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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비 오는 날의 배달 음식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를 실시하면서 아내가 재택근무를 하게 됐다. 식당에 가는 일도 조심스럽다. 자연히 배달 음식을 자주 시켜 먹게 된다. 주문하기도 쉽다. 메뉴 선택부터 결제까지, 휴대전화기를 조물조물 잠시 만지면 된다. 입을 열어 말 한마디 할 필요가 없다.

사상 최장의 장마며 태풍 때문에 비 오는 날이 잦다. 마음씨 고운 아내가 묻는다. “비 오는데 배달 음식 시켜도 될까?” 나는 그때야 겨우 멈칫한다. 아내는 자못 심각한 표정이다. 우물쭈물 대꾸한다. “뭐 어때, 장사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주문 많이 들어오면 좋은 거 아냐?” 하지만 이 의견에 대해서는 나도 기실 절반만 자신할 수 있다.

가게 주인 처지에서야 날씨에 관계없이 주문이 많이 들어오는 편을 물론 환영할 테다. 날씨가 궂으면 배달 음식 전문점들이 특수를 누린다고도 들었다. 배달과 매장 영업을 같이 하는 식당은 비가 오면 매장에 손님이 없기 때문에 더 간절히 배달 주문을 기다리게 된다.

그런데 배달 기사에게도 그런가? 글쎄…. 요즘 식당이 배달 기사를 직접 고용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내가 음식을 고르고 주문을 하는 곳도 배달 전문 플랫폼 업체다. 이곳에서 배달 기사들이 어떤 조건으로 일하는지 우리 부부는 잘 모른다.



택시 앱처럼, 고객의 주문이 휴대폰 화면에 뜨면 배달 기사들이 그 주문 내용과 날씨 상황을 보고 수락할지 안 할지를 각자 결정할 수 있는 걸까? 프리랜서 배달 기사라도 고객 주문을 계속 거절하면 벌점 같은 불이익을 받을까? 비 오는 날에는 배달 기사들이 추가 수당을 받을까?

아내와 나는 대화를 나누면서 점점 더 근본적인 질문을 스스로 던지게 된다. 내가 배달이라는 서비스에 값을 치렀고 그 가격에 배달 기사가 합의했다면 그걸로 충분한 걸까? 그게 아니라면, 배달 기사가 빗길을 달려와야 한다는 사실을 알면서 음식을 주문했다면, 그의 안전에 대해 우리도 약간은 책임을 져야 하는 걸까?

만약 후자의 질문에 ‘그렇다’고 답한다면, 같은 맥락에서 대만 폭스콘 공장의 비인간적인 노동 실태가 폭로됐을 때 우리는 애플 제품도 거부해야 하는 걸까? 내가 잠시라도 어떤 사회 시스템에 간여한다면, 그 시스템이 전체적으로 공정하고 정의로운지, 누군가를 착취하지 않는지 살펴야 할 의무가 내게 있는 걸까?

이런 질문을 고민하다 보면 우리는 금세 무력감에 빠진다. 세계는, 현대 사회는, 너무 복잡하다. 우리가 산업 모든 부문의 근로 조건과 하청 구조에 대해 샅샅이 공부하고 자신만의 견해를 지녀야 하는 걸까? 온실가스 배출이나 동물 실험, 이른바 공정 무역 같은 이슈에 대해서도? 하지만 그게 과연 한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인가? 공부하려 한들, 그 실태가 다 조사되어 드러나 있기나 한가?

누군가 그런 문제를 조사하고 있을 테고, 그런 결과가 법이나 협약에 반영되겠지, 나는 그 법이나 충실히 따르면 되지 하다가 혹시 그게 바로 아돌프 아이히만의 논리 아니었나 싶어 불안해진다. 전체 시스템이 사악할 때 “나는 법에 정해진 대로 따랐을 뿐”이라는 변명은 통하지 않는다. ‘평범한 악’이 되지 않으려면 우리는 우리가 속한 시스템을 의심의 눈길로 봐야 한다.

이쯤에서 어떤 태도가, 마음가짐이 중요하다고 적당히 타협할 수도 있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최소한 더 나은 인간이 될 수 있다고… 그게 제일 무난한 마무리인 것 같은데, 그런 주장도 나는 가끔 영 비겁하게 느껴지는 거다. 결국 한 일은 아무것도 없이 ‘나는 이런 고민을 하지 않는 다른 사람들보다 낫다’는 자기만족만 얻는 것 아닐까? 그런 엉터리 우월감은 질색인데.

내 생각은 갈피를 못 잡고, 앞으로 세상은 더 복잡해질 테고, 배는 고프고, 비는 계속해서 주룩주룩 온다. 2020년 여름, 참 잔인하다. 코로나바이러스도 그렇고, 비도 너무 자주 온다.


장강명 /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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