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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우리말] 피리를 불어라

어릴 때는 피리는 세로로 부는 서양 악기로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제가 피리라고 부르던 악기는 리코더라는 이름으로 바뀌어 있었습니다. 저는 아직도 리코더라는 이름이 낯섭니다. 피리는 전통 악기의 이름이기도 합니다. 피리서라는 것을 꽂아서 부는 악기인데 소리가 구슬프기도 하고, 강렬하기도 합니다. 우리에게 피리라는 이름이 혼동되는 것은 피리가 ‘속이 빈 대에 구멍을 뚫고 불어서 소리를 내는 악기를 통틀어 이르는 말’이기도 해서일 겁니다. 옛날 책에서 피리에 관한 이야기를 읽다 보면 주로 대금에 관한 이야기인 경우가 많습니다. 대금을 피리로 해석한 예도 많습니다. 대금은 젓대라고도 합니다.

피리에 관한 이야기 중에서 기억에 남아 있는 것도 여럿 있습니다. 제일 먼저 떠오르는 이야기는 어릴 때 봤던 ‘개구리 왕눈이’ 이야기네요. 주제가에도 피리 이야기가 나옵니다. 왕눈이는 피리를 부는 개구리 소년이었습니다. 온갖 역경을 이겨내고 피리를 부는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피리를 불면 무지개 연못에 웃음꽃 피운다는 가사는 어릴 때도 왠지 위로가 되었습니다. 리코더로 개구리 왕눈이 노래를 불던 생각이 납니다.

피리를 불면 뱀 나온다는 말을 하기도 합니다. 인도에서 피리를 불면 항아리에서 코브라가 나오는 이야기와도 연관이 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서양의 전승 동화 중에는 피리 부는 사나이를 좇아서 아이들이 사라지는 이야기도 있는데, 피리 소리는 누군가를 유혹하거나 조종하는 느낌도 있는 듯합니다. 그래서일까요? ‘피리를 불다’라는 말이 뒤에서 조종한다는 의미로 쓰이기도 합니다. 한편 우리나라에는 송창식 씨의 ‘피리 부는 사나이’라는 노래가 있는데 그 사나이는 모진 비바람을 맞아도 거센 눈보라가 닥쳐도 ‘언제나 웃는 멋쟁이’로 표현됩니다.

우리나라 피리 이야기 중에서 가장 극적인 내용은 삼국유사에 나오는 ‘만파식적’ 이야기입니다. 잠깐 소개를 해 보겠습니다. 신라의 신문왕(神文王)은 삼국을 통일한 문무왕(文武王)의 아들입니다. 신문왕 때 동해에 있는 거북 형상의 작은 산 하나가 왜병을 진압하기 위해 지었다는 절 감은사를 향해 왔다 갔다 하는 일이 발생합니다. 이에 왕이 배를 타고 그 산으로 들어가니 용이 검은 옥대를 바쳤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이 산에는 대나무가 하나 있었는데 낮에는 둘이 되었다가 밤에는 하나가 되는 기이한 일이 있었습니다. 이에 왕이 용에게 물으니 용의 대답이 해룡(海龍)이 된 문무왕과 천신이 된 김유신 장군이 마음을 합쳐 왕께 보낸 보물이 바로 낮에는 벌어지고 밤에는 합쳐지는 대나무였다고 말을 합니다. 이 대나무를 취하여 피리를 만들어 불면 천하가 화평할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이 대나무로 만든 피리가 바로 만파식적(萬波息笛)입니다. 하늘과 바다와 땅이 만나 세상을 평안하게 하는 선물을 준 겁니다.



그리고 삼국유사에 따르면 이 피리를 불면 적병이 물러나고 병이 나으며 가물 때는 비가 오고 비가 올 때는 맑아지고 바람은 가라앉고 물결은 평온하였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이 피리를 만파식적이라고 부르고 국보로 삼았다는 이야기입니다. 용이 한 말 중에서 흥미로운 것은 왕이 소리로써 세상을 다스리게 될 것이라 한 점입니다. 그것도 나뉘는 소리가 아니라 합해진 소리로 세상을 화평하게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피리를 경주의 천존고(天尊庫)에 보관하여 두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어디에 있을까요? 그런 피리가 남아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쉽습니다.

코로나가 몇 개월째 전 세계에 창궐하고 있고, 우리나라는 거기에 더해 긴 장마와 홍수로 물난리를 겪고 있는 요즘 만파식적 같은 피리 소리를 간절히 듣고 싶습니다. 만파식적이 지금의 대금과 비슷했을 거라는 이야기가 있는데, 대금 소리로 병도 큰비도 사그라지게 했으면 좋겠습니다. 어려운 세상일수록 우리들이 서로 소리를 합하여 만 가지 고통의 파도를 잔잔하게 하였으면 합니다.


조현용 / 경희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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