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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 광장] 대추와 인생…성숙의 계절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가 여러 대륙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해 ‘세계적 대유행’이 된 지도 6개월이 지나고 있다. 2020년의 절반을 코로나바이러스에게 빼앗겼는데 언제 그 수렁에서 빠져나올 지 알 수 없는 현실 속에서 9월을 맞았다.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 암울한 현실에서 오는 불안, 사람과의 접촉점을 잃어버린 채 살아야 하는 쓸쓸함, 바뀐 일상으로 인한 어수선함을 핑계로 어리바리 살다 보니 속절없이 흘려보낸 시간만 원망스럽다. 부질없는 원망에 아랑곳하지 않는 세월은 봄여름을 생략한 채 우리를 ‘무르익음의 계절’인 가을로 안내한다.

장석주 시인이 쓴 ‘대추 한 알’이라는 시가 있다. 시인은 빨갛게 익은 대추 한 알을 바라보며 이렇게 노래했다.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태풍 몇 개/ 저 안에 천둥 몇 개/ 저 안에 벼락 몇 개/ 저게 저 혼자 둥글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무서리 내리는 몇 밤/ 저 안에 땡볕 두어 달/ 저 안에 초승달 몇 낱”



대추 한 알도 태풍과 천둥, 벼락을 이기고, 늦가을 처음 내리는 묽은 서리를 견디고, 땡볕을 두어 달 견뎌내야 무르익는다. 가을은 대추뿐 아니라 오곡백과(五穀百果)가 무르익는 때다. 황금 들판을 채운 곡식이 무르익고, 각양 과일이 무르익듯이 우리의 인생도 무르익을 때다.

곡식이 무르익으면 여물고, 무르익은 과일이 단맛을 머금는다면, 사람은 무르익을수록 겸손해져야 한다. 우리 선조들은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라는 속담을 통해 무르익음의 지혜를 새겼다. 겸손은 나를 낮추는 동시에 다른 사람을 높이는 삶의 태도다. 그러기에 겸손한 사람의 마음은 늘 너그럽다. 다른 사람을 높일 준비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쓰라린 세월을 지나며 쌓인 겸손과 너그러움을 무르익음의 증거로 내세울 수 있다면 코로나바이러스로 뒤바뀐 일상 속에서 어리벙벙하게 지내온 지난 6개월은 잃어버린 시간이 아니라 우리를 무르익게 한 소중한 시간으로 추억될 것이다.

‘대추 한 알’을 무르익게 하기 위해 버텨온 대추나무에 우리의 인생을 비추어 본다.

“사람도 저절로 무르익을 리 없다/ 저 안에 담긴 실패, 배신, 버려짐/ 눈물로 지새운 몇 밤/ 너덜너덜한 구두 몇 켤레/ 이마엔 송골송골 맺힌 땀 몇 바가지/ 사람이 저 혼자 둥글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태풍, 천둥, 벼락 몇백 개/ 따가운 햇볕, 긴 장마, 가물었던 나날들”

세상의 척박함을 견뎌내고 무르익은 곡식과 과일이 풍성한 식탁을 채우듯, 모진 세월을 지나 무르익은 인생은 세상을 풍요롭게 만들 것이다. 우리가 마주해야 할 세상은 여전히 얼루룽덜루룽하지만, 그렇기에 그런 세상을 살아갈 담대한 희망이 영그는 ‘무르익음’의 계절을 맞이하자.


이창민 / 목사·LA연합감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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