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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우리말] 초조(焦燥)해서

왜 우리는 이렇게 안절부절할까요? 눈앞에 어떤 일이 닥치면 침착하기는커녕 미리부터 엄청나게 걱정을 합니다. 괴로운 시간입니다. 새벽에 잠을 못 이루기도 하고, 깨어있는 시간은 자꾸 주변을 맴돌게 됩니다. 우리는 이런 마음의 상태를 초조하다고 합니다.

한없이 느긋한 마음으로 움직이고 생각하던 사람이 어떤 때는 뭔가에 쫓기는 듯 어쩔 줄을 몰라 합니다. 마치 보통 때보다 심장이 두 배는 빨리 뛰는 듯합니다. 심장의 움직임에 따라 핏줄이 열을 내며 움직입니다. 피가 뜨거워져 있는 느낌입니다. 손끝까지 찌릿한 느낌, 걱정, 불안이 모여서 초조함을 만듭니다. 모세혈관까지 타들어 가는 느낌이라고나 할까요? 살짝 다른 곳만 바라보아도 마음이 걱정으로부터 달아날 수 있는데 내 온 마음은 온통 염려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이렇게 초조함이 사람을 태우고 말립니다.

초조(焦燥)는 애가 타서 마음이 조마조마한 상태를 의미합니다. ‘그을릴 초(焦)’와 ‘마를 조(燥)’로 이루어진 단어입니다. 두 한자 모두 글자 속에 불(火)의 이미지가 담겨있습니다. 타서 바스러지는 느낌이 드러납니다. 불에 타는 마른 낙엽의 느낌이라고나 할까요? 불 위에 올라가 있거나 불에 들어가 있는 느낌입니다. 내 속의 열정을 자극하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마저 태워 버리는 무서움입니다. 두려움입니다. 초조는 ‘초조감, 초조롭다, 초조로이, 초조스럽다, 초조스레’ 등의 단어로 바뀌기도 합니다. 우리가 자주 쓰는 단어는 아니지만, 어감만으로도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이 떠오릅니다. 애를 태우고 마음이 타들어 갑니다.

초조는 나를 말리는 일입니다. 내 몸이 물기 없이 말라버려 바스러지게 만드는 일이 초조입니다. 우리 몸속의 물은 ‘피’입니다. 내가 물을 마시면 그 물은 내 속에서 피가 되어 돕니다. 그런데 우리 몸의 물이 사라지면 미라처럼 되고, 마음의 물이 사라지면 감정도 말라버립니다. 눈물도 모두 말라버립니다. 그래서 우리는 감정에도 말랐다는 표현을 씁니다. ‘감정이 메마르다.’라는 표현이 바로 그것입니다. 초조가 내 감정마저 마르게 할 수 있습니다.



어려운 일이 닥치면, 불안의 끝이 보이지 않으면 우리는 초조해집니다. 스스로를 태우고, 말라비틀어지게 합니다. 칼끝에 놓인 사람처럼, 불길에 휩싸인 사람처럼, 벼랑 끝에 서 있는 사람처럼 어쩔 줄을 몰라 합니다. 하지만 벼랑 앞을 한 발짝 내디디면 낭떠러지가 아니라 새로운 세계가 기다릴 수도 있습니다. 누구의 말처럼 혹시 내가 모르던 날개가 펼쳐질지도 모릅니다. 덜 두려워하면 좋겠습니다. 초조한 우리 모두 그럴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 봅니다.

며칠 전에 전헌 선생님과 초조함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저는 이 세상이 코로나 때문에 되는 일이 없고, 온갖 불안 속에 살아가다 보니 사람들이 더 초조해진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걱정의 마음과 그에 대한 해결책을 여쭌 것이지요. 저를 포함해서 사람들은 제대로 하지 못할까 봐, 더 나빠질까 봐 초조해합니다. 선생님은 어차피 이런 시대에는 생각대로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비정상이 정상인 세상에서는 그저 그 흐름에 나를 맡기는 것도 좋다는 말씀이셨습니다.

선생님과 이야기를 마치고 나서, 초조할 때는 나를 잘 이해하는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는 게 참 좋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걱정하는 일을 나보다 더 많이 아는 사람에게 물어보는 것도 마음을 풀어내는 방법입니다. 사람을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서로에게 따뜻한 감정의 물을 흘려보내면 좋겠습니다. 마른 가슴을 조금이라도 포근히 적실 수 있게 말입니다.


조현용 / 경희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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