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별 뉴스를 확인하세요.

많이 본 뉴스

광고닫기

기사공유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
  • 공유

[열린 광장] 코로나 사태 속 콩나물의 추억

코로나19 사태로 세상이 온통 난리다. 정부의 행정명령으로 동네 식당과 작은 가게까지도 조용하다. 어느 지역 어느 나라가 아니라 지구상 구석구석에서 만연하는 전염병은 끝을 모르고 확산되고 있다.

코로나19로 집에만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삼시세끼 준비에 어려움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많다. 우리 집은 내가 좋아해서 그런지 콩나물 반찬이 식탁에서 떠나지 않는다. 손쉽게 구할 수 있어 한국인에게 사랑받는 식탁 위의 대표적인 채소가 콩나물이다. 콩나물은 부엌에서 다듬는 손길에 따라 여러 가지로 밥상에 오른다. 콩나물의 변신이다.

콩나물 무침으로 시작해 콩나물찌게, 콩나물비빔밥, 콩나물죽 등은 어렸을 적에 싫도록 먹었던 터라 아주 익숙하다. 일제와 6.25전쟁 때와 같은 가난의 시기엔 더욱 그랬다. 값싸고 편한 식품으로, 영양가는 물론 맛도 나무랄 데 없이 고소하고 씹을 때는 아작아작 식감도 더해 준다.

옛날 어른들은 겨울날 감기라도 걸리면 콩나물국에 고춧가루 확 풀어 얼큰하게 해서 이마에 땀까지 흘리면서 드셨다. 콩나물에 관한 옛 사료의 식용 기원을 보면 역사적으로 고려시대부터 각광 받아왔다. 비타민C와 단백질이 풍부해 피로를 풀어주어 감기, 몸살 극복에 도움이 된다며 한의학과 ‘동의보감’에서 효능을 극찬하고 있다.



옛날 전쟁세대들에겐 콩나물이 아주 친숙한 밥상 위의 식품이다. 일제 강점기 배급으로 근근이 살았던 그때 집집마다 ‘아침 밥 저녁 죽’은 일상용어였다. 죽 종류도 시래기죽, 비지죽, 우거지죽, 호박죽, 콩나물죽 등 각양 각색이다. 매일 죽을 먹어 싫증을 느낀 애들은 밥투정을 해댔다. “엄마 난 밥 한 숟가락이 돼도 괜찮으니 죽 말고 밥을 해주면 안돼?”라고 철없이 굴던 시절의 얘기다. 지금도 돌이켜 보면 그 불행했던 시대에 일어난 찡한 옛 이야기들이 가슴을 메이게 한다.

1950년대 전쟁 직후 어려웠을 때 군대 내 식사는 정말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당시 콩나물은 주요 반찬 재료였다. 동료들 간에 군 복무기간 중 먹은 콩나물 국그릇을 계산하는가 하면 콩나물의 길이를 총 합산해 경부선 길이로 환산하며 힘든 병영생활을 달래기도 했다. 또 현지 조달하는 후방 독립부대에서는 상인들이 납품해 오는 콩나물의 길이를 규정한 8센티미터를 고집하다가 검수하는 담당 장교와 업자 간 승강이를 벌이는 일도 있었다. 아무튼 콩나물은 군에서 빼놓을 수 없는 식생활 문화의 한 장르다.

콩나물이 한국인 고유 식품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콩나물은 전통 식품이요, 건강 식품으로 오늘도 밥상 위의 사랑받는 음식이다. 콩나물이 감기에 효과가 있는 것처럼 요즘 공포의 대상이 되고 있는 코로나19에도 효과가 있었으면 하는 기대도 가져본다.

지금 풍요롭다 못해 호화로운 생활에 젖은 젊은 세대들이 한번쯤 눈물겨운 콩나물 세대들의 애환을 생각해 봤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재학 / 6.25참전유공자회 수석부회장



Log in to Twitter or Facebook account to connect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help-image Social comment?
lock icon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