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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키위 접시를 놓고 여자 3대가 나눈 무언의 대화

[한국 중앙일보] 기사입력 2020/08/01 15:01

[더,오래] 김명희의 내가 본 희망과 절망(36)

어렸을 적, 내게로 퍼붓는 폭우와 강풍과 폭설을 막아주던 집 한 채 있었다. 내가 세상에 나가서 상처받고 돌아온 날이면 그 집은 밤새 내 귓가에 ‘사랑해, 우리 딸은 잘 이겨낼 수 있어’ 속삭여주었고 나는 다시 힘을 낼 수 있었다. 그랬던 그 집이 갈수록 기울어간다. 기둥 속을 벌레가 온통 파먹어 구멍이 숭숭 뚫렸다. 고치면 또 다른 곳이 갈라지고 금이 가고 무너져 내림의 연속이다.

그 집, 바로 나의 엄마다. 몇 년 전 엄마의 허리뼈가 연탄재처럼 부서져 한 달간 입원하시고 인공 뼈를 넣는 대수술을 했는데, 이젠 그마저 쓸 수 없어 며칠 전 다시 허리 시술을 하셨다. 또 한 번의 대공사를 마친 엄마가 안성에서 내가 사는 인천으로 며칠간 쉬러 오셨다. 불편하신 엄마를 부축해 밥상 앞에 앉혀드리고 딸과 함께 점심 식사를 했다.




엄마가 허리 치료를 받고 인천집으로 쉬러 오실때마다 나는 키위를 후식으로 내놓았다. 그동안 키위가 비싸 자주 못 먹었다며 잘 드시는 모습에 계속 사다 드리는 중이었다. [사진 pixabay]






식사를 마치고 골드키위(엄마는 그동안 골드키위가 비싸 못 드셨다며 유독 잘 드셨기에 계속 사다 드리던 중이었다)를 접시에 담아 후식으로 내놓았다. 오후에는 인천항 근처 종합어시장에 가서 싱싱한 세발낙지를 사와서 탕탕이를 해드리고 좋아하시는 갈치를 구워드렸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 엄마가 안성으로 가실 날이 왔다.

“엄마, 이걸로 맛있는 것 사 드세요.”

“네가 무슨 돈이 있다고? 그동안 에미 치다꺼리한다고 어려운 형편에 돈 많이 썼을 텐데. 아서라. 엄만 실컷 먹고 잘 쉬다 간다. 먹고 싶은 것 없으니 그 돈 놔뒀다 너 써라.”

엄마는 봉투를 한사코 거절하시다 어렵게 받으셨다.

“아이고 세상에나, 정말 고맙구나.”

엄마의 ‘고맙다’는 그 말씀에 나는 순간 웃음이 났다. 부모는 참 아름다운 바보 같다. 오래전 어느 신문에서 보니 부모가 자식 하나를 낳아 대학까지 가르치려면 평균 1억 5000만 원에서 2억 원가량이 든다고 한다. 기타 세부적인 비용 빼고 굵직한 돈만 계산했을 때 이 정도라는 자료를 보고 무척 놀랐다.

진짜 그런가? 대략 계산해보았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형편이 어려워 대학을 못 보내고 눈물로 밤을 새울 부모 마음도 마찬가지다. 부모는 평생 뭉칫돈을 벌어 자식에게 조건 없이 다 내어주고, 늙어 작은 봉투 하나 받는 것도 두고두고 미안해하고 눈시울을 적신다. 그것이 부모 마음인 것이야 더 말해 뭐하랴. 나도 가끔 기념일에 자식들에게 받는 봉투가 여간 미안하고 가슴 찡한 것이 아니다. 막상 지난날을 돌아보면 나 역시 적지 않은 노력으로 자식들을 키웠을 것임에도, 장성한 아이에게 지폐 몇장 받을 때면 항상 짠하다. 그 돈은 남달라 함부로 쓰기도 어렵다.

휴일을 맞은 딸이 회복하신 엄마를 안성집까지 모셔다드리고 돌아왔다. 어제 저녁 식사를 마치고 설거지를 하는 내 등 뒤에서 딸이 물었다.

“엄마, 얼마 전 외할머니랑 먹은 키위 생각나?”

나는 설거지를 하느라 달그락거리며 대답했다.

“키위? 음, 생각나지. 근데 왜?”

딸이 식탁에 앉아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엄마, 난 그날 가슴이 너무 뭉클했어. ‘이게 사랑이구나….’ 하마터면 눈물 날 뻔했어. 접시 위에 담긴 키위 조각이 줄어갈수록 엄마와 나와 외할머니의 포크가 했던 행동이 너무 웃기고, 울컥했어. 우리 세 여자의 포크가 무언의 대화를 하고 있었더라고. 나는 엄마와 외할머니께 한쪽을 더 남겨드리고, 엄마는 또 그걸 외할머니와 나에게 다시 밀어주시고, 우리 외할머니는 또 그것을 손녀딸인 나와 당신의 딸인 엄마에게 한쪽이라도 더 먹으라고 계속 얹어 주셨잖아? 하하하.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키위 몇 쪽을 서로에게 돌리면서 밀어주고 양보하고 있었어.”

“하하하, 그랬구나? 맞아, 그랬지.”




딸은 얼마 전 외할머니와 셋이서 키위 몇 쪽을 서로에게 양보하던 날을 얘기하며 그날 가슴이 뭉클했다고 한다. [사진 pxhere]






그날 설거지하고 엄마가 드실 다음 음식을 준비하느라 정신없었던 나는 그것을 무심히 지나쳤는데 딸은 그것을 세밀히 본 모양이었다.

몇 해 전 추석에 친정엄마 집에서 하룻밤을 잔 날이 떠올랐다. 그날 우리 삼대 여자 셋은 나란히 베개를 베고 누워 밤새 수다를 떨었었다. 나의 엄마는 실향민이다. 그날 과거 힘겨웠던 고생담을 외손녀와 나에게 밤새 들려주셨다.

“… 고생, 고생, 말도 마라. 고생 징글징글하게 했지…. 아이고, 끔찍해….”

눈물 없인 듣기 힘든 외할머니의 모진 세월을 다 듣고 난 딸이 이불 속에서 외할머니를 보며 물었다.

“외할머니가 그렇게 살아남으신 덕분에 오늘의 저와 엄마가 있는 거네요. 감사해요. 헤헤헤. 할머니 혹시, 과거로 돌아가서 그 고생을 다시 또 하라면 할 수 있어요?”

나는 순간, 이건 또 뭔 뜬금없는 질문인가 싶었다. 그런데 내 엄마의 대답에 더 놀랐다.

“다시 그 고생을 할 수 있냐고? 아이고, 싫다. 난 이젠 다신 자신 없다.”




’그걸 거쳐야 내 인생 끝에 내 딸과 손녀딸이 생기는 거잖아? 그럼 열 번이라도 해야지.... 다시 할 수 있어. 너희들을 만날 수 있다는데 그깟 고생 한 번 더 못할 게 뭐 있니? 우리 손녀딸 보려면 달게 해야지.“ [사진 pexels]






손을 내졌던 엄마가 마지막 말을 덧붙이셨다.

“아니다, 곰곰 생각해 보니, 아무래도 과거로 돌아가 그 고생 다시 하라면 해야겠다.”

엄마의 그 말씀에 나는 벌떡 일어나 물었다.

“엄마, 다시 할 수 있다고요? 그 끔찍한 고생을요? 대체 왜요?”

“그걸 거쳐야 내 인생 끝에 내 딸과 손녀딸이 생기는 거잖아? 그럼 열 번이라도 해야지…. 다시 할 수 있어. 너희들을 만날 수 있다는데 그깟 고생 한 번 더 못할 게 뭐 있니? 우리 손녀딸 보려면 달게 해야지.”

말을 마친 엄마가 어둠 속에서 빙그레 웃으셨다. 그날 세 여자는 밤을 꼬박 새웠다. 이 글을 쓰는데 친정엄마의 전화가 울린다.

“네가 준 용돈으로 골드키위 한 박스 주문했다. 고맙다, 노인정에도 몇 개 갖다 줘야겠다.”

시인·소설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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