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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 칼럼] 추억 속으로 사라져가는 업소들

# 인간은 추억을 먹고 사는 동물이라는 말이 있다. 또 누군가는, 인간은 반평생은 추억을 남기고, 남은 반평생은 그 기억으로 살아가는 동물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그만큼 다시 떠올리고 싶은 아름다운 기억은 삶을 지탱하는 한 축이고 에너지 원이다. 추억이라는 표현 자체가 주는 따뜻함도 그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 코로나19 발생 이후 우리 삶에 적지 않은 변화가 생겼다. 너무나 일상적이던 행동이 갑자기 하면 안 되는 행동이 됐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배웠는데 전염병 같지 않은 전염병 때문에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며 살아가는 신세가 됐다. 다른 사람과 같은 공간에 있다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 됐다. 생존을 원한다면 비사회적 방식으로 삶을 바꿔야 한다. 운동경기 관람은 물론이고 즐겨 찾던 맛집이나 술집 근처에도 가지 않은 게 벌써 6개월이 넘었다.

# 새장에 가둬 놓은 작은 새가 이런 심정일까 싶다. 날개는 있는데 날 수 있는 공간은 새장뿐이다. 저 넓은 창공은 눈으로만 볼 수 있는 공간이다. 가고 싶은 곳은 많은데 여행할 수 없고 만나고 싶은, 그리고 꼭 만나야 할 사람은 여기저기 있는데 쉽게 만나자는 말을 입 밖으로 내지 못한다. 만나서 편하게 이야기할 장소도 찾기 쉽지 않다. 심지어 밖에 나가서 화장실 갈 일이 생겼을 때 해결할 방법을 미리 찾아둬야 하는 게 현실이다. 지금은 예전처럼 어디를 가나 업소 화장실이나 공중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는 시기가 아니다.

# 코로나19는 인간을 심리적으로 위축되게 한 것 외에도 경제적으로 적지 않은 타격을 가했다. 수많은 기업이 파산하고 있다. 이로 인해 또 많은 사람이 일자리를 잃고 있다. 그나마 연방 정부를 포함해 각급 정부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지원하고 있기 때문에 연명하고 있다. 하지만 이 같은 지원이 언제 끊어질 지 알 수 없다. 그리고 지원이 계속 이어진다 해도 이런 방식으로 살아가는 것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날고 싶은데 새장에 갇혀 있는 새처럼.



# 가끔 바람 쐬러 거리를 쏘다니거나 운전을 하다 보면 눈에 띄며 새롭게 다가오는 건 새 건물뿐이다. 코로나19와는 마치 아무 상관도 없다는 듯 볼 때마다 그럴듯한 건물 형태를 갖춰가는 게 신기하게 느껴진다. 아파트든 사무실이든 그 건물에는 지금을 살아남은 누군가 들어가겠지라고 생각하며.

#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백화점인 로드 앤드 테일러가 2일 파산 보호 신청을 했다. 특별히 새롭지도 않다. 지금은 누군가 계속 쓰러지는 시간 속에 살고 있다고 이미 염두에 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누군가가 로드 앤드 테일러일 뿐이다. 내가 쓰러지지 않고 버티고 있는 게 오히려 뉴스가 될 수도 있는 세상이다.

# LA 한인타운에서도 20년, 40년 넘게 한인들에게 추억을 남겼던 식당이 문을 닫는다. 집밥 같은 맛으로 인기를 끌었던 전원 식당, 한 번 가면 단골이 된다는 동일장이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100년 남짓한 한인 이민 역사에서 수십 년을 함께 했다면 일본식 표현으로 노포에 해당하는 가게다. 맛과 전통이, 그리고 추억이 있는 집이다. 194년 역사를 가진 로드 앤드 테일러에 비길 상대는 아니지만 수많은 한인 지도자와 보통 사람이 만나고 애환을 나누었으리라.

# 인생이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듯이 오래된 점포도 코로나19와는 상관없이 언제고 사라질 수 있다. 내부 요인이든 외부 요인 때문에. 하지만 지금처럼 외부 요인 때문에 점포가 사라지는 상황이라면 남은 사람이 힘쓸 방도가 있다. 살아남은 자가 행동하면 된다. 그리고 그런 사람이 많으면 된다. 아직 영업하고 있는 오래된 점포를 더 많이 이용하면 그 가게는 더 오래 그 자리에 있을 수 있다. 우리가 살아 있을 때, 그 가게가 아직 영업하고 있을 때 추억의 장소를 하나라도 더 만들자. 이게 가게만 살리는 게 아니라 추억을 먹고 사는 나도 살리는 길이다.


김병일 / 경제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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