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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 광장] 수박 한 통의 추억

미국에 온 지 40년이 돼 간다. 그동안 한인타운에서 생활하다가 노후생활을 위해 교외의 넓은 집으로 이사를 했다. 이사 후에는 잔디밭 일부를 텃밭으로 만들어 감나무를 비롯한 여러 종류의 과일나무를 심었다. 요즘에는 코로나19로 ‘집콕’ 생활을 하면서 텃밭을 가꾸는 재미로 살고 있다.

작년에 심었던 과일 나무가 열매를 맺어 울타리 너머까지 주렁주렁 달렸다. 아침 저녁으로 만지기도 하고 쳐다보면서 기쁨을 느끼고 있다. 우리 집 주변을 산책하는 동네 주민들도 열매를 보면서 즐거워 한다.

그런데 어느 날 과일이 채 익기도 전에 누군가 몽땅 따 가버렸다. 아끼던 것이어서 마음이 상해 잠을 설치기까지 했다. 그러면서 이런 저런 생각을 떠올렸다.

오래전 미국에 처음 와서 6개월 정도 됐을 때의 일이다. 당시 사귄 몇몇 가족과 캠핑 여행을 갔다 오다 수박 농장을 지나게 됐다. 잠시 그곳에서 쉴 때 탐스럽게 달린 수박에 유혹되어 아무도 없는 틈에 수박 한 통을 따서 함께간 가족의 아이에게 선물로 주었다.



나는 아이가 좋아하면서 고맙다고 받을 줄 알았는데 고개를 흔들면서 ‘노’라며 거절했다. 그 순간 내가 잘못했구나 생각했지만 이미 따버린 수박이라 그냥 갖고 왔다. 그리고 같은 아파트 할머니에게 드렸다.

그 후 곰곰이 생각해보니 아이에게 나쁜 본을 보인 것 같아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수박 농장 주인에게도 죄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이런 생각들이 항상 머릿속을 떠나지 않아 늦었지만 수박값을 지불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넓은 농장에 주인도 보이지 않는데 어떻게 지불해야 할지 막막했다. 고민 끝에 다음날 농장에 가서 수박값 10달러짜리 수표와 편지를 써서 비가 와도 젖지 않게 비닐봉지에 넣어 막대기에 매달아 놓았다.

그런데 며칠 후 수박 농장에서 편지가 왔다. 주인의 편지였다. 편지에서 농장 주인은 자신은 뉴질랜드 2세로 아버지를 이어 40여년 동안 수박 농사를 해왔다며 이런 일은 처음이라고 했다. 이렇게 바른 양심을 갖고 있는 사람을 알게 돼 감격스럽다며 귀한 보석같은 수박값 체크는 편지와 함께 액자 속에 넣어 농장 사무실에 영구보존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농장에 오면 수박은 얼마든지 주겠다며 방문을 바란다고 덧붙였다. 그 편지를 보는 순간 눈물이 났다. 양심의 눈물이었다.

‘노’라고 단호하게 말했던 소년과 농장 주인의 편지를 생각하면서 평생 양심과 법을 지키며 살려고 노력하고 있다. 오늘도 텃밭에 물을 주면서 지난 시절 즐거웠던 기억을 떠올린다.


정재덕 / LA평통 상임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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