 장애물이 엉망이란 사실이 이번 사건이 터진 후에야 밝혀졌다는 점이다. 김씨는 지난 18일 월북했고, 군은 26일 북한 방송이 나온 후에야 알았다. 군 관계자는 “하루 2번씩 점검하는 게 원칙인데, 소초장이 ‘철책 위주로 순찰을 해 전혀 몰랐다’고 한다”고 말했다.

그런데도 박 의장은 국회에서 “현장 부대가 아침과 저녁 정밀 점검을 한다. 그날(18일)도 현장 점검에서 이상한 점을 거의 느끼지 못했다”고 말했다. 합참의장이 허위 보고를 받은 것으로 의심되는 대목이다.

합참은 김씨가 전날인 17일 교동도와 강화도 해안도로를 돌아다니는 등 사전 답사를 통해 연미정 인근 배수로의 ‘개구멍’을 찾았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지난 18일 재입북한 탈북민 김모(24)씨. [중앙포토]






③장비의 한계
김씨는 이후 조류를 타고 무인도인 김포 유도(留島)를 거쳐 74분만인 오전 4시쯤 개성시 개풍군 탄포의 기슭에 도착했다. 연미정에서 직선거리로 5㎞ 정도 떨어진 지점이다.

김씨가 헤엄치는 모습은 군의 과학화 경계시스템의 영상에 그대로 나타났다. 군 당국은 병력 감소에 대비하기 위해 각종 센서와 카메라로 이뤄진 과학화 경계시스템을 도입했다. 군 당국은 그동안 “과학화 경계시스템 덕분에 병력이 줄어도 물샐틈없는 경계 태세를 유지할 수 있다”고 자랑했다. 군 당국은 시스템 설치 후 연미정 인근 소초에서 초병을 철수했다.

하지만 이 시스템은 성능에 한계를 보였다. 군 당국이 언론에만 공개한 감시 카메라 영상엔 5차례 김씨가 보였지만, 작은 흰점에 불과했다. 부표 등 부유물과 섞이면 구별하기 힘들 정도였다. 이 때문에 김씨가 구명조끼와 같은 수영 장비의 도움을 받았는지조차 확인할 수 없었다고 합참이 밝혔다. 과학화 경계시스템의 보완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탈북민 김모씨 어떻게 재입북했나.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군 관계자는 “북한의 침투를 잡아내는 데 신경을 쓰기 때문에 남에서 북으로 가는 김씨를 놓쳤다”고 해명하기도 했다. 하지만 김씨가 단순 월북자가 아니라 고정간첩이었거나, 같은 루트로 간첩이 남파됐다고 생각하면 아찔해지는 대목이다.

군의 열상감시장비(TOD)엔 오전 4시쯤 김씨가 북한 쪽 뭍으로 올라가고, 4시 48분쯤 인근 마을로 걸어가는 영상이 남았다. 군 관계자는 “상륙 장면은 2초에 불과해 감시 인원이 놓쳤고, 그 시간대 마을로의 이동이 가끔 보였기 때문에 김씨인지 몰랐다”고 말했다. 그는 또 “당시 북한 지역에서 산불이 일어나 북한군 관련 동향을 감시하는 데 집중했다”고 덧붙였다.

④기능 불량
합참 검열로 소초의 감시영상을 저장하는 기능이 고장 난 사실도 밝혀졌다. 군 관계자는 “해당 소초의 TOD 영상 중 23일 이전 분량이 삭제됐다”며 “TOD 반장은 ‘영상 저장 문제로 삭제했다’고 진술했다”고 말했다.

합참에 따르면 TOD 영상을 네트워크를 통해 소초에서 서버로 보내는 기능도 오류가 일어났다. 합참은 “조사 결과 (삭제된 것은) 은폐 목적은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고 강조했다.




김씨가 월북 경로로 사용한 강화도 월미곶 연미정 인근 배수로. [연합뉴스]






⑤봐주기 문책 논란
합참은 허술한 경계 태세의 책임을 물어 수도군단장과 해병대사령관에게 엄중 경고하기로 했다. 또 강화 지역을 책임진 해병 2사단장을 보직 해임했다.

그러나 지상작전사령관은 이번 문책에서 빠졌다. 지난해 강원도 삼척 북한 목선 입항 사건 때는 함참의장까지도 경고 조치 대상에 포함됐다. 또 국방장관은 대국민 사과 성명을 냈다. 이 때문에 군 내부에서도 '봐주기' 문책 논란이 들린다.

해병 2사단은 병력이 육군 보병사단보다 적은 데 255㎞에 달하는 해안선을 지킨다. 경계를 설 여건을 마련해주지 못한 군 지휘부가 사고가 나자 바로 아랫사람만 내쳐 꼬리를 자르려 한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이철재 기자 seajay@joongang.co.kr


오늘의 핫이슈

PlusNews

포토 뉴스

전문가 칼럼전문가 전체보기

조앤 박 재정전문가

조앤 박 재정전문가

HelloKTow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