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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향계] 말이 칼이 될 때

이종호/편집2팀장

노 전 대통령의 서거와 관련해 말들이 쏟아지고 있다. 대부분은 애도와 추모와 안타까움의 표시들이지만 간혹 냉소적인 반응도 들리고 가시 돋친 비아냥도 들린다.

저마다 생각과 견해가 다를 수 있다. 어떤 말이든 할 수가 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의견들이 모여 여론이 되고 민심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요즘 난무하는 말을 대하다 보면 맹목적 옹호나 살벌한 비난으로 너무 쉽게 내 편 네 편을 가른다는 생각이 든다. 너무 간단히 정의와 불의를 구분짓는다는 느낌도 든다. 특히 유명인들이 툭툭 내뱉는 의외의 한마디를 대할 때면 더욱 그렇다.

얼마 전 김동길 연세대 명예교수는 노무현 전 대통령을 겨냥해 '자살하든지 감옥에 가라'는 글로 논란을 일으켰다. 그리고 비난하는 네티즌들을 향해 다시 "이 나라에는 법은 없고 감정과 동정 뿐이냐"며 "모든 비극의 모든 책임은 노무현씨 자신에게 있다"고 주장해 그들을 더욱 자극했다.



목에 칼이 들어와도 할 말은 해야 한다는 신념은 중요하다. 그러나 때로는 말을 감추거나 아껴야 할 때도 있다.

김 교수에게는 지금이 그럴 때였다. 그저 유감이라는 한 마디였으면 족했다. 그게 아니라면 차라리 침묵하는 편이 나았다. 전직 대통령의 죽음 앞에서 그와 같이 말하는 것은 소신이 아니라 무례이기 때문이다.

또 변희재 미디어발전국민연합 공동대표는 노 전 대통령을 "측근 살리고자 몸 던진 조폭 보스"라며 "그의 장례식에 국민 세금 1원도 쓰면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이 역시 해서는 안될 말이었다. 말 품세도 그렇거니와 세금 1원이 중요한 만큼 상심하는 국민들의 마음을 달래는 일도 국가의 중요한 책무이기 때문이다.

분향소 설치에 극구 반대하면서 "자살한 사람에게 무슨 분향소냐"고 내뱉은 이효선 광명시장도 마찬가지다. 이런 말들은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는 사람들에겐 가공할 언어폭력이었다. 노 전 대통령을 비판하던 사람들조차 비난하고 있는 것은 그래서 당연해 보인다.

노 전 대통령은 생전에 참 많은 말을 했었다. 소신 있는 발언으로 칭송도 받았지만 또 그만큼 많은 사람을 불편하게도 했었다.

그러나 죽음 앞에서 그는 뜻밖에도 말을 아꼈다. 할 말이 정말 많았을 터인데도 원망하지 말라 작은 비석 하나 남기라는 것 정도 뿐이었다. 평소의 그 답지 않은 말의 절제였지만 그 속엔 자신의 죽음이 또 다른 갈등의 불씨가 되기를 바라지 않는다는 깊은 당부의 뜻이 담겼다고 나는 믿고 싶다.

그러나 그의 당부와 아랑곳없이 남은 자의 말들은 제 갈길만 가고 있다. 이미 한 쪽에선 전 대통령의 죽음을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말라며 눈을 부릅뜬다. 그러나 화합과 안정을 외치는 자신의 말이 오히려 분열의 단초가 되고 있음은 보지 못한다. 또 한쪽에선 앞뒤 가리지 않고 '오냐 두고 보자'며 결기를 세운다. 이 역시 전투를 앞둔 병사의 출정가처럼 강퍅하게만 느껴진다.

말은 해야 하고 논쟁도 필요하다. 하지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다. 장례식 기간 만이라도 이어지는 추모 기간 만이라도 서로의 속을 헤집지는 말은 삼가야 한다.

송곳 같은 뾰족한 혀로 서로를 찌르지 말아야 한다. 지금은 의견을 주장하고 관철시킬 때가 아니라 조용히 듣고 지켜보는 것이 훨씬 더 가치로울 때이기 때문이다.

말이 입힌 상처는 칼이 입힌 상처보다 훨씬 더 깊다고 했다. '오늘 내가 하는 한마디 내가 쓰는 한 줄 글이 누군가에게 향기를 묻히는 정다운 벗이기를 평화의 노래이기를….'

이해인 수녀의 시구처럼 지금은 우리도 매일 아침 이렇게 기도해야 할 때다. 그것이 고인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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