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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마당] 꽃들의 속삭임

남 철 / 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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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중앙일보] 발행 2020/08/03 미주판 18면 기사입력 2020/08/02 12:07

마당에 나갔다 하면 할 일이 많다. 가장 큰 일은 풀을 뽑아내는 일이다. 뽑아도 뽑아도 다음날이면 또 나온다. 물을 뿌려주는 일만큼은 즐겁다. 생명을 베풀어주는 즐거움으로 자선사업가의 기쁨을 느끼게 한다. 꽃도 예쁘고 푸르름도 싱싱하다.

올해는 코스모스가 보이지 않는다. 첫 해에 세 가지 꽃 빛으로 가을을 수놓아주던 코스모스가 어느 한 해는 자취를 감추더니 다음 해에 얼굴을 내밀며 웃어주던 일이 있기는 하다.

우리는 꽃의 얼굴과 마주하기를 좋아한다. 그러나 꽃은 마음을 쉽사리 보여주지 않는다. 그들의 속마음은 몸통 아니면 뿌리에 숨겨두고 얼굴만 잠깐 열어주는 깍쟁이들이다. 벌도 나비도 예쁜 건 안다고 판단한 꽃들은 갖가지 빛깔과 요염한 자태와 향기로 벌 나비를 불러들이고 있다. 달콤한 향기를 찾아 날개 품을 파는 벌 나비는 이래저래 바쁘다.

잔잔히 흔들어주는 꽃잎이 걸음을 멈추게 한다. 꽃밭에 앉아 나비 꿈을 꾸어본다. 꽃이 시집갈 나이의 수줍은 새색시 감이라면 나는 섬마을 총각선생님이다. 꽃의 마음과 꽃의 노래를 듣는다. 충고도 교훈도 아닌 천사의 소리에 깊이 감동한다. 자비의 목탁소리도 박애의 종소리도 들린다. 그렇구나, 종교는 신을 만들어 믿고, 철학은 진리를 끄집어내 말하고, 윤리는 착하게 살라고 다독이는데 예술은 꽃 속에 든 노래를 그려낸다.

수국은 철 지나 꽃을 접었고 아이리스가 같은 뿌리에서 두 번째로 꽃을 선사한다. 진분홍 하이비커스가 치맛자락을 휘날리고 몰래 묻어온 빈카꽃이 얌전하게 깃을 여민다. 벌 나비도 꽃으로 바로 들지 않고 한 바퀴 춤 인사를 먼저 한 다음 사뿐히 내려앉아 속마음을 주고받는다. 찾아와 고맙다고, 기다려주어 고맙다고. 내 귀가 더 밝아진다면 꽃들의 속삭임을 알아듣고 같이 노래도 부를 수 있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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