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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질서는 아름답다

나는 ‘프리웨이 공포증(Highway Phobia)’이 있다. 프리웨이를 운전하다 사고가 나면 바로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항상 머릿속에 있다. 속도가 80마일을 넘으면 컨트롤 할 수 있는 속도를 벗어난 것 같아 간이 콩알만 해진다. 어지간한 길은 73마일 이내로 간다. 보통 나와 비슷한 속도의 차 뒤를 따르는 게 가장 속 편하다.

능숙한 운전자들은 차 몇 대가 프리웨이를 차지하고 천천히 가면 열불을 내는데 나는 느리게 한 차선으로만 가는 운전자들의 심정을 잘 안다. 차선 바꾸기가 특히 겁이 나기 때문이다. 차선을 바꿀 때는 사각지대에 있는 차를 못 보면 큰일 난다는 생각에 사이드미러와 백미러로 몇 번을 살피고 고개를 뒤로 돌려서 확인한 후 들어간다.

처음 미국에서 운전하면서 적응이 안 된 것 중 하나가 차선 바꿀 때 고개를 뒤로 돌려서 확인하는 것이었다. 이를 바보같은 짓이라고 말하는 사람을 여럿 보았지만 그게 가장 안전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평소 습관이 안 돼서 힘든 것이다.

미국에서 운전할 때 습관이 안 되어 깜빡할 수 있는 것 또 한 가지가 스톱사인 도로 표지판이다. 스톱 사인은 신호등과 똑같이 취급되는데 처음엔 그 사인에 익숙지 않아 몇 번 지나친 적이 있다. 차량 통행이 그다지 많지 않은 주택가 사거리에 흔히 있는 이 사인판은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위대한 발명이다. 사거리에서 어떻게 운전해야 하는가를 평소에 훈련시키는 매우 효율적인 규칙이다. 이것은 1915년 미시간주에서 처음 만들어진 후 미 전역으로 퍼졌고 곧 유럽과 아시아에도 도입됐다고 한다.



한번은 윌셔 길을 가고 있는데 정전이 나서 신호등이 다 먹통이 되어버렸다. 나는 당연히 한국 같은 상황을 연상했다. 사방에서 경적이 울리고 교통경찰이 호루라기를 불며 수신호 하고, 운전자들은 창문을 열고 끼어든 차량을 향해 욕을 하는 상황이다.

그런데 사거리에 도착한 운전자들은 평소 스톱 사인에서 했던 것처럼 먼저 온 순서대로 차례차례 이동했다. 어떤 소동도 일어나지 않았다. 누가 지시하지 않아도 그 많던 차가 질서정연하게 빠져나가는 것을 보고 감동을 받아 눈물을 쏟았다. 그 질서가 질투나게 아름다웠다.

작고 별것 아니라고 생각되는 것을 잘 지키는 사회가 결국 시민의식이 성숙한 사회이다. 사회 전체를 질서있고 원활하게 하는 기능을 하기 때문이다. 한 개인의 작은 습관이 곧 그의 천성이 되어 인생을 좌우하듯, 건강한 사회는 사회구성원들이 평소에 법을 잘 지키고 반칙하지 않는 습관이 몸에 배어있어야 한다. 시민의식이 교육을 통해 저절로 높아지려면 얼마나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까? 차라리 법 집행을 더 강력히 해서 인위적으로라도 시민의식을 끌어올려야 한다.

법을 우습게 아는 자는 공공의 적이다. 사람 목숨이 걸려있는 코로나19 팬데믹 와중에 대형 집회로 계속 질서를 파괴하는 소동이 일어나는 한국 사회를 보며 드는 생각이다.


김지현 / 수학자·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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